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 참여…국가별 실행계획 수립·검토
상반기 화장품 수출 70억달러 역대 최대…ASEAN 공통기준 넘어 국가별 규제 역량·실무 네트워크로 협력 확대
[KtN 박준식기자]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 화장품 규제당국자들이 9월 한국에 모였다. 2026년 9월 6일부터 12일까지 성남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개도국 화장품 규제당국자 초청 연수('26-'29), 1차년도 초청연수’에서는 국가별 실행계획(Action Plan)을 중심으로 발표와 검토가 이어졌다. 인도네시아는 식약당국 BPOM을 중심으로 1년간 추진할 계획을 마련했다.
K-뷰티의 해외 사업이 커질수록 현지 규제기관과의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올해 상반기 70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7.3% 증가하며 역대 상반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14억5000만달러, 중국 10억1000만달러, 일본 5억8000만달러 순으로 규모가 컸다. 수출 외형의 확대와 함께 제품 통보, 제조·품질관리, 표시, 안전성 평가와 사후관리까지 국가별 제도에 대응하는 역량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동남아 5개국은 모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이다. ASEAN은 ‘아세안 화장품 지침(ASEAN Cosmetic Directive·ACD)’을 토대로 회원국의 화장품 규제를 조화해 왔다. 제품 통보와 표시기준, 효능·효과 표현, 우수화장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제품정보파일(Product Information File·PIF), 안전성 평가, 이상사례 보고와 시판 후 감시까지 공통 제도 아래 관리한다.
공통기준이 구축됐어도 실제 시장 관리는 각국 규제당국이 맡는다. 화장품을 판매하려는 사업자는 해당 국가 규제기관에 제품을 통보하고, ASEAN GMP에 맞춰 제조된 제품인지 관리해야 한다. 금지·제한 성분과 표시기준을 지키고 제품별 PIF도 갖춰야 한다. ASEAN은 회원국 규제당국이 ACD에 부합하는 화장품만 시장에 유통되도록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는 ASEAN이라는 하나의 권역과 인도네시아·베트남·말레이시아·필리핀·라오스라는 개별 시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공통된 기술기준을 이해하는 것과 국가별 행정기관의 집행방식에 대응하는 일이 함께 요구된다.
수출 대상국이 늘어날수록 차이는 기업 비용으로 이어진다. 원료 기준이나 제품 분류, 표시 문구, 안전성 자료, 제조관리 절차가 달라지면 제품 출시 일정도 영향을 받는다. 현지 법인과 인허가 조직을 운영하는 대기업보다 국가별 전담인력을 두기 어려운 중소·중견 화장품 기업에서 규제정보의 정확성과 행정절차의 예측 가능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
동남아 전략도 유통망 확대와 소비자 확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제품이 시장에 들어가는 과정부터 판매 이후 안전관리까지 담당하는 규제기관과의 정보 교류, 전문인력 간 관계, 제도 운영 경험이 장기적인 사업환경의 일부로 들어오고 있다.
국가별 실행계획을 연수 과정에 포함한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는다. 인도네시아는 BPOM을 중심으로 담당 조직과 추진기간을 연결했고 참가국 규제담당자들은 자국 행정체계에 적용할 계획을 놓고 논의를 이어갔다. 교육에서 습득한 내용을 참가자 개인에게 남기는 방식보다 소속기관의 후속 업무와 연결하는 데 비중을 둔 구성이다.
한국이 동남아 화장품 규제 분야와 관계를 쌓아온 기간도 짧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앞서 아시아 협력국 규제담당자를 대상으로 화장품 법령과 안전관리, 기능성화장품 제도, 제조·품질관리와 위해평가 등을 다루는 역량 강화 사업을 추진해 왔다. 화장품 산업 성장에 필요한 제조 기술이나 마케팅뿐 아니라 시장을 관리하는 행정역량까지 국제협력의 범위에 포함해온 흐름이다.
ASEAN 역시 화장품 규제조화를 법규 문서만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공식 자료 체계에는 GMP, PIF, 제품 통보, 안전성 평가, 이상사례 보고, 시험방법과 시판 후 감시에 관한 세부 지침이 각각 마련돼 있다. 규제조화가 공통 문구를 만드는 작업을 넘어 실제 집행능력과 기술적 기반을 함께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연수에는 김주덕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가 좌장으로 참여해 국가별 발표와 실행계획 검토 과정에 함께했다. 김 교수는 LG생활건강·애경산업 화장품연구소를 거쳐 대학에서 화장품 분야 교육과 연구를 이어왔고, 보건복지부 화장품발전기획단장과 식품의약품안전처 화장품위해평가 자문위원·화장품 분야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2026년 3월부터 서울사이버대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에서 ‘화장품학특론’을 담당하고 있다.
제품 연구와 교육, 안전관리와 정책을 함께 다뤄온 전문인력이 아시아 규제담당자들과 만나는 흐름은 K-뷰티의 해외 확장이 요구하는 전문성의 범위도 보여준다. 화장품을 개발하는 기술과 제품을 판매하는 마케팅에 더해 원료·제조·안전성·시장관리까지 이해하는 인력이 국제협력 현장에서도 필요해지고 있다.
동남아 5개국과 진행되는 규제역량 협력은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정책이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를 넓히는 시기와도 겹친다. 정부가 2026년 2월 확정한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6~2030)’은 향후 5년간 국제개발협력의 주요 축 가운데 하나로 글로벌사우스 지원을 제시했다. 협력국과 민간의 수요를 반영한 사업 발굴과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상생형 협력도 정책 방향에 포함됐다.
동남아 규제당국자 연수를 정부의 글로벌 사우스 정책 전체와 직접 연결하기보다, K-뷰티의 해외 관계가 넓어지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완제품과 브랜드를 판매하는 관계에 규제·안전관리·전문인력 교류가 추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소비시장이 성장할수록 제품을 관리하는 행정체계의 역량과 규제기관 간 소통도 산업 기반의 일부가 된다.
인도네시아는 1년 단위의 실행계획을 마련했고, 아시아 규제당국자 초청연수는 2029년까지 이어지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국가별 계획이 현지 규제기관의 업무에 반영되고 실무자 간 교류가 연차별로 축적되면 동남아 협력의 범위도 안전관리와 제도 운영까지 넓어진다. 수출 규모가 빠르게 커진 K-뷰티가 현지 시장에 장기간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기반도 제품과 유통에서 규제와 전문인력 네트워크까지 확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