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덕 의원, 이용자 자산 회수 불가능 판례 뒤엎는 입법안 발의… 한국형 디지털금융 생태계 구축의 신호탄
[KtN 최기형기자] 민병덕 의원(더불어민주당, 정무위원회 소속)이 대표 발의한 ‘가상자산거래소 도산절연법’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구조적 결함을 해소하려는 입법적 시도이자, 한국형 디지털금융 생태계를 제도적으로 확립하겠다는 정책 선언이다. 기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자산 구분 보관’만을 규정한 데 반해, 이번 개정안은 거래소가 파산하더라도 고객 자산을 파산재단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 ‘도산절연’ 조항을 명문화했다.
단순한 조항 추가가 아닌, 지난 10여 년간 디지털 자산 시장이 반복적으로 노출돼온 제도적 불완전성 특히 법적 해석의 회색지대에 대한 근본적 개입이라는 점에서 이번 입법안은 가상자산 산업과 법률 시스템 전반에 중대한 전환을 예고한다.
2019년 판례, 파산 절차 속 자산 회수 좌절
2019년 서울회생법원이 가상자산거래소 파산 사건에서 이용자 자산을 ‘환취권’이 아닌 ‘일반채권’으로 분류한 판결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체계의 취약함을 명확히 드러냈다. 당시 파산재단은 고객 예치금과 디지털 자산을 일반 채권자들과 동일한 순위로 취급했으며, 거래소가 보유한 암호화폐에 대한 소유권을 이용자에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상당수 개인 투자자들이 실질적인 자산 회수에 실패했다.
법적 소유권의 불분명함은 단지 해석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거래소의 내부 회계 처리, 자산 보관 체계, 기술적 분리 보관 능력 등 시장 전체의 투명성과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리스크다. 민병덕 의원이 이번 개정안을 통해 명시적으로 ‘파산재단 포함 금지’ 원칙을 제안한 배경 역시, 기존 법령의 형식적 조항이 실무 단계에서 투자자 보호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근본적 비판에서 출발했다.
해외 입법 동향과의 격차, 한국형 모델의 시급성
유럽연합은 2023년 제정된 ‘MiCA 규제안(Markets in Crypto-Assets)’을 통해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자산 분리 보관과 이용자 청구권 보호 의무를 법적으로 부과했다. 미국은 파산법(Bankruptcy Code)을 적용할 때 디지털 자산의 ‘custody contract’를 따로 분리 판단함으로써 소유권 분쟁의 여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판례를 형성해왔다. 싱가포르 역시 2022년부터 고객 자산을 거래소가 보유한 일반 자산과 명확히 분리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파산 시 고객 자산의 회수 우선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가상자산이 ‘금융상품’으로 분류되지 않고, 자본시장법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어 법적 지위가 불명확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가상자산을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면서도 법률상 권한이 명확하지 않아 사후적 규제로 일관해왔으며, 입법부 역시 본격적인 자산 보호 프레임을 수립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번 ‘도산절연법’ 발의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화 과정에서 처음으로 ‘소유권’의 본질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입법적 계기라는 점에서 구조적 의의를 가진다.
산업 구조 변화와 거래소의 책임 전환
현재 국내 중소 거래소 다수는 실질적으로 고객 자산과 회사 자산 간의 분리 보관을 기술적으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회계 기준상으로도 내부 자산과 외부 예치 자산 간의 구분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파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거래소의 실무 체계에 따라 고객 자산이 고스란히 재단으로 흡수되는 사례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민병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단지 파산법적 정의를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래소가 고객 자산을 어떤 체계로 분리 보관할 것인지, 내부 회계 시스템을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에 대한 기술적·행정적 정합성을 거래소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장 압력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단순히 법적 ‘면책’을 요구하던 거래소 중심의 산업 구조가 고객 신뢰와 제도적 책임을 수용하는 쪽으로 구조 전환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거래소 산업의 운영 모델도 달라져야 한다. 기존의 ‘고객 예치금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는 제도화 이후 불가능해지며, 오로지 거래 수수료 기반의 안정적 수익 모델로 전환돼야 한다. 이는 산업 전반의 재편과도 연결된다.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인프라 구축 가능성
700만 명이 넘는 국내 가상자산 이용자 규모를 감안할 때, 디지털 자산은 단순한 투기 수단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준금융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청년층의 포트폴리오에서는 전통 주식이나 예금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산 형성 수단으로서의 상징적 위상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 현실을 감안할 때, 도산절연 구조의 법제화는 단순한 소비자 보호 수준을 넘어서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는 핵심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대응이 범죄 방지와 행정 등록 중심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제도권 금융의 신뢰성을 디지털 자산 분야에까지 확장해야 할 시점이다.
단 하나의 법 개정이 시장의 모든 위험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유권 보호’라는 가장 본질적인 법리적 쟁점을 입법부가 명확히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갖는 상징성과 구조적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거래소의 행정적 편의나 산업 육성 명분에 가려져 있던 법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첫 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의 제도화는 신뢰의 문제다. 민병덕 의원이 제안한 도산절연법은 그 신뢰의 최소 요건을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실체적 조치’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규제 담론과는 분명한 결을 달리한다. 한국 디지털 자산 시장이 제도와 기술의 균형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이 입법안으로부터 형성될 수 있을지, 향후 국회의 논의와 정부의 실행력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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