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사의 압수수색, 공모 가능성의 핵심 지점
[KtN 박준식기자] 23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부가 고려아연 본사와 미래에셋증권, KB증권 등 총 11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 수사는 단순한 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신뢰 기반이 어디까지 훼손되었는지를 가늠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검찰은 2024년 10월 말 고려아연이 발표한 대규모 유상증자 과정에서, 자사주 공개매수와 신주 발행 간 계획의 시차 및 공시의 진정성을 문제 삼고 있다.
‘공시와 기획의 괴리’가 만든 신뢰의 붕괴
2024년 10월 30일, 고려아연은 2조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명분은 이차전지 투자 및 차입금 상환이었지만, 당시 시장은 충격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불과 일주일 전인 10월 23일,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자사주 233만1302주를 주당 83만 원에 공개매수하며 “재무구조를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공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상증자를 위한 실사가 공개매수 기간 중이던 10월 14일부터 미래에셋증권 주도로 이미 시작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는 ‘유상증자 기획이 공개매수 이전부터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연결됐고, 공시의무를 명시한 자본시장법 제178조 및 부정거래 금지 조항과의 정면 충돌로 이어진다. 특히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시 내용과 실제 경영 판단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닌, 고의성 여부에 따라 형사 처벌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주관사의 압수수색, 공모 가능성의 핵심 지점
수사에서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이 동시에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배경은 단순한 주관 업무 이상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실사 개시 시점이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과 겹쳤고, 유상증자 관련 실질적인 사전 검토 및 계약 체결이 있었는지 여부는 향후 수사의 핵심 증거가 된다. 검찰은 이들 증권사가 유상증자 정보에 사전 접근하고도 정당한 정보 공개 및 시장 안내를 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실사 개시 시점 자체가 공시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가 내부자 수준으로 공유되었다면 투자자 보호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결국 정보의 비대칭이 실질적으로 존재했는지, 그리고 그 비대칭을 기반으로 시장에서 부당한 이득이 발생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검찰 수사의 본질이다.
경영권 분쟁과 유상증자의 전략적 결합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고가에 매입한 직후, 신주를 2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발행한 구조는 시장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경영권 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정보 공개의 적정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대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추진된 조치는 정상적인 자금조달 전략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2024년 10월 당시,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이에 대응했으며, 이후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함으로써 기존 지분율 희석을 유도하는 ‘포이즌 필(경영권 방어 수단)’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사주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사이에 충분한 공시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질적 정보 격차가 투자자에게 일방적인 손실을 안겼다는 점에서 자본시장의 근본적 신뢰에 흠집이 났다.
자금 흐름 분석이 제기하는 의혹
2조5000억 원 유상증자 자금 중 약 2조3000억 원이 차입금 상환에 쓰인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자금조달의 명분이 '투자'에 있었다는 기존 설명과 상충된다. 앞서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조달된 3.2조 원 중 2.6조 원이 차입금이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번 유상증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재무적 방패막으로 설계된 것에 가깝다.
실사 개시 시점, 내부 회의록 및 주관사와의 협의 내역, 자사주 공개매수 신고서의 내용 등은 유상증자의 ‘고의성’ 여부를 판별하는 핵심 증거가 된다. 검찰은 공시 누락 여부뿐 아니라, 이사회 차원의 사전 기획 가능성까지 포착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제도와 신뢰, 구조적 리셋의 시점
자본시장의 핵심은 ‘신뢰’이며, 신뢰는 ‘정보의 대칭성’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고려아연 사태가 시사하는 점은, 공시 제도의 형식적 적용만으로는 정보 비대칭 구조를 해소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실질적 내부 정보가 투자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구조, 주관사와의 정보 공유가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관행, 유상증자 및 공개매수의 전략적 운용을 통한 지분 희석 등이 반복된다면,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가 흔들린다.
검찰 수사는 표면적인 위법 여부 판단에 그치지 않는다. 고려아연 사건은 경영 판단의 전략성과 법적 정당성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균열이 얼마나 큰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이번 수사는 자본시장 제도의 설계와 그 운용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점검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단순히 공시 제도를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정보공개의 범위와 시점, 주관사와 기업 간 계약 관계의 투명성, 유상증자 절차와 공개매수 간 상호 견제 시스템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설계가 요구된다.
고려아연 사태는 한국 자본시장이 당면한 구조적 신뢰 위기의 거울이며, 경영권 분쟁이 시장 질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는 ‘기업 내부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공공적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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