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최기형기자]1979년 최규하 이후 46년 만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단행한 것은 헌정사상 전례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덕수 권한대행의 시정연설이 향후 정치 일정에서 갖는 무게는 단순한 ‘시정’의 형식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경제 침체가 가속화되는 국면에서 권한대행 체제가 스스로 국정의 중심으로 나서려는, 그 본질적 전환의 신호로 해석된다. 문제는 그 출발점이 ‘국정의 복원’이 아닌 ‘권력의 재편’으로 읽히고 있다는 점이다.

추경은 존재했으나, 경제 해법은 부재했다

연설의 명목은 경기 진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제출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제시된 추경안의 내용은 고질적인 수치상의 빈곤과 전략 부재로 요약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불과 이틀 전,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1.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는 주요 선진국 중 하향 폭이 가장 큰 수준이다. 한국은행 역시 1분기 성장률을 –0.2%로 예측했다. 이는 실질적 역성장의 진입이라는 신호이자, 2022년 이후 지속된 저성장의 구조가 결국 한계에 도달했음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한덕수 대행의 시정연설은 ‘위기’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진단하지 않았다. 추경의 규모는 미온적이었고, 내수 회복에 대한 구체적 재정 투입 전략도 제시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연설은 국가적 비상경제 상황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본인의 ‘책임 있는 리더십’을 과시하려는 메시지로 귀결됐다. 경제를 매개로 한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정부 내수 기여도 0.1%라는 허망한 결과를 내놓고도, 여전히 윤석열 정권의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는 방식의 추경이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체제 3년 동안의 긴축 기조, 고소득자 중심의 감세 정책, 공공투자의 축소는 한국 경제에서 정부의 실질적 기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예산안이 아니라 경제 전략의 대전환이다.

‘시정’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시정연설의 내용보다 더 깊이 분석해야 할 지점은 형식 그 자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시정연설은 본래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향후 정책 기조를 설명하는 헌정상의 상징적 제도다. 그러나 윤석열의 파면으로 인해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 권한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사용했다는 점은 헌정 질서의 중대한 전환을 내포한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국회 대정부질문에는 불출석하면서, 시정연설이라는 ‘일방적 무대’를 택했다. 질의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메시지는 일방적으로 던진 셈이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장면을 “대선 출마 연설로 맞바꾼 도둑질”이라고 평가했다. 추경이라는 국정의제를 정치적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전용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덕수 권한대행은 연설에서 대미 통상 협상의 정당성을 설명하며, 본인의 협상 경험을 부각시키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국정의 위임자’가 아니라 ‘미래의 국정 주체’로 자신을 호명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일련의 행보와 연결된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광주·울산 등 지방 일정, 언론 인터뷰를 통한 대외 메시지 확대 등 전형적인 대권 출마의 전주곡을 밟고 있다. 한준호 최고위원은 “지금이 대권 놀음을 준비할 때냐”며 비판했고, 김민석 최고위원은 “차라리 빨리 출마를 선언하고 자리를 비우는 것이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가가 위기일수록, 권한대행 체제는 정치적 중립과 행정적 책무에 집중해야 한다는 명백한 헌정 질서가 무시되고 있는 셈이다.

졸속 통상과 ‘협상 이력’의 왜곡

한덕수 권한대행의 대미 통상 협상 추진도 정치화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한국은 최선의 제안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최선’이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양보였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관세 협상은 대선 이후의 정권이 맡아야 할 정책적 사안이다. 그러나 현재의 권한대행 체제는 이 중대한 협상에 착수하며, 국익을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다시 거론되는 것이 ‘2000년 마늘 협상’이다. 당시 한덕수 본부장은 중국과의 관세 보복 국면에서 한국의 경제적 피해가 50배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굴욕적인 합의를 주도했다. 특히 중국산 마늘의 세이프가드 연장을 제한하는 내용을 비공개 부속 문서로 포함시킨 사실은, 국회와 농민 모두를 기만한 외교 행위로 비판받았다. 그 협상의 책임자가 지금은 다시 ‘협상가’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단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헌정질서의 위기, 권한의 오용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국정은 권한대행 체제 아래 비상정치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한덕수 체제는 이 위기의식과 단절되어 있다. 국회의 시정연설은 국민과의 약속이 되어야 하지만, 이번 연설은 그 반대편에 있었다. 이는 단지 정치적 과오를 넘어, 헌정의 본질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와 정치, 법치와 행정이 모두 교차하는 이 비상 체제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자제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추경안을 심사하고 증액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예산안 심사가 아니라, 권한대행 체제의 본질적 타당성과 정치적 월권 가능성에 대한 재점검이 시급하다. 46년 만의 시정연설이 헌정 복원의 계기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권한의 변질이자 또 다른 정치적 위기의 서막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