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R/X와 Saja Boys가 보여준 새로운 제작·소비 구조
[KtN 신미희기자] 2025년 여름, Billboard Artist 100 차트에는 낯선 이름이 상위권에 등장했다. 4위에 오른 HUNTR/X와 20위에 자리한 Saja Boys. 전통적인 팝 스타도, 오랜 세월 쌓아올린 록 밴드도 아니다. 다수의 송라이터·프로듀서·보컬이 모여 집단적 정체성을 내세운 콜렉티브(collective)다.
이들은 단순한 협업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의 팀이자 브랜드로 소비된다. HUNTR/X의 핵심 멤버인 EJAE, Audrey Nuna, REI AMI는 이미 개별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HUNTR/X라는 이름으로 묶이면서 차트에 새로운 브랜드로 등장했다. Saja Boys 역시 Andrew Choi, Kevin Woo 등 개별 이력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힘을 모아 ‘새로운 세계관’을 전면에 내세운다.
과거 음악 시장은 특정 스타의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팀과 네트워크의 힘이 메인스트림을 밀어올린다. Billboard Artist 100에 이들이 자리 잡았다는 것은 단발성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콜렉티브가 차트를 움직이는 방식
▶브랜드로서의 팀
콜렉티브의 가장 큰 특징은 개별 인물이 아니라 팀 이름 자체가 브랜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팬은 특정 멤버를 좇기보다, 팀이 구축한 미학과 세계관에 몰입한다. 이는 K-팝 그룹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때 사용한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곡마다 다른 목소리와 스타일이 등장하지만, ‘하나의 팀’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 다곡 병렬 전략
HUNTR/X는 차트에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곡을 올리고 있다. Artist 100뿐 아니라 Hot 100에서도 같은 시기에 복수의 곡을 밀어 올리며, 알고리즘 추천에 최적화된 구조를 만든다. 같은 톤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곡이 많아질수록, 플레이리스트는 자연스럽게 이들을 묶어 노출한다. 소비자는 하나의 곡에서 출발해 연달아 같은 팀의 다른 곡을 듣게 된다. 결과적으로 차트 체류 기간은 길어지고, 인지도를 빠르게 쌓는다.
▶제작자의 전면화
콜렉티브는 송라이터·프로듀서·보컬의 경계를 흐린다. EJAE, Andrew Choi 같은 이름들은 그동안 크레딧 속에만 존재했지만, 이제는 팀 이름과 함께 전면에 드러난다. 팬은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곡을 만든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소비한다. 이는 음악 산업의 힘이 퍼포머에서 제작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스크 분산의 효과
개인 아티스트는 신곡이 실패하면 브랜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콜렉티브는 다수의 멤버와 다수의 곡을 병렬적으로 운영해 리스크를 분산한다. 일부 곡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해도, 다른 곡들이 전체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한다. 이는 금융에서 포트폴리오 전략과 유사한 구조다.
▶팬덤 운영의 변화
콜렉티브의 팬덤은 개인 스타 팬덤과 다르다. 팬들은 팀의 콘셉트와 세계관, 전체적인 창작 흐름에 몰입한다. 멤버 개개인보다는 ‘이들이 함께 만드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이는 아이돌 팬덤이 구축해온 집단적 소비 패턴이 다른 장르에도 확산된 결과다.
▶알고리즘과의 친화성
스트리밍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반복과 연관성을 좋아한다. 콜렉티브는 다수의 곡을 동시에 풀어내며 알고리즘 친화적인 콘텐츠 공급 방식을 택한다. 추천 시스템은 이 곡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이어주고,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콜렉티브라는 브랜드에 노출된다.
산업적·문화적 의미
▶아티스트에서 스튜디오로
콜렉티브의 부상은 음악 산업의 단위를 개인에서 스튜디오형 집단으로 이동시킨다. 이는 할리우드가 감독이나 배우 중심에서 제작사 중심으로 바뀌었던 것과 비슷하다. 아티스트가 아니라, 창작 네트워크 전체가 새로운 IP로 기능한다.
▶창작자 경제의 가속
콜렉티브는 제작자와 아티스트의 경계를 허물며, 창작자 전체가 소비 주체가 되는 시대를 열었다. 이는 송라이터와 프로듀서의 협상력 강화로 이어지고, 음악 산업 내 권력 지형도에 변화를 일으킨다.
▶다문화 정체성과 글로벌 확장
HUNTR/X와 Saja Boys에는 한국계, 아시아계 아티스트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들의 다문화 정체성은 글로벌 팬덤과 직결된다. 언어와 국적의 장벽보다, 팀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톤과 세계관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리스크와 기회
콜렉티브 모델은 안정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제공하지만, 팀 내부 결속이 흔들릴 경우 빠르게 붕괴할 위험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의 흐름은 팀이 가진 강점—다양성과 협업—이 더 큰 기회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팀이 새로운 주체가 된다
콜렉티브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음악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한다. Billboard Artist 100 상위권에 HUNTR/X와 Saja Boys가 자리했다는 사실은 곡 단위 소비가 팀 단위 소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차트의 주어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이 변화는 K-콘텐츠의 경험과도 겹친다. K-팝은 이미 그룹과 유닛, 프로듀서 전면화와 세계관 전략을 통해 콜렉티브형 모델을 운영해 왔다. 빌보드가 보여주는 새로운 흐름은 한국 음악 산업이 오래전부터 실험해온 방식이 글로벌 표준으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2025년의 차트는 이렇게 말한다. 더 이상 ‘누가 노래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팀이 만들었는가’가 중요하다고. 개인의 얼굴을 넘어선 팀 브랜드가 새로운 주체로 자리 잡는 시대, 콜렉티브는 이제 메인스트림의 전면에서 전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