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의 뉴델리행, 경제·기업·문화 한꺼번에 올린 이재명 정부 첫 남쪽 외교 시험대
[KtN 박준식기자]4월 19일 인도 뉴델리로 향한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일정표만 봐도 성격이 읽혔다. 8년 만의 한국 대통령 인도 국빈방문이었고, 뒤이어 곧바로 베트남 순방이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출국 전 이번 순방을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본격 가동”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외교의 중심축으로 먼저 거론되는 미국·중국·일본이 아니라 인도와 베트남이 전면에 놓인 것이다. 새 정부가 어디에 외교의 다음 무게를 두려 하는지, 어떤 지역을 새로운 경제·산업 협력 공간으로 보고 있는지 이번 순방 순서 자체가 먼저 보여줬다.
인도가 첫 순서에 놓인 배경은 분명하다. 인도는 14억 인구를 가진 거대 시장이다. 세계 4위 경제라는 상징성도 있다. 성장률과 내수 규모, 제조업 확대 가능성, 디지털 산업의 팽창을 함께 놓고 보면 한국으로선 외교와 산업, 공급망 전략을 한꺼번에 맞물릴 수 있는 상대다. 대통령실이 인도를 두고 글로벌 사우스의 선도국이라고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동 전쟁과 보호무역 확산, 공급망 재편, 기술 경쟁이 한꺼번에 몰린 시기에 인도는 수출 시장이면서 생산 거점이고, 기술 협력 상대이면서 자원·에너지 협력 파트너로도 읽힌다. 이번 방문은 그런 복합적 성격을 가진 인도를 상대로 정부가 어떤 접근법을 꺼내는지 보여주는 자리였다.
시점 역시 의미가 있다. 한국 대통령의 인도 국빈방문은 8년 만이다. 여기에 정부 출범 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성사됐다는 점까지 겹친다. 외교에서 방문 시점은 우선순위를 드러낸다. 어느 나라를 먼저 찾는지, 어느 지역을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새 정부의 대외 구상 윤곽이 드러난다. 이번 순방에서는 인도 다음 베트남이라는 순서가 눈에 들어왔다. 남아시아와 동남아를 각각 떨어진 공간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경제·외교 지형으로 묶어 보려는 흐름이 읽힌다. 수출 시장 다변화와 공급망 안정, 기술 협력과 문화 교류를 함께 밀어 올리려면 어느 한 나라와의 관계만으론 한계가 있다. 이번 순방 동선에는 그런 현실 인식이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뉴델리에서 나온 합의도 단일 계약 한 건보다 관계의 틀을 새로 세우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양국은 경제 협력 분야 장관급 협의체인 산업협력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에너지 자원 안보 협력 공동성명도 채택했다.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CEPA 개선협상은 재개하고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디지털 브릿지 프레임워크, 금융 당국 간 협력 MOU, 전자결제시스템 연계 MOU, 문화창조산업 MOU도 함께 나왔다. 무역과 투자만이 아니라 공급망과 에너지, 디지털과 금융, 문화와 생활 편의를 함께 올린 셈이다. 이번 방문이 눈앞의 투자 발표보다 앞으로 관계를 굴러가게 할 문서와 협의 틀을 먼저 깔아 놓는 자리였다는 점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정상회담 일정표를 따라가도 같은 흐름이 보인다. 공식환영식과 간디 추모공원 헌화, 소인수 회담과 확대 회담, MOU 교환식과 공동언론발표, 총리 주최 오찬, 비즈니스 포럼, 국빈 만찬까지 하루 동선이 촘촘했다. 정치와 외교의 언어로만 순방을 끌고 가지 않고, 산업과 기업, 문화와 사람의 이동까지 한 동선 안에 배치한 일정이었다. 예전처럼 정상외교는 정치가 맡고 경제는 별도 행사에서, 문화는 부속 일정에서 처리하는 방식과는 결이 달랐다. 이번 방문에선 외교 일정 안으로 경제와 문화가 함께 들어왔다. 인도와의 관계를 무역 수치나 정상 간 친교만으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배치는 총리 주최 오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원래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경제인 대화는 비즈니스 포럼 직전에 별도로 열릴 예정이었다. 일정은 바뀌었다. 양국 정상이 경제인들과 함께 오찬을 하는 형식으로 재편됐다. 한국 측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차, LG, 포스코 등 주요 기업 인사들이 참석했다. 국빈 오찬은 원래 상징성이 강한 자리다. 그 공간에 기업인을 전면 배치한 건 이번 방문이 어디에 힘을 실었는지 보여준다. 인도와의 관계를 정부 대 정부 협의에만 맡기지 않고, 기업의 투자와 생산, 연구개발과 산업 협력까지 한 화면 안에 올렸다는 뜻이다. 외교 일정이 산업 현장과 직접 이어지는 방식이다.
경제 의제의 폭도 넓었다. 자동차와 전기전자에 머물지 않고 철강과 조선, 인공지능과 반도체, 청정에너지, 디지털과 콘텐츠까지 논의가 이어졌다. 인도 협력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은 기업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삼성은 첨단 제품 생산과 혁신 연구개발의 현지화를 언급했고, 현대차는 신흥시장 종합 R&D 센터와 푸네 제3공장을 소개했다. 포스코는 JSW그룹과 연 600만톤 규모 일관제철소 합작 건설 추진 계획을 밝혔다. HD현대는 중형 조선소 투자 검토를 내놨다. 효성과 크래프톤도 각각 전력망과 게임 제작 생태계를 거론했다. 사업 단계와 발표 수위는 다르지만, 한국 기업이 인도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다. 생산과 판매를 넘어 연구개발과 소재, 기반 산업, 디지털과 문화산업까지 시야가 퍼지고 있다는 얘기다.
인도 측 반응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켰다. 모디 총리는 현대차, LG, 삼성, 포스코, 효성을 직접 거론하며 인도인들이 잘 아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HD현대의 조선, 삼성의 디스플레이, 네이버의 디지털, 크래프톤의 게임, GS의 청정에너지까지 따로 언급했다. 조선업, AI와 반도체, 청정에너지를 향후 10년의 중요한 분야로 본다는 인식도 밝혔다. 단순히 한국 기업을 유치 대상으로 보는 수준을 넘어 인도 산업 고도화와 연결된 협력 파트너로 보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이번 방문이 인도에 왜 중요했는지, 또 한국이 왜 지금 인도를 택했는지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문화 일정 역시 이번 순방의 중요한 축이었다. 김혜경 여사가 참석한 ‘K-Dream Stage’는 그런 흐름을 잘 보여줬다. 주인도한국문화원은 2011년부터 매년 K-팝 경연대회를 열어 왔고, 이번 행사는 최근 5년 입상팀 가운데 보컬과 댄스 부문 각 3개 팀이 결승에 오른 왕중왕전 형식으로 진행됐다. 정부 설명에는 3000석 규모 행사장이 현지 청소년과 K-팝 팬들로 가득 찼다고 적혀 있다. 인도의 한국 문화 호감도가 높은 편이라는 조사 결과와 한국어 학습 분위기까지 함께 놓고 보면, 인도와의 관계를 경제협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드러난다. 뭄바이 코리아센터 조성과 한국어·한국학 프로그램 확대, 전자결제 연계까지 회담 문서에 포함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 협력과 문화 접점을 함께 넓혀야 실제 교류의 폭도 커진다는 판단이 읽힌다.
이번 방문을 곧바로 완성된 성과라고 볼 단계는 아니다. 2030년 교역 500억 달러는 목표치다. CEPA 개선협상은 재개와 가속에 합의한 상태다. 산업협력위원회와 각종 MOU 역시 이제 출발선에 섰다. 기업 발표 가운데도 확정 투자와 추진, 검토가 섞여 있다. 후속 협상과 제도 이행, 실제 투자와 생산 확대가 뒤따라야 이번 순방의 성과도 구체성을 얻는다. 다만 방향만큼은 뚜렷하다. 인도를 상대로 한 외교를 무역과 투자에만 좁히지 않고, 공급망과 기술, 기업 활동과 문화 교류를 한꺼번에 올린다는 접근이다.
인도는 한국의 10위 교역 상대국이다. 지난해 양국 교역 규모는 256억 달러로 적지 않다. 대통령실 설명대로 아세안과 비교하면 아직 격차는 있다. 반대로 보면 협력 확대의 공간도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번 국빈방문은 그 공간을 외교 문서와 산업 의제, 기업 참여와 문화 일정으로 구체화한 자리였다. 인도 다음 일정이 베트남으로 이어지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번 순방은 남아시아와 동남아를 함께 묶는 대외 구상의 출발점으로 볼 만하다. 뉴델리에서 내놓은 합의와 일정 배치가 후속 협상과 투자, 교역과 문화 교류로 이어질 경우 이번 방문의 의미도 더 선명해질 가능성이 있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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