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 관세표에 드러난 한국 공급망의 새 비용
[KtN 김 규운기자]2025년 4월 2일 미국 백악관 상호관세 부속표에는 베트남 46%, 캄보디아 49%, 필리핀 17%, 한국 25%가 함께 올랐다. 워싱턴의 관세표는 미국 무역적자를 겨냥했지만, 한국 기업에는 동남아 생산기지의 비용과 위험을 다시 계산하라는 통보에 가까웠다. 중국을 피해 옮겨간 공장도, 미국 시장을 향한 우회 수출망도 관세와 원산지 심사 앞에서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는 한미 양자 통상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처럼 한국 기업이 생산·조달·물류 거점으로 활용해온 국가들이 높은 관세율을 부여받으면서 한국 공급망의 동남아 전략도 흔들렸다. 미국의 관세 압박은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부품은 어디에서 왔는지, 현지 협력업체가 노동·지식재산권·수출통제 기준을 지키는지까지 묻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2025년 7월 31일 백악관은 상호관세율을 다시 조정했다. 베트남 20%, 캄보디아 19%, 필리핀 19%, 한국 15%가 새 부속표에 들어갔다. 관세율은 4월 발표 때보다 낮아졌지만, 같은 행정명령에는 관세 회피 목적의 환적 물품에 4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회피 구조에 사용된 국가와 시설을 6개월마다 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세율 조정이 끝이 아니라 원산지와 환적 심사가 본격화되는 구조였다.
베트남은 한국 기업에 가장 민감한 생산 거점이다. 2025년 한·베트남 교역액은 945억 달러였고, 베트남은 4년 연속 한국의 3대 교역 파트너 자리를 지켰다.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은 1만 곳을 넘어섰고, 한국의 대베트남 누적 투자액은 2026년 3월 말 기준 989억 달러로 집계됐다. 한국은 베트남 최대 외국인 투자국이다.
베트남이 받은 46% 관세는 2025년 10월 미·베트남 무역합의 틀에서 20%로 조정됐다. 미국은 베트남산 원산지 제품에 20% 상호관세를 유지하고, 일부 품목에는 향후 0%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베트남은 미국산 산업재와 농산물에 폭넓은 시장 접근을 제공하고, 양국은 지식재산권, 노동, 환경, 관세 회피, 수출통제 협력을 합의 항목에 넣었다.
베트남 공장을 둔 한국 기업에는 관세율 자체보다 통관 이후의 관리 비용이 커졌다. 전자·섬유·부품·소비재 기업은 제품 가격만 낮추는 방식으로 미국 시장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중국산 부품 비중, 베트남 내 실질 가공 여부, 원산지 증빙, 협력업체의 지식재산권 침해 가능성, 수출통제 품목 관리가 모두 수출 경쟁력의 일부로 들어왔다. 저임금과 빠른 생산만으로 설명되던 베트남의 장점이 통상 리스크 관리 능력과 함께 평가받는 단계로 넘어간 셈이다.
2026년 5월 미국 무역대표부는 베트남의 지식재산권 보호와 집행 관행에 대한 불공정무역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은 베트남을 2026년 4월 ‘우선 외국 국가’로 지정했고, 조사 결과에 따라 새로운 관세나 무역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 정부는 미국의 절차를 인정하면서도 지식재산권 보호 노력을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평가해 달라는 입장을 냈다.
캄보디아는 더 강한 충격을 받았다. 2025년 4월 상호관세 부속표에서 캄보디아 관세율은 49%였다. 이후 미국과 캄보디아는 2025년 10월 상호무역 합의를 발표했고, 미국은 캄보디아산 원산지 제품에 19% 상호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캄보디아는 미국산 산업재와 식품·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100% 철폐했다고 밝혔다. 합의에는 수입허가, 기술규정, 위조·불법복제 단속, 노동권 보호, 강제노동 제품 수입 금지, 환경법 집행, 관세 회피 대응, 투자안보, 수출통제 협력이 함께 들어갔다.
캄보디아의 관세 충격은 저임금 생산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봉제·신발·경공업 중심 생산기지는 낮은 인건비와 유연한 주문 대응으로 경쟁력을 쌓아왔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노동권과 강제노동 금지, 위조품 단속, 원산지 검증이 같은 테이블에 올라왔다. 한국 기업이 캄보디아 협력업체를 통해 생산비를 낮추는 방식도 노동·통관·준법 리스크를 함께 떠안는 구조로 바뀌었다.
필리핀은 베트남·캄보디아와 다른 경로로 관세 압박을 받았다. 2025년 4월 부속표에서 필리핀 관세율은 17%였고, 7월 31일 조정표에는 19%가 적용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동 뒤 필리핀산 제품에 19% 관세를 적용하고 미국산 상품은 필리핀에서 무관세가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필리핀 대통령실 경제·투자 특별보좌관은 쌀·옥수수·설탕·생선·돼지고기·닭고기 등 미국산 농축수산물 관세가 제거되지 않았고 세부 내용은 실무그룹에서 확정 중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 사례는 안보동맹도 통상 압박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남겼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긴장 속에서 미국과 안보협력을 강화해온 국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협상에서는 안보협력과 시장개방, 관세율 조정이 함께 움직였다. 한국 기업이 필리핀을 방산, 원전, 해양안보, 인프라 협력의 거점으로 보더라도 미국 시장과 연결된 상품에는 관세와 원산지, 시장개방 조건이 따라붙는다.
동남아 3개국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베트남은 핵심 제조기지, 캄보디아는 저임금 생산망, 필리핀은 안보·서비스·인프라 거점이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미국 관세 체계 안에서는 모두 같은 질문을 받는다. 미국 시장에 들어오는 제품이 실제로 현지에서 만들어졌는지, 중국산 부품이나 제3국 경유가 관세 회피에 해당하지 않는지, 생산 과정에서 노동·지식재산권·환경 기준을 충족했는지가 수출 조건이 됐다.
한국 기업의 공급망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동남아 이전은 임금, 토지, 전력, 물류비를 중심으로 판단됐다. 트럼프 관세 이후에는 원산지 설계, 부품 조달 구조, 협력업체 실사, 통관 문서, 지식재산권 준수, 강제노동 배제, 수출통제 대응이 공장 입지 선택의 핵심 항목으로 올라왔다. 생산비가 낮아도 미국 세관에서 환적이나 규정 위반으로 판단되면 관세와 벌금, 납기 지연, 거래 중단 비용이 한꺼번에 발생한다.
한국 정부의 외교도 같은 압박을 받는다. 동남아 외교를 정상회담, 인프라 수주, 개발협력, 문화교류로만 다루기 어려워졌다. 베트남에서는 한국 기업 1만 곳의 생산망을 통상 규범 안에서 지켜야 하고, 캄보디아에서는 저임금 생산망과 노동·치안 리스크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필리핀에서는 해양안보와 방산협력이 통상 조건과 분리되지 않는다. 트럼프 관세는 한국 기업의 비용 문제이면서 동시에 한국 외교의 현장 문제로 옮겨 붙었다.
2026년 현재 남은 변수는 세 가지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어떤 법적 수단으로 유지·복원할지, 베트남 지식재산권 조사와 같은 301조 절차가 추가 관세로 이어질지, 동남아 각국과 맺은 관세 합의가 실제 통관·원산지·노동 기준 심사에서 얼마나 엄격하게 집행될지다. 한국 기업의 동남아 생산기지는 값싼 공장이라는 과거의 표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관세를 견디는 원산지 구조, 미국 규정을 통과하는 협력업체 관리, 현지 정부와의 제도 협력이 동남아 전략의 새 비용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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