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형 스트리밍 시대에 포토카드·소장·응원 소비가 만든 피지컬 팬덤 시장
[KtN 전성진기자]미국 음악시장의 2025년 도매 매출은 115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료 스트리밍 계정은 1억650만 개, 관련 매출은 64억 달러에 이르렀다. 음악 소비의 중심은 이미 구독형 스트리밍으로 이동했지만, K-팝은 미국 시장 안에서 다른 경로를 만들고 있다. 팬들은 음원을 스트리밍으로 듣고, 앨범은 따로 산다. CD는 재생 매체보다 포토카드와 북릿, 한정 구성, 응원 행위가 결합된 팬덤 상품에 가깝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LA)비즈니스센터가 정리한 미국 콘텐츠 산업동향 보고서는 미국 K-팝 팬의 CD 구매율을 일반 음악 청취자보다 높은 수준으로 제시했다. 루미네이트 2025년 조사 기준 미국 K-팝 팬의 27%가 2025년에 CD를 구매했다고 답했고, 일반 미국 음악 청취자의 CD 구매율은 19%였다. CD를 구매한 K-팝 팬 가운데 상당수는 1년 동안 여러 장을 산 것으로 집계됐다. K-팝 앨범은 음악 저장 매체보다 팬덤 참여, 수집, 소장, 아티스트 지원이 결합된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미국 전체 피지컬 음악시장의 주인공은 여전히 바이닐다. RIAA의 2025년 결산에서 미국 바이닐 판매는 19년 연속 증가했고, 매출은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판매량도 바이닐 4680만 장, CD 2950만 장으로 차이가 났다. 미국의 일반 피지컬 시장이 바이닐 중심의 레트로·컬렉터 소비에 가까운 반면, K-팝은 CD 패키지 중심으로 팬덤 구매를 반복시킨다. 같은 피지컬 시장 안에서도 장르별 소비 문법이 갈라진 셈이다.
2025년 미국 CD 판매 상위권에는 스트레이키즈(Stray Kids), 엔하이픈(ENHYPEN), 에이티즈(ATEEZ),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 등 K-팝 아티스트가 다수 들어갔다. 스트레이키즈는 'KARMA', 'DO IT', '合(HOP)' 등 복수 앨범으로 미국 CD 판매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엔하이픈과 에이티즈도 강한 앨범 판매력을 기록했다. 루미네이트 연말 데이터 기준 스트레이키즈의 'KARMA'는 미국 탑 앨범 차트에서 58만5000장으로 2위, 'DO IT'은 46만 장으로 4위를 기록했다.
앨범 판매의 의미는 차트 성적을 넘어선다. K-팝 팬덤은 한 장의 앨범을 음악 청취 수단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버전별 커버, 멤버별 포토카드, 랜덤 구성, 초도 한정 특전, 팬 이벤트 응모 구조가 구매를 분화시킨다. 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사는 행위는 팬덤 내부에서 비정상적 과소비로만 읽히지 않는다. 원하는 포토카드를 얻기 위한 수집, 교환을 위한 재고 확보, 차트 반영을 염두에 둔 조직적 구매, 아티스트 활동을 지원한다는 상징적 소비가 한꺼번에 작동한다.
한국 음반 수출 통계에서도 미국 시장의 부상은 분명하다. 2026년 1분기 한국 음반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9% 증가한 1억2000만 달러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분기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국가별 비중은 미국 28.8%, 일본 25.3%, 유럽연합 16.5%, 중국 14.4%, 대만 6.9% 순이었다. 지난해까지 1위를 유지하던 일본을 미국이 앞질렀다.
미국의 비중 확대는 K-팝 수출 구조의 변화를 말한다. 일본 시장은 오랜 기간 K-팝 음반 판매의 핵심 지역이었다. 팬클럽, 쇼케이스, 현지 유통망, 오프라인 매장이 안정적으로 결합된 시장이었다. 2026년 1분기 통계에서 미국이 최대 수출국으로 올라선 흐름은 K-팝 앨범 소비가 아시아권 팬덤 시장에 머물지 않고, 북미의 디지털 네이티브 팬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미국 팬덤의 앨범 구매는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유통이 함께 받치고 있다. 팬들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음원을 듣고, 유튜브와 틱톡에서 퍼포먼스 영상을 소비하며, 위버스와 SNS에서 멤버별 콘텐츠를 따라간다. 앨범 구매는 해당 과정의 끝이 아니라 팬덤 활동의 한 축이다. 앨범을 산 뒤 포토카드를 공개하고, 교환 게시물을 올리고, 언박싱 영상을 만들고, 특정 버전의 희소성을 공유하는 과정까지 소비가 이어진다. CD 매출은 음반 매장의 계산대에서 끝나지 않고 팬 커뮤니티 안에서 다시 순환한다.
K-팝 기획사 입장에서는 앨범이 가장 오래된 상품이면서도 가장 정교하게 진화한 수익 모델이다. 스트리밍 수익은 플랫폼 정산 구조에 좌우되고, 음원 한 곡의 단가는 낮다. 반면 피지컬 앨범은 발매 시점에 대규모 매출을 만들고, 예약 판매와 초동 판매, 차트 반영, 팬 이벤트를 한꺼번에 움직인다. 제작비와 물류비, 재고 부담이 따르지만, 강한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에게는 현금 흐름과 팬덤 결속을 동시에 확보하는 장치가 된다.
미국 음악산업의 큰 흐름도 피지컬 소비의 재해석을 허용하고 있다. IFPI의 2026년 글로벌 음악 보고서에서 2025년 세계 녹음음악 매출은 317억 달러로 전년보다 6.4% 증가했고, 스트리밍 매출은 220억 달러를 넘어 전체의 69.6%를 차지했다. 동시에 피지컬 포맷 매출은 8.0% 증가했다. 유료 스트리밍이 음악산업의 중심을 지키는 가운데, 실물 포맷은 팬들이 손에 잡히는 음악 경험을 원하는 영역에서 다시 성장했다.
K-팝 CD 소비의 확장은 산업적 기회와 부담을 함께 키운다. 앨범 패키지의 고도화는 팬덤 구매력을 매출로 전환하지만, 랜덤 포토카드와 다종 버전 발매는 과소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환경 부담과 폐기 앨범 문제도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차트 성적을 위해 구매를 독려하는 팬덤 문화가 강해질수록, 팬 피로와 가격 저항도 커질 수 있다. 피지컬 판매가 K-팝의 강점으로 남기 위해서는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앨범 자체의 완성도, 패키지의 지속 가능성, 팬 이벤트의 투명성, 과잉 구매를 줄이는 유통 설계가 함께 따라야 한다.
2026년 미국 K-팝 시장에서 CD는 낡은 매체가 아니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도 팬덤은 앨범을 손에 쥐는 방식으로 소속감과 지지를 확인한다. 미국이 한국 음반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올라선 흐름은 K-팝 팬덤 경제가 북미에서 본격적인 실물 소비 기반을 확보했다는 신호다. 다음 국면의 변수는 판매량 자체보다 반복 구매에 기대 온 앨범 경제를 얼마나 건강한 팬덤 소비로 조정하느냐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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