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M+ ‘Space Enter Shift’, 탁구대·라이브 시네마·워크숍으로 확장된 무빙이미지 실험
[KtN 임우경기자]홍콩 M+ 내부에 탁구대가 놓였다. 관객은 라켓을 들고 공을 주고받았고, 계단형 공간에서는 전자음악과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상영관 안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익숙한 영화제 풍경보다, 미술관 곳곳을 이동하며 작품을 만나도록 짜인 동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샤넬이 후원한 제3회 M+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제(AAGFF)는 올해 ‘Space Enter Shift’를 내걸고 영화제를 상영 행사보다 넓은 무빙이미지 플랫폼으로 구성했다.
제3회 M+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제는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홍콩 M+에서 열렸다. 올해 주제는 ‘Space Enter Shift’였다. 공간을 뜻하는 ‘Space’와 키보드 명령어인 ‘Enter’, ‘Shift’를 함께 놓은 제목은 기술 장치, 관객 이동, 미술관 공간, 정치적 경계의 변화를 한꺼번에 끌어들였다. 영화제는 상영작을 모아 보여주는 방식에 머물지 않고, 라이브 시네마, 음악 공연, 설치, 워크숍, 토크를 같은 프로그램 안에 배치했다.
탁구대는 올해 행사 성격을 압축한 장치였다.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의 참여형 설치는 관객을 좌석에 앉은 수용자로만 두지 않았다. 관객은 탁구공을 치며 작품 안으로 들어갔고, 미술관 로비와 통로는 작품을 지나치는 배경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장소가 됐다. 영화제에서 탁구대가 놓였다는 사실은 가벼운 이벤트처럼 보일 수 있지만, AAGFF가 영화의 조건을 스크린·좌석·상영시간에서 관객의 몸과 공간 경험으로 넓히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라미아 가르가시(Lamya Gargash)와 비비안 왕(Vivian Wang)의 ‘Tracking Nomadism (Live)’는 새롭게 커미션된 라이브 시네마 협업으로 소개됐다. 계단형 공간 앞에는 전자음악 장비와 키보드가 놓였고, 관객은 공연과 영상이 함께 진행되는 구조 안에서 작품을 받아들였다. 영화가 완성된 파일이나 필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연주되고 편집되며 관객 앞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시간 기반 예술로 다뤄진 셈이다.
워크숍 테이블 앞에 선 참석자들은 스크린 프린팅 도구를 직접 다뤘다. 손으로 밀고 찍어내는 과정은 디지털 영상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실험영화의 긴 역사 안에서는 낯선 구성이 아니다. 필름의 물성, 투사 장치, 편집의 리듬, 퍼포먼스와 관객 참여는 오랫동안 아방가르드 영화가 산업영화와 거리를 두는 방식이었다. M+는 해당 계보를 오늘의 미술관 프로그램 안으로 옮겼다.
다만 확장이 곧바로 성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영화, 설치, 퍼포먼스, 워크숍, 파티가 한 행사 안에 들어오면 관객 경험은 풍성해지지만 작품별 밀도는 분산될 수 있다. 아방가르드 영화 특유의 불편함과 급진성이 미술관의 세련된 운영 방식 안에서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 행사장 전면에 놓인 브랜드 로고와 정돈된 그래픽은 프로그램의 가시성을 높였지만, 실험영화가 제도와 후원 구조 안으로 들어올 때 생기는 긴장도 함께 남겼다.
올해 AAGFF가 다룬 ‘공간’은 미술관 내부의 동선에만 머물지 않았다. 라리사 산수르(Larissa Sansour)와 쇠렌 린드(Søren Lind)의 ‘A Sunken Tale of Losses Delayed’는 팔레스타인, 망명, 식민주의, 약탈 문화재의 문제를 영화적 서사 안으로 끌어들였다. 공간은 배경이 아니라 이동의 권리, 소유의 역사, 박물관 제도, 기억의 귀속을 둘러싼 정치적 조건으로 놓였다. 올해 프로그램에서 공간은 아름다운 건축이나 무대 연출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디에 머물 수 있고 어떤 역사가 누구의 이름으로 보존되는가에 가까웠다.
쉬빙(Xu Bing)의 ‘Dragonfly Eyes’는 감시카메라 영상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소개됐다.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촬영하는 작가의 위치보다, 이미 생산된 시각 자료를 수집하고 재배열하는 작가의 위치가 두드러진다. 도시와 플랫폼, 감시 장치가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시대에 무빙이미지는 창작의 결과물인 동시에 데이터의 부산물이 됐다. 쉬빙의 작업은 새 이미지를 찍는 대신, 이미지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체계를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백남준(Nam June Paik)의 ‘Wrap Around the World’가 같은 프로그램에 놓인 점도 의미가 있다. 1988년 위성 생중계를 통해 구현된 글로벌 연결의 상상력은 2026년의 관객 앞에서 다른 감각으로 읽힌다. 위성과 방송이 공동 창작과 네트워크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졌던 시기와 달리, 현재의 네트워크 환경은 플랫폼 자본, 감시, 알고리즘, 데이터 소유 문제와 떨어지기 어렵다. AAGFF는 백남준의 기술 낙관과 쉬빙의 감시영상 시대를 나란히 놓으며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가 통과한 기술사의 간극을 드러냈다.
관객 구성도 눈에 띄었다. 객석에는 젊은 관객과 창작자, 문화예술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가 회고전의 대상이나 소수 연구자의 관심사로만 남지 않고, 동시대 관객과 다시 만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었다. 실케 슈미클(Silke Schmickl)이 말한 “선구 세대는 자기 작업의 지속적 관련성을 확인하고,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역사를 알게 된다”는 설명은 올해 행사 구성과 맞닿아 있다.
샤넬의 후원은 현장 곳곳에서 확인됐다. 대형 스크린과 행사 그래픽에는 M+, AAGFF와 함께 CHANEL 로고가 배치됐다. 이 지점에서 기사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샤넬이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의 창작 방향을 정했다거나 작품 해석을 주도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확인 가능한 범위는 후원과 플랫폼 지원이다. 샤넬은 작품 안쪽보다 미술관, 큐레이터십, 관객 형성, 행사 가시성을 떠받치는 위치에 섰다.
명품 브랜드의 문화 후원은 늘 양면을 가진다. 자본이 들어오면 작가와 기관은 더 큰 공간, 더 나은 기술, 더 넓은 관객 접점을 얻는다. 동시에 브랜드는 실험성과 문화적 권위를 자신의 이미지 자산으로 흡수한다. AAGFF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샤넬 후원은 행사 규모와 국제적 가시성을 키웠지만,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이 고급 문화행사의 언어로 정돈되는 순간 생기는 거리감도 지워지지 않는다.
제3회 M+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제는 영화가 극장 밖으로 이동한 현재를 보여준 행사였다. 탁구대, 라이브 시네마, 스크린 프린팅, 대형 상영관, 미술관 공용 공간은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 움직였다. 백남준의 위성 생중계와 쉬빙의 감시영상, 산수르의 지정학적 서사는 기술과 공간, 권력의 문제를 서로 다른 시대의 언어로 다뤘다. 샤넬 후원은 행사의 외연을 넓혔지만, 실험영화가 제도와 브랜드 안에서 어떻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올해 AAGFF의 가치는 찬사보다 그 균형 위에서 더 선명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