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LGBTQ+ 뮤지엄과 한국 퀴어락 사이…공공기관이 나눠야 할 보존의 책임
[KtN 임민정기자]지난 7월 15일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플래그십에는 새 옷 대신 박물관 이야기가 놓였다. 마이클 코어스와 벤 가르시아(Ben Garcia) 집행이사는 패션계 인사들에게 2028년 개관할 아메리칸 LGBTQ+ 뮤지엄(American LGBTQ+ Museum)을 소개했다. 뉴욕 센트럴파크 웨스트의 더 뉴욕 히스토리컬(The New York Historical)에 들어설 박물관은 앞으로 2년 동안 소장품을 모으고 개관 전시를 준비한다. 뉴욕에 오지 못하는 관람객을 위해 일부 전시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계획도 세웠다.
행사장은 화려했지만 박물관이 모으려는 삶은 오랫동안 공적인 기록에서 밀려나 있었다. 가족에게 알리지 못한 연애, 직장에서 감춰야 했던 정체성, 질병과 범죄의 언어로 분류됐던 사람들, 장례식에서 관계를 설명하지 못했던 동반자의 시간이 전시와 교육의 자료가 된다.
소수자의 문화가 제도 안에 들어오는 과정은 대개 늦다. 당사자들이 흩어진 자료를 먼저 모으고, 활동가들이 사라질 기록을 붙잡은 뒤에야 박물관과 대학, 공공기관이 역사적 가치를 발견한다. 차별은 사회가 만들지만 기록의 비용은 차별받은 사람들이 부담하는 순서가 되풀이돼 왔다.
박물관은 이미 알려진 영웅을 기념하는 공간에 머물 수 없다. 누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어떤 말이 사람을 병리와 범죄의 대상으로 만들었는지, 어느 지역과 계층의 삶이 기록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는지까지 다뤄야 한다. 소수자의 문화는 아름다운 결과물만 진열하는 일이 아니라 배제의 과정과 살아남은 방식까지 남기는 작업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이 같은 일을 민간의 힘으로 이어왔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2002년 아카이브 구축을 장기 목표로 세웠고, 2008년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한 뒤 2009년 홈페이지를 열었다. 도서와 문서, 영상에서 출발한 수집 범위는 사진과 각종 물품으로 넓어졌다. 누구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공공 아카이브를 지향하지만 운영 기반은 활동가와 후원자의 몫이었다.
퀴어락에는 거창한 역사서만 있지 않다. 1995년 일본의 성소수자 단체가 한국 단체에 보낸 편지 봉투, 퀴어문화축제의 집회 신고를 둘러싼 기록, 교과서 수정을 요구한 기자회견 자료, 성명서와 피켓, 잡지와 만화책이 함께 놓여 있다. 성소수자를 지지한 기록뿐 아니라 혐오와 반대 활동의 자료도 수집 대상이다.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를 어떤 언어와 제도로 대했는지 살피려면 불편한 기록도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선언보다 봉투와 피켓에 오래 남는다. 한 사람이 누구와 연락했고, 어떤 단어로 자신을 설명했으며, 거리에서 어떤 요구를 내걸었는지는 당시의 생활과 사회관계를 드러낸다. 기록물이 사라지면 훗날 남는 것은 유명인의 회고와 국가기관의 문서뿐이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일상은 다시 역사 밖으로 밀려난다.
202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에서 사실혼 관계의 이성 동반자와 동성 동반자를 달리 취급한 처분을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 판단했다. 판결은 건강보험 제도 안에서 동성 동반자를 배제해 온 행정처분을 바로잡았지만, 혼인제도 전체를 바꾼 결정은 아니었다.
판결문에는 법리가 남는다. 함께 산 사람들의 시간은 계약서와 사진, 편지, 통장, 병원 서류, 추모 기록에 흩어져 있다. 제도가 관계를 뒤늦게 일부 인정하더라도 생활의 역사는 저절로 보존되지 않는다. 당사자가 세상을 떠나거나 가족이 자료를 없애면 수십 년의 삶도 함께 사라진다.
국공립 박물관과 기록관은 민간 아카이브의 자료를 전시에서 활용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보존시설과 전문인력, 디지털 전환, 기록물 복원에 드는 비용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 민간 활동가가 모은 자료를 공공기관이 필요할 때 빌려 쓰고, 수집과 정리의 부담은 다시 활동가에게 돌려보내는 구조로는 기록이 오래 버티기 어렵다.
공적 지원이 민간 아카이브의 흡수를 뜻해서도 안 된다. 성소수자의 편지와 사진에는 공개되지 않은 정체성과 가족관계가 담겨 있다. 자료의 소유권과 공개 범위, 익명 처리와 열람 시기는 당사자와 공동체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맡아야 할 몫은 해석권을 가져오는 일이 아니라 독립적인 기록 활동이 지속될 조건을 마련하는 데 있다.
서울에 모인 기록만으로 대한민국 성소수자의 역사를 채울 수도 없다. 지역 퀴어문화축제와 대학 모임, 노동현장, 군대, 농촌과 중소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자료가 함께 필요하다. 지역에서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사람일수록 기록도 적게 남는다.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역사의 비중까지 줄이면 침묵을 강요했던 사회의 결과가 다시 박물관의 서열이 된다.
소수자의 문화는 성소수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복지사업의 성과물로만 남기고, 이주민의 생활을 다문화축제의 음식과 의상으로만 소개하면 당사자는 문화의 주체가 아니라 정책의 대상에 머문다. 장애인이 만든 미학과 이주민이 한국에서 쌓은 노동·가족·지역의 기록도 대한민국 현대사의 일부다.
문화기관은 소수자를 초대하는 횟수보다 결정권의 위치를 바꿔야 한다. 전시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고르며 설명문을 쓰는 과정에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 작품과 기록의 주인공은 소수자인데 해석과 예산은 다수자가 독점한다면 전시장의 얼굴만 달라질 뿐 운영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기업과 유명인의 후원도 같은 원칙 안에서 다뤄야 한다. 마이클 코어스와 배우자 랜스 르 페레(Lance Le Pere)는 박물관 이사회에 참여하고 기부와 공간 명명에 나섰다. 코어스는 매장과 패션계 인적 관계망도 박물관에 연결했다. 재원과 관심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선택이지만, 후원자의 이름과 박물관의 역사적 판단은 구분돼야 한다. 코어스는 후원자인 동시에 향후 미국 퀴어 패션사에서 다뤄질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학예 조직의 독립성은 후원자를 배척하기 위한 원칙이 아니다. 기부 규모가 역사적 비중을 결정하지 않도록 하고, 유명인의 성공담이 같은 시대에 사라진 사람들의 기록을 밀어내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문화기관의 권위는 후원자의 명성보다 자료의 출처와 해석의 투명성에서 나온다.
축제와 캠페인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사회의 변화를 앞당긴다. 그러나 축제가 끝난 뒤에는 현수막과 성명서, 참가자의 사진과 회의록, 반대와 충돌의 기록까지 남겨야 한다. 기념일에만 소수자를 부르고 다음 해까지 아무것도 보존하지 않는 문화는 매번 처음부터 같은 설명을 반복하게 만든다.
2028년 뉴욕에 LGBTQ+ 뮤지엄이 문을 연다는 소식이 한국에 남기는 자극은 대형 건물을 그대로 따라 짓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퀴어락의 자료를 사라지지 않게 하고, 지역과 세대별 기록을 더 모으며, 공공기관이 보존 비용과 전문인력을 나누는 일이 먼저다. 장애예술과 이주민의 생활 기록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소수자를 위한 문화는 누군가를 특별히 우대하는 사업이 아니다. 국가의 기록에서 빠진 시민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편지 한 장과 피켓 하나, 공연 한 편과 가족사진 한 장이 공적인 기억으로 남을 때 대한민국의 문화도 실제 사회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빠진 사람을 더한 뒤에야 역사는 정확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