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언어보다 먼저 시작된 한일 연극인들의 공동작업…진실과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를 함께 찾는 관계의 서사
[KtN 박준식기자]한국 배우가 한국어로 말한다. 일본 배우는 일본어로 답한다. 어느 한쪽도 자기 언어를 내려놓지 않는다. 일본어 대사의 뜻은 한글 자막으로 전해지지만, 목소리에 담긴 억양과 호흡,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까지 번역되지는 않는다. 관객은 자막을 읽으며 배우의 목소리를 듣고, 배우들은 익숙하지 않은 언어 사이에서 상대의 표정과 숨을 기다린다.
Theatre M.I.R와 일본 THEATRE ATMAN의 한일 합동공연 '정류장-두 개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방식이다. 이재상이 쓰고 연출한 단막극 '도망자'와 '사랑의 종말'에는 한국 배우 양창완, 양은영, 유무선, 김지수와 일본 배우 시미즈 쿠미(Shimizu Kumi), 고모리 사토시(Komori Satoshi), 이치노세 카나데(Ichinose Kanade)가 출연한다. 공연은 7월 30일 인천 문학시어터에서 시작해 8월 5일부터 서울 대학로 드림시어터로 이어진다.
우리가 한일 관계를 정치적 언어로 규정하기 전부터 문화는 이미 이어져 있었다.
정상회담과 공동발표문이 나오기 전에도 배우들은 연습실에서 서로의 대사를 기다렸다. 외교적 긴장이 높아진 시기에도 음악과 영화, 미술과 연극은 국경을 오갔다. 정부가 관계 개선을 선언하거나 갈등의 수위를 높일 때도 예술가들은 번역하고 연습하고 공연했다. 관객들은 상대의 언어가 들리는 객석에 앉았고, 창작자들은 같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표현을 조정했다.
한일 관계를 설명하는 공식 언어는 대체로 정치에서 시작된다. 과거사와 안보, 통상과 공급망, 정상 간 신뢰와 외교 일정이 양국 관계의 온도를 결정한다. 국가가 져야 할 역사적·제도적 책임도 정치의 영역에 남는다.
문화는 관계의 다른 층위를 맡아왔다. 정치는 국가의 입장을 정리하지만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간을 쌓는다. 정치는 관계를 규정하고 문화는 관계를 살아낸다. 한 번의 합의문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한 번의 갈등으로 모두 사라지지도 않는 시간이다.
Theatre M.I.R와 THEATRE ATMAN의 공동작업도 한 차례의 친선행사로 끝나지 않았다. 두 극단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전쟁과 인간의 어리석음, 기술문명과 인간 존재, 역사적 기억을 무대에 올려왔다. 2024년 아시아 세계 희곡작가 축제에서는 페르난도 아라발(Fernando Arrabal)의 'AI 기도'와 '이야기 카페 vol.1-전쟁터의 피크닉'을 한일 합동공연으로 선보였다. '전쟁터의 피크닉'은 전쟁의 무익함을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과 결합했고, 'AI 기도'는 인공지능과 인간 존재의 경계를 다뤘다.
2025년에는 국제 협업 작품 'TUKO! TUKO!'를 인천과 서울, 일본 도쿄에서 공연했다. 한일 배우들이 각자의 언어로 전쟁과 역사적 상처를 다룬 뒤, 올해는 사랑에 관한 두 편의 단막극으로 다시 만났다.
이재상 연출은 “작년의 작품이 꽤나 무거웠으니 올해는 조금 가벼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1년이 지나는 동안 지구는 좀 더 더워지고, 세계는 좀 더 어수선해진 느낌”이라면서도 “세상이 어두울수록 사랑과 웃음이 더욱 밝게 빛나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전쟁에서 사랑으로 옮겨온 선택은 현실을 등지는 방향 전환이 아니다. 어두운 세계를 다시 설명하는 대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감정과 웃음의 가치를 무대에 남기는 일이다. 작품에는 도망과 종말, 저승과 죽음이 등장한다. 표현은 한층 가벼워졌지만 인간의 선택과 선택 이후에 남는 책임까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정류장'의 첫 번째 단막 '도망자'에서는 젊은 여자가 외진 정류장에 있는 청년을 찾아온다. 버스는 오지 않고, 곤란한 처지에 놓인 남자와 목적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여자가 대화를 시작한다. 두 번째 단막 '사랑의 종말'에서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자가 허름한 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섬뜩한 대화가 이어지고 현실의 질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한쪽은 현실의 정류장이고, 다른 한쪽은 저승으로 향하는 정류장이다.
정류장은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 놓인다. 떠나려는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도 잠시 같은 공간에 머문다. 오래 함께할 계획이 없던 사람들이 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상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정류장'이 한일 배우들의 공동무대와 겹쳐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일 양국은 같은 기억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식민지배와 전쟁, 피해와 책임을 둘러싼 역사적 간격이 남아 있다. 문화는 차이를 감상적인 우정으로 덮는 도구가 될 수 없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예술가들의 교류에 떠넘겨서도 안 된다.
문화가 맡아온 역할은 기억을 지우는 화해가 아니라 기억을 지닌 채 대화를 지속하는 일이다. 상대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말을 끝까지 듣고, 서로 다른 기억이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는 일과 현재의 시민들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예술의 공동작업은 인간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끝까지 함께 찾는 시간이다. 누가 더 옳은지를 서둘러 판정하기보다 폭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사랑이 언제 위로가 되고 언제 집착으로 변하는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를 작품 안에서 함께 들여다본다.
진실을 향한 갈망도 상대를 자신의 결론에 굴복시키는 태도와 다르다. 서로 다른 언어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한 차이를 지우지 않고 같은 작품에 오래 머무를 때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한국 배우는 한국어로 감정을 드러내고 일본 배우는 일본어로 응답한다. 말은 다르지만 공연은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된다.
공동무대에는 선언보다 구체적인 노동이 놓인다. 상대 배우의 대사가 끝나는 순간을 익혀야 하고, 자막을 읽은 관객이 다시 배우에게 시선을 돌리는 시간도 헤아려야 한다. 웃음이 한국과 일본 관객에게 서로 다른 속도로 전달될 가능성까지 연습 과정에서 조정해야 한다. 한 배우가 자신의 호흡만 고집하면 전체 공연이 흔들린다.
문화교류의 실제 모습도 다르지 않다. 상대를 좋아한다는 말만으로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 오해를 수정하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을 견디며,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움직여야 공동의 결과물이 나온다. 동일한 생각보다 함께 일하는 능력이 관계를 지탱한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도 문화와 인적 교류를 중요한 기반으로 두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1월 한일 공동언론발표에서 양국이 경제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서로의 삶과 미래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세대의 상호 이해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근간으로 제시하고, 청년 교류를 양적·질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향도 내놨다.
정부의 외교 구상이 문화 현장의 출발점이 된 것은 아니다. Theatre M.I.R와 THEATRE ATMAN의 협업은 정부 정책보다 앞서 축적돼 온 민간 창작의 시간이다. 바로 그 시간 때문에 두 극단의 공동무대는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문화적 방향과 나란히 읽힌다.
정부가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기보다, 현장에서 이미 이어져 온 관계를 제도적으로 지지하고 넓혀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공연 한 편을 외교정책의 홍보물로 묶을 필요도 없다. 문화는 정치의 성과를 장식하는 부속물이 아니라 정치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자리에서도 관계를 이어온 독립적인 힘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와 일본 나라를 한일 교류의 역사를 상징하는 도시로 언급하고, 양국이 문화 전반에서 삶과 미래를 공유한다고 밝힌 대목도 오랜 문화 교류의 축적 위에서 나온다. 정치의 공식 문장은 현장에서 이미 살아온 관계를 뒤늦게 제도의 언어로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할 일은 문화교류의 방향을 정해주는 데 있지 않다. 예술가들이 장기간 협업할 수 있도록 번역과 제작, 이동과 유통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한 번의 기념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는 조건을 갖추는 일이다. 문화 현장에서 축적된 신뢰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소진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한일 관계는 정상회담이 열릴 때 시작됐다가 외교적 갈등이 생길 때 멈추는 관계가 아니다. 배우들은 이미 함께 공연했고, 관객들은 두 언어가 동시에 들리는 객석에 앉았다. 전쟁을 다룬 작품 다음에 사랑을 다룬 신작이 만들어졌고, 인천과 서울, 도쿄를 오간 공동작업은 또 다른 무대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는 언제나 이어져 있다.
우리가 정치적 언어로 관계를 설명하기 전에도 문화는 충분한 역할을 해왔다. 갈등을 해결했다고 선언하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멈추지 않았고, 서로 같다고 꾸미지 않으면서도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역사적 책임을 흐리지 않으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남을 지켜왔다.
'정류장-두 개의 이야기'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함께 들리고, 현실의 정류장과 저승으로 향하는 정류장에서 사람들은 사랑과 선택, 기다림과 이별을 말한다.
정치는 한일 관계의 방향을 정하고 제도의 문을 연다. 문화는 열린 문을 지나 서로의 삶으로 들어간다. 정치가 관계에 이름을 붙이기 전부터 예술가들은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자리를 조정하며 관계를 살아왔다.
한일 관계는 언젠가 문화로 이어질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언어를 지우지 않은 무대와 진실을 향한 공동의 갈망,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를 함께 찾은 시간 속에서 이미 오래 이어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