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주년 컬렉션에 회색 코트·셔츠·플리츠 팬츠 다시 등장
‘마감에 쫓기는 늦은 밤’ 옷으로 옮겨…반듯한 직장복 대신 느슨해진 길이와 비율
[KtN 박인경기자]회색 롱코트 아래로 검은 팬츠가 길게 내려왔다. 몸에 붙는 회색 티셔츠와 어두운 바지, 넉넉한 아우터와 플리츠 팬츠, 무늬가 들어간 셔츠도 뒤를 이었다. 덴마크 브랜드 mfpen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코펜하겐 패션위크에서 공개한 2027 봄·여름(SS27) 컬렉션 ‘Deadlines’는 수트와 셔츠를 버리는 대신 직장복의 반듯한 차림새를 풀었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의 옷이 이번 컬렉션의 중심에 놓였다.
mfpen이 내세운 ‘overworked’ 오피스웨어는 극적인 변형보다 일하면서 흐트러지는 옷의 상태에 가깝다. 재킷과 코트에는 몸을 조이지 않는 여유가 생겼고, 팬츠는 신발 가까이까지 내려왔다. 셔츠와 티셔츠는 반드시 수트 안에 갖춰 입는 상의로 묶이지 않았다. 이후 등장하는 니트에서는 소매가 손을 지나 길게 내려오고, 울 쇼츠와 스커트는 안감이 드러날 만큼 짧아진다. 새 옷의 완벽한 상태보다 여러 시간 입고 움직인 뒤 달라진 길이와 형태를 디자인에 담았다.
회색 롱코트는 직장복의 익숙한 틀을 그대로 남긴다. 허리를 묶는 긴 코트와 어두운 팬츠, 검은 신발의 조합에는 과장된 장식이 없다. 코트는 무릎 아래로 충분히 내려오고 몸통에는 여유가 남는다. 팬츠도 발목에서 짧게 끊기지 않는다. 몸에 정확하게 맞춘 비즈니스 수트와 달리 옷과 몸 사이에 공간을 두면서 같은 회색 정장의 인상을 바꿨다.
검정과 회색, 차콜과 네이비를 중심으로 한 색도 변화의 폭을 낮춘다. 창립 10주년을 강한 색이나 로고로 강조하기보다 수트와 코트의 길이, 팬츠의 폭, 상의를 입는 방식에 시선을 모았다. 체크와 스트라이프, 꽃무늬가 일부 등장하지만 전체 색조를 흔들 정도로 넓게 쓰이지 않는다.
10주년이라는 숫자보다 mfpen이 지난 시간 동안 다뤄온 옷이 앞에 섰다. 수트와 셔츠, 팬츠는 브랜드의 옷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익숙한 품목을 다시 가져오되 한 벌로 빈틈없이 맞추는 방법에서 멀어졌다.
회색 반소매 티셔츠와 어두운 팬츠는 오피스웨어를 다루는 범위를 넓힌다. 재킷과 셔츠를 모두 갖춰야 직장복이 된다는 공식에서 벗어나 상의 하나와 팬츠만으로도 같은 색조와 분위기를 이어간다. 작은 검은 가방을 손에 들었지만 옷 자체는 장식이 거의 없다.
몸에 붙는 티셔츠와 여유 있는 팬츠의 차이도 분명하다. 상체는 간결하게 정리하고 하체에는 넉넉한 폭을 남겼다. 코트와 수트에서 출발한 직장복이 평소 입는 티셔츠까지 내려오면서 업무복과 일상복 사이의 간격이 좁아진다.
오랜 시간 일한 뒤의 옷차림을 떠올리면 변화는 더 자연스럽다. 출근할 때 입었던 재킷은 벗을 수 있고 셔츠의 단추는 느슨해진다. 여러 차례 앉고 일어선 바지는 처음과 같은 선을 유지하기 어렵다. ‘Deadlines’는 사무실을 무대 장치로 재현하거나 업무를 상징하는 문구를 옷에 새기는 대신 그런 시간을 재단과 스타일링으로 옮겼다.
넓게 떨어지는 회색 플리츠 팬츠에는 정장 바지의 흔적이 선명하다. 허리를 벨트로 잡고 앞주름을 넣은 형태는 익숙하지만 바지 폭과 길이가 달라졌다. 신발 위까지 이어지는 바짓단은 발목에서 반듯하게 끝나는 전통적인 수트 팬츠보다 느슨하다.
상체에는 어두운 아우터를 겹쳐 입어 회색 팬츠와 색을 나눴다. 재킷과 팬츠를 같은 원단으로 맞춘 셋업보다 각자 다른 옷장에서 꺼낸 품목을 함께 입은 인상이 강하다. 한 벌의 수트가 아니라 재킷과 팬츠를 따로 활용하는 지금의 옷차림에 가까운 조합이다.
플리츠 팬츠를 없애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mfpen은 직장복을 새롭게 보이게 하려고 익숙한 구조부터 지우지 않았다. 앞주름과 벨트, 재킷과 셔츠 같은 기본은 남겨두고 바지 폭을 넓히거나 길이를 늘리는 쪽을 택했다. 작은 조정이 쌓이면서 수트 특유의 긴장된 인상이 낮아진다.
무늬가 들어간 밝은 셔츠와 검은 팬츠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이어진다. 셔츠를 팬츠 안에 넣은 기본적인 차림이지만 몸을 따라 바짝 붙는 업무용 셔츠와는 차이가 있다. 넉넉한 상의와 곧게 내려오는 팬츠가 어깨부터 발끝까지 여유 있는 선을 만든다.
셔츠는 ‘Deadlines’에서 수트의 부속품에 머물지 않는다. 재킷 없이 단독으로 입기도 하고, 패턴을 넣거나 이후에는 타이와 함께 느슨하게 연출한다. 회사원의 대표적인 옷 가운데 하나인 셔츠를 그대로 남겨놓으면서 입는 방법을 달리한 것이다.
직장복을 둘러싼 변화도 여기서 읽힌다. 수트를 한 벌로 갖춰 입는 날과 재킷만 걸치는 날, 셔츠 대신 티셔츠를 입는 날을 완전히 다른 옷차림으로 나누기 어려워졌다. mfpen은 코트와 셔츠, 재킷과 티셔츠를 같은 색조 안에 놓으면서 하나의 옷장에서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검은 재킷과 어두운 팬츠에서는 다시 수트의 형태가 짙어진다. 재킷과 팬츠가 같은 계열의 색으로 이어지지만 몸을 단단하게 감싸지는 않는다. 넉넉한 재킷과 길게 내려오는 팬츠가 앞서 등장한 회색 코트, 티셔츠, 셔츠와 연결되면서 런웨이 초반의 방향을 잡는다.
회색 코트에서 티셔츠, 플리츠 팬츠와 셔츠를 거쳐 다시 검은 수트로 이어지는 구성에는 공통점이 있다. 특별한 날의 옷보다 평일에 반복해서 입을 수 있는 품목이 많다는 점이다. mfpen은 10주년을 회고하기 위해 과거의 대표 디자인을 나열하지 않고, 브랜드가 꾸준히 다뤄온 수트와 셔츠를 지금 입는 방식에 맞춰 다시 조정했다.
‘Deadlines’라는 이름도 직장인의 현실과 맞닿는다. 마감은 정해진 시간보다 일을 길게 만들고, 옷은 그 시간을 함께 보낸다. 오전에는 반듯했던 셔츠와 바지가 저녁에도 같은 상태일 수는 없다. 재킷을 벗고 다시 걸치며 바지는 구겨지고, 타이는 느슨해진다. mfpen은 그런 변화를 수트의 결함으로 감추지 않고 이번 컬렉션의 디자인으로 가져왔다.
창립 10주년에도 수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회색 코트와 검은 재킷, 셔츠와 플리츠 팬츠가 그대로 남았고, 익숙한 품목의 길이와 폭이 달라졌다. 반듯하게 맞춰 입는 방법보다 하루 동안 실제로 입고 움직이는 옷에 가까워졌다.
mfpen은 ‘Deadlines’를 통해 새 직장복을 따로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직장복을 다시 입는 방법을 택했다. 코트의 품을 넓히고 팬츠를 길게 내리며, 셔츠와 티셔츠를 수트 한 벌에서 떼어냈다. 창립 10년을 지나 다시 런웨이에 오른 수트에는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보다 마감을 향해 길어진 하루가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