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R FW26에 모인 영국산 램스울과 일본 직물, 스코틀랜드 편직…전통을 보존하는 대신 오늘의 옷으로 번역하는 법
[KtN 박인경기자]영국산 램스울이 스코틀랜드에서 니트로 짜였다. 편직에는 일본 기업 시마세이키(Shima Seiki)의 3D 기술이 쓰였다. 영국식 Balmacaan 코트에는 Cordura 원단과 일본산 Primaloft 단열재가 들어갔다. 작업복에서 출발한 Coverall Jacket은 히로시마에서 직조한 11온스 데님으로 제작됐다.
웨스트런던 편집숍 더 가브스토어(The Garbstore)의 자체 브랜드 TDR이 선보인 2026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옷의 국적을 간단히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원료가 생산된 곳과 직물을 짠 곳, 기술을 개발한 국가와 완제품을 만든 지역이 서로 다르다. 영국과 일본은 하나의 옷 안에서 각자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필요한 기능과 제작 기술을 나눠 맡았다.
패션은 오랫동안 국가와 도시의 이름으로 정체성을 설명해 왔다. 영국은 테일러링과 군복, 트렌치코트와 니트웨어로 기억됐고 일본은 정교한 직물과 염색, 새로운 재단과 편직 기술로 소개됐다. 지역의 역사와 산업이 만든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오늘의 옷은 어느 한쪽의 전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래된 외투의 형태에는 새로운 기능성 원단이 들어가고, 영국산 양모는 일본 기술을 거쳐 스코틀랜드에서 새로운 구조를 얻는다.
TDR FW26이 영국과 일본을 결합하는 방식은 표면적인 절충과 거리가 있다. 일본적인 무늬를 영국식 코트 위에 얹거나 서로 다른 전통복을 한 벌로 섞지 않았다. Balmacaan 코트의 절제된 외형은 그대로 두고 겉감과 단열 구조를 바꿨다. 작업복의 포켓과 넓은 품을 남긴 채 데님의 무게와 염색, 마모의 정도를 다시 정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장식보다 원단의 안쪽, 봉제선 주변, 편직 과정에 놓였다.
더 가브스토어 창립자 이언 페일리(Ian Paley)가 축적한 유틸리티 의류 아카이브에는 옷을 오래 입어 온 시간이 남아 있다. 군복과 작업복은 유행을 좇아 만들어진 옷이 아니다. 손이 닿는 곳에 포켓을 두고, 팔의 움직임에 맞춰 소매를 붙이며, 거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원단을 선택한다. 형태를 결정하는 기준이 장식보다 쓰임에 가깝다.
아카이브를 존중한다는 말이 과거의 옷을 그대로 되풀이한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의 구조를 복제하는 데 머문다면 옷은 시대극의 의상이나 수집품에 가까워진다. 전통이 현재에도 입히려면 보존과 함께 수정이 필요하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브랜드의 태도가 드러난다.
Cordura Balmacaan 코트에는 TDR의 판단이 간결하게 담겼다. Balmacaan 특유의 긴 길이와 완만한 어깨선은 유지했다. 울 코트의 익숙한 표면 대신 기능성 원단을 사용하고, 안감이 없는 제품과 일본산 Primaloft 단열재를 적용한 제품으로 나눴다. 과거 외투의 품격을 흉내 내는 데 머물지 않고 오늘의 이동과 기후, 겹쳐 입는 방식을 받아들였다.
Duxville Jacket에는 일본산 캔버스 안감과 래글런 소매, 몸통을 감싸는 파우치 포켓이 들어갔다. 래글런 소매와 넓은 포켓은 작업복의 구조에서 기능을 얻는다. 캔버스 안감은 재킷의 내부를 받친다. 어느 나라의 디자인인지 알리는 표식은 없지만 영국 의류의 계보와 일본 직물의 물성은 한 벌 안에서 각자의 몫을 수행한다.
영국과 일본이 오랫동안 공유해 온 관심도 쓰임에서 출발한다. 낡은 군복과 작업복을 대하는 두 나라의 태도에는 옷을 단순한 소비재로 보지 않는 시선이 깔려 있다. 처음의 형태뿐 아니라 입으면서 생기는 주름과 퇴색, 수선까지 옷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새것의 완벽한 표면보다 시간이 지나며 축적되는 변화를 중시한다.
히로시마에서 직조한 11온스 데님은 해당 태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Coverall Removed Jacket에는 손작업으로 마모된 흔적을 만들고 햇빛에 오래 노출된 듯한 선에이징(sun-aged) 염색을 적용했다. 포켓 일부는 외부에서 바로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했다. 새 데님 위에 오래 입은 작업복의 시간과 수선의 흔적을 다시 구성했다.
마모된 옷을 새 제품으로 재현하는 일에는 모순이 따른다.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생겨야 할 흔적을 생산 단계에서 미리 만든다는 점에서다. TDR은 해당 모순을 감추지 않는다. 제품명에 ‘Removed’와 ‘Repair’를 사용하고 제거와 수선의 자국을 디자인의 일부로 남겼다. 완벽한 새 옷처럼 꾸미기보다 이미 한 차례 시간이 지나간 듯한 상태에서 착용을 시작하도록 했다.
Jungle Repair Pant도 군용 팬츠의 형태와 수선 표현을 함께 가져왔다. 넓은 바지통은 짧은 재킷과 니트, 긴 코트 아래에서 부피를 유지한다. 남성 작업복의 실루엣을 여성용으로 작게 줄이지 않고 같은 폭으로 적용한 점도 눈에 남는다. 과거 군복에서 출발한 형태가 성별과 용도라는 기존 경계를 벗어나 일상의 옷으로 이동했다.
TDR의 데님은 빈티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래된 작업복의 외형을 오늘의 몸과 착장에 옮기는 과정에는 시간에 대한 해석이 들어 있다. 과거는 완성된 형식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에 따라 잘리고 감춰지며 다시 이어진다. 전통은 원형을 지킬 때보다 새로운 생활 속에서 계속 사용될 때 오래 남는다.
영국산 램스울 니트는 영국과 일본의 관계를 한층 선명하게 만든다. 원료는 영국에서 나오고 생산은 스코틀랜드에서 이뤄졌다. 옷의 입체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편직 기술은 일본에서 개발됐다. 크루넥과 튜닉, 비니, 스카프 가운데 어느 하나도 단일한 국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마세이키의 3D 편직 기술은 몸판과 소매를 따로 짠 뒤 봉제로 연결하는 공정을 줄인다. TDR은 기술의 성취를 과장된 형태로 전시하지 않고 일상적인 크루넥과 튜닉에 적용했다. 셔츠 위에 입고 재킷 안에 넣으며 겨울 착장의 중간층으로 사용했다. 기술은 눈에 띄는 장식이 아니라 옷을 만드는 방법과 입었을 때의 구조에 남는다.
스코틀랜드 니트웨어의 전통과 일본의 입체 편직은 서로 반대편에 놓이지 않는다. 전통은 과거의 도구와 방식만을 고수할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원료를 다루는 경험과 새로운 기술이 만날 때 생산지는 박물관이 아닌 현재의 산업으로 남을 수 있다. TDR의 램스울 니트는 전통을 지킨다는 말보다 전통이 살아남는 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일본산 면·울 체크 오버셔츠에서도 국가의 이미지는 뒤섞인다. 체크는 영국 복식의 오랜 문법을 떠올리게 하지만 원단은 일본에서 생산됐다. 무늬의 기원과 직물의 산지를 일치시키지 않은 채 넉넉한 품과 낮은 색상 대비로 컬렉션에 넣었다. TDR은 영국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을 외형만으로 나누기 어렵다는 사실을 옷 자체로 드러낸다.
블랙과 브라운, 올리브, 그레이를 중심으로 한 색상은 서로 다른 산지의 원단을 차분하게 묶는다. 코트는 길고 곧게 내려오며 재킷은 허리 부근에서 짧게 끝난다. 팬츠는 남녀 착장 모두 폭을 넉넉하게 유지한다. 셔츠와 니트, 베스트를 여러 겹 입어 소재의 차이를 조금씩 노출한다. 국가별 특징을 크게 선언하는 대신 색상과 비례를 통일해 한 컬렉션의 언어로 정리했다.
영국과 일본의 조합을 흔히 ‘전통과 혁신의 만남’이라고 부른다. 익숙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구분이다. 영국에도 기술과 산업이 있고 일본에도 오랜 직물 전통과 복식의 계보가 있다. 영국은 과거를 맡고 일본은 미래를 담당한다는 식의 구도는 두 나라가 축적한 시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TDR FW26에서 영국은 형태와 원료, 생산 경험을 제공한다. 일본은 직물과 단열재, 편직 기술을 보탠다. 역할은 제품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에서 생산한 체크 원단에는 영국 복식의 기억이 있고, 영국산 램스울에는 일본의 기술이 들어간다. 어느 한쪽이 원형이고 다른 한쪽이 보조 수단이라고 구분하기 어렵다.
동시대 패션에서 옷의 출생지는 하나가 아니다. 원료의 산지와 직조 공장, 가공 기술, 디자인이 시작된 도시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세계적인 생산망 자체는 새롭지 않다. TDR이 주목할 만한 부분은 복수의 산지를 화려하게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각 지역의 기술을 제품의 구체적인 쓰임과 연결했다는 데 있다.
Cordura는 코트의 외부를 맡고 Primaloft는 내부의 보온을 담당한다. 히로시마산 데님에는 마모와 퇴색을 새겼다. 일본의 3D 편직 기술은 영국산 램스울에 입체적인 구조를 부여했다. 일본산 캔버스는 작업 재킷 안쪽을 받친다. 국가의 이름은 장식적인 수식어가 아니라 원단과 기술이 선택된 이유에 가까워진다.
우리 시대의 컬렉션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는 일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옷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어느 부분을 고치며, 어떤 원료와 기술을 연결할지 선택하는 일도 창작에 포함된다. 디자이너의 권위가 모든 것을 새로 만드는 능력에서 나온다면 TDR의 옷은 다른 방향을 택한다. 축적된 지식과 기술의 관계를 정확하게 편집하는 능력으로 컬렉션을 만든다.
영국과 일본은 서로 닮았기 때문에 결합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역사와 생산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 옷을 오래 입는 방법, 과거의 형태를 현재에 남기는 방법을 함께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만난다. 영국의 아카이브는 일본의 직물과 기술을 통해 현재의 기능을 얻고, 일본의 제작 기술은 영국 의복의 오래된 형식 안에서 일상의 쓰임을 얻는다.
전통은 움직이지 않을 때 보존되는 유물이 아니다. 다른 시대의 몸과 생활을 받아들이며 조금씩 달라질 때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TDR FW26의 코트와 데님, 램스울 니트는 영국과 일본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국적을 잃지 않았다. 각자의 시간과 기술을 한 벌의 옷 안에 남긴 채 함께 입힐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두 나라의 결합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새로움을 주장해서가 아니라 오래된 것을 다시 사용할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