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주장 여성 안면 노출...더 심한 심리적 악화 가능성 있어
도덕성 선거전에 알려 판단 받게 했어야..'뒷북' 폭로 저의 의심 갈수록 확산

조영식  기자
조영식  기자

 

[KtN 조영식기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인과 관련된 과거의 정보가 더 이상 공개될 필요가 없거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 그 공개와 이용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 특히 수십 년 전의 개인적인 일이라면 당사자가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과거의 일을 현재로 소환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최근 포천문화원장 선거를 둘러싼 도덕성 논란을 지켜보며 기자는 ‘잊혀질 권리’와 함께 선거로 선택된 사람의 임기를 어떤 근거로 중단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지난달 29일 ‘문화원장 당선인 저지 시민운동’ 측이 주관한 집회에서 당선자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여성 A씨가 무대에 올라 20여 년 전의 개인사를 공개적으로 증언했다.

기자는 주장 내용에 앞서 의문이 들었다.

과연 A씨의 신상과 얼굴을 사실상 드러내면서까지 증언하게 하는 것이 당사자를 위한 일이었을까?

집회 현장에는 많은 시민이 있었고 A씨의 얼굴과 목소리 등이 노출됐다. 언론 보도에서 얼굴을 모자이크했다고 해도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신상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20년 전 일부 사람만 알고 있었거나 이미 잊힌 개인사가 집회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사자의 인격과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 역시 주최 측의 책임이다.

음성 변조나 가림막, 마스크와 모자 등 신상을 보호하면서도 증언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증언의 파급력만큼 증언하는 사람의 권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해 주장과 선거 결과는 별개의 문제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기자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존중받아야 하며, 사실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러나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선거로 당선된 사람이 사퇴해야 한다’는 결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선거는 유권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가장 중요한 민주적 절차다. 선거로 선출된 사람에게 사퇴를 요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의혹이나 소문,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뒤집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물론 선출직이라고 해서 잘못을 저질러도 임기를 보장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범죄가 확인되거나 법원의 판단으로 자격을 잃는 등 중대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됐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사퇴 문제는 감정이나 여론의 크기가 아니라 사실과 증거,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20년 전 사건, 무엇이 확인됐는가?

이번 논란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되는 시점이 20여 년 전이라는 점이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당사자의 삶도, 사회적 가치와 법적 기준도 달라졌다. 오래된 사건일수록 당시의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당선자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당사자 사이에 합의서가 존재한다며 언론에 공개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소문과 주장이 아니라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현재의 주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집회에서 공개된 내용 역시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당선자 측이 해당 내용에 대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제부터는 여론의 장이 아니라 법과 증거의 영역에서 판단 받게 될 것이다.

폭로의 시기와 선거의 의미

또 하나 생각해볼 대목은 ‘폭로의 시기’다.

후보자의 중대한 흠결이라면 선거 전에 공개해 유권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더 부합한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 당선자가 결정된 뒤 과거사를 공개하며 사퇴를 요구한다면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당선자 역시 ‘선거에서 이겼으니 책임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적인 자리에 선출된 사람이라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시민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으며, 사실로 확인된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무조건 편드는 것이 아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인권도 보호하고, 당선자의 권리도 보호하며, 사실은 사실대로 확인하는 것. 이것이 민주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포천시민에게도 ‘잊혀질, 잊을 권리’가 있다

이번 집회를 통해 20여 년 전의 개인사가 다시 포천사회에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멈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과거를 지금 다시 꺼내는 것이 정말 공익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과거를 근거로 선거로 선택된 사람에게 사퇴를 요구할 만큼 객관적인 증거가 확보됐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이번 논란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아니라 또 다른 상처를 만드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문화원장 당선자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러나 그 책임은 증거와 절차를 통해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반대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면 무분별한 신상 공개와 사퇴 압박도 멈춰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그 꽃을 지키는 방법은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당선됐을 때만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당선됐을 때도 정당한 절차와 결과를 존중하는 데 있다.

포천문화원장 문제도 이제 비난과 폭로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래된 사건일수록 차분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의혹은 검증하며, 잘못이 확인되면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도 인격권이 있고, 당선자에게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포천시민에게도 그 선택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 세 가지 권리가 함께 존중될 때 비로소 이번 논란은 포천사회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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