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불, 2024년 초연 뒤 재정비 거쳐 2026년 대학로 무대로
모기·파리·개미·거미의 충돌 속에 비친 돈, 소유, 관습의 질서
[KtN 박준식기자]극단 불의 연극 ‘모기 전쟁’이 2026년 9월 대학로 드림시어터 무대에 오른다. 2024년 초연 뒤 약 2년간 재정비와 각색을 거친 작품으로, 초연의 구조와 인물 관계, 극의 흐름을 새롭게 다듬은 재연이다. 공동창작으로 출발한 이 작품에는 예술감독 전기광, 연출 김산, 조명 맹봉학, 의상 전서진, 무대 한동현, 소품 황도석, 홍보 문상원, 조연출 오서란·김현정, 기획 채주원이 참여한다.
‘모기 전쟁’의 세계는 커튼에 달라붙은 세 마리 모기에서 시작된다. 어느 정도 살아 온 후기, 아직 어린 강기, 너무나 어린 정기는 다음 생을 위해, 피를 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움직인다. 무대에 들어오는 파리와 개미, 거미는 세 모기의 길을 가로막는다. 시끄러운 파리, 교활한 개미, 도도한 거미라는 과장된 성격은 작은 곤충의 세계를 현실보다 더 또렷한 인간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든다.
작품에서 ‘피’는 먹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모기에게 피는 생존의 조건이면서,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향이다. 파리와 개미, 거미가 세 모기를 둘러싸고 안정, 현실, 소유, 질서의 언어를 밀어 넣을 때, 무대는 작은 곤충들의 다툼을 넘어 인간 사회의 가치 평가 방식으로 확장된다. 개인의 가치가 돈과 소유, 사회적 기준에 의해 쉽게 재단되는 시대에, 세 모기의 몸은 타인의 기준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존재의 움직임으로 놓인다.
2024년 초연의 ‘모기 전쟁’이 작은 우화의 골격을 세운 무대였다면, 2026년 재연은 곤충들의 관계를 더 세밀하게 조율하는 방향으로 옮겨간다. 초연을 그대로 반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물들의 충돌과 극의 흐름을 다시 점검한 구성이다. 모기와 파리, 개미, 거미가 각자의 생존 방식을 내세우는 구조 안에서, 무대는 선악의 구도를 만들기보다 서로 다른 삶의 논리가 충돌하는 상황을 밀도 있게 펼친다.
무대의 크기는 작지만, 곤충들에게는 거대한 세계가 된다. 인간에게 사소해 보이는 커튼, 틈, 빛, 움직임은 모기들에게 생존의 조건이다. 이 축소된 세계에서 파리는 소란스럽고, 개미는 계산적이며, 거미는 이미 짜인 질서의 중심에 선다. 현실보다 한층 과장된 설정은 인간 사회의 욕망과 관계, 물질에 대한 집착과 관습의 힘을 낯설게 드러낸다.
2026년 관객의 감각은 이 우화와 멀지 않다. 소비와 생활의 흐름은 더 빠르게 쪼개지고, 알고리즘은 선택 이전에 결과를 먼저 제시하며, 감정과 취향도 시장의 언어 안에서 세분화된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의 소비 키워드로 제시된 휴먼인더루프, 필코노미, 제로클릭, 픽셀라이프, 프라이스 디코딩, 1.5가구, 근본이즘 등의 흐름은 기술과 소비가 빨라질수록 인간의 판단, 감정의 밀도, 본질에 대한 요구가 함께 커지는 시대적 공기를 가리킨다.
‘모기 전쟁’은 2026년의 관객에게 그 시대 공기를 곤충의 몸으로 돌려준다. 작품은 AI, 플랫폼, 알고리즘을 직접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 대신 피를 찾아 움직이는 모기와 각자의 논리를 들이대는 파리, 개미, 거미를 세운다. 빠른 계산과 즉각적인 판단에 익숙한 시대일수록, 작은 생명들이 버티고 충돌하는 무대는 인간의 선택과 욕망을 더 선명하게 비춘다.
출연진은 정근정, 허라겸, 고해솔, 안호주, 박준일, 김수정, 황정후, 이강, 이승재, 김현주, 강민서 등으로 구성됐다. 세 모기의 세계가 후기·강기·정기의 세대 차를 품고 출발하는 만큼, 배우들의 세대와 신체 감각은 작품의 결을 가르는 중요한 축이 된다. 어린 모기의 성급함, 살아남은 모기의 경험, 너무 어린 존재의 불안은 대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은 몸짓, 빠른 반응, 주춤거리는 정지, 집단으로 움직이는 호흡이 곤충 세계의 생존감을 만든다.
안호주는 비인간 캐릭터의 몸을 인간 감정으로 옮기는 데 강점을 보여 온 배우다. 곤충과 동물의 몸은 사람의 언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모기 전쟁’에서 모기는 인간의 축소판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아닌 존재다. 배우가 그 경계를 몸으로 설득해야 작품의 과장이 단순한 익살에 머물지 않는다. 허라겸, 고해솔, 박준일, 김수정, 황정후, 김현주 등 극단 불의 최근 작업에서 호흡을 맞춰 온 배우군도 2026년 재연의 앙상블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김산의 연출은 ‘작고 과장된 세계, 그 안에 비친 인간’이라는 작품의 표어와 맞물린다. 포스터의 큰 원과 좁은 삼각형, 작은 붉은 사각형은 압도적인 구조 안에 놓인 작은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무대 사진 속 천과 줄, 조명, 빈 공간은 곤충의 시선에서 세계를 다시 키우는 장치로 기능한다. 인간에게는 작은 방과 커튼에 불과한 공간이 모기에게는 전쟁터가 되고, 그 전쟁터에서 생존과 소유, 안전과 욕망이 서로 부딪힌다.
극단 불의 작업 이력 안에서 ‘모기 전쟁’은 우화극의 흐름을 잇는 작품이다. 2018년 ‘빗소리 몽환도’ 이후 ‘괜찮아요, 단말마’, ‘WHY?’, 창작 단막극 축제 ‘뿔난이들’, ‘도야지 꿈’, ‘아주 간단한 이야기’, ‘엔트로피’, ‘A Very Simple Story’, ‘심플 스토리’ 등이 이어졌다. 2024년 공연 현황에는 ‘모기전쟁’이 포함돼 있고, 2026년에는 ‘뿔난이들’과 ‘심플 스토리’가 같은 흐름 안에 놓여 있다.
극단 불의 최근 레퍼토리는 인간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다른 존재의 몸을 통해 인간 사회를 우회해 왔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와 ‘심플 스토리’가 외양간의 동물들을 통해 생명과 효율의 문제를 다뤘다면, ‘모기 전쟁’은 곤충의 세계를 통해 소유와 생존, 관습과 선택의 문제를 밀어붙인다. 작은 존재를 무대 중앙에 세우는 방식은 극단 불의 우화적 감각과도 이어진다.
세 모기는 각자 다른 속도로 산다. 후기는 어느 정도 삶을 통과한 존재이고, 강기는 아직 배우는 중이며, 정기는 너무 어리다. 파리와 개미, 거미가 각자의 방식으로 세 모기의 앞을 막을 때, 무대 위 충돌은 세대의 충돌이자 가치관의 충돌이 된다. 안정된 삶, 더 많은 소유, 이미 존재하는 질서, 당장의 생존 사이에서 모기들은 자신들의 길을 찾는다.
2026년 재연이 달라지는 대목은 바로 그 관계의 밀도다. 곤충 캐릭터를 과장된 성격으로만 밀어붙이면 작품은 가벼운 풍자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각 곤충이 가진 생존 논리를 정확히 세우면, 무대는 작은 소동을 넘어 인간 사회의 압축된 풍경으로 바뀐다. 파리의 소란, 개미의 계산, 거미의 도도함은 타인의 삶을 규정하는 여러 목소리로 변하고, 모기의 피는 생존과 욕망이 겹친 가장 원초적인 목적이 된다.
‘모기 전쟁’은 하나의 결론으로 닫히지 않는다. 살아남는 삶, 안전한 삶, 더 많이 소유하는 삶, 사회가 만든 질서를 따르는 삶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인다. 세 마리 모기는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답을 찾아간다. 2026년 대학로 무대에 다시 오르는 ‘모기 전쟁’은 작은 곤충들의 생존기를 통해 빠르게 평가되고 쉽게 분류되는 시대의 인간을 비춘다. 극단 불의 재정비와 김산의 연출, 배우들의 앙상블이 만나는 이번 재연은 초연의 우화를 오늘의 관객 감각으로 다시 옮기는 무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