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두세 의뢰로 만든 1923년 디자인에서 출발…사다리꼴 등받이·분절된 팔걸이 유지
Nomade 가죽과 로즈우드 결합…가죽 공예·가구 목공 기술 한 제품에 집약
Objets Nomades·Home Collections 확장 속 브랜드 초기 가구 역사까지 다시 연결
[KtN 임우경기자]루이 비통(Louis Vuitton)이 103년 전 제작된 의자를 현재의 가구 컬렉션으로 다시 불러냈다. Paris Design Week 2026에서 공개한 ‘Kubic armchair’는 피에르 르그랭(Pierre Legrain)이 1923년 패션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였던 자크 두세(Jacques Doucet)의 의뢰를 받아 설계한 의자를 바탕으로 한다. 원형의 기하학적인 구조를 살리면서 루이 비통의 Nomade 가죽과 가구 목공 기술을 더했다.
Kubic은 둥근 안락의자와 거리가 멀다. 등받이는 위로 갈수록 폭이 달라지는 사다리꼴 형태이고, 두꺼운 팔걸이는 하나의 곡면으로 처리하지 않고 여러 면으로 나눴다. 등받이와 팔걸이, 좌석이 맞물리면서 전체적으로 낮고 단단한 덩어리를 만든다. 1920년대 아르데코(Art Deco)의 기하학적 질서와 입체적인 면 분할이 의자의 기본 구조에 남아 있다.
카멜 톤의 Nomade 가죽은 좌석과 등받이, 팔걸이를 넓게 감싼다. 가죽 아래의 구조를 감추기보다 각 면이 만나는 선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의자의 형태를 강조했다. 측면 하부에는 로즈우드를 사용해 가죽과 목재의 색과 질감을 분리했다. 몸이 닿는 부분에는 가죽의 부드러운 표면을 두고, 의자를 받치는 하부에는 목재의 단단한 물성을 남겼다.
이번 작업에는 루이 비통이 오래 다뤄온 가죽 공예와 가구 목공이 함께 들어갔다. 가죽을 입히는 기술과 목재 구조를 만드는 기술을 각각 따로 보여주기보다 하나의 의자 안에서 연결했다. 가방과 트렁크에서 축적한 가죽 기술이 가구의 넓은 면적으로 옮겨가면서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졌다.
Kubic의 출발점인 피에르 르그랭은 루이 비통 가구 역사와도 직접 연결된다. 장식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제본가, 가구 제작자로 활동했던 르그랭은 1920년대 자크 두세와 작업하는 동시에 루이 비통과도 관계를 맺었다. 이 시기에 제작된 ‘Louis Vuitton Dressing Table’은 브랜드의 초기 가구 작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루이 비통이 르그랭의 의자를 다시 꺼낸 배경에는 이런 연결이 있다. 외부 디자이너의 유명 작품을 새롭게 차용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가구 제작 초기 역사와 맞닿아 있던 디자인을 현재의 Objets Nomades 안으로 가져왔다.
형태 역시 원형을 완전히 바꾸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Kubic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정육면체에 가까운 전체 부피와 사다리꼴 등받이, 면으로 나뉜 팔걸이가 중심을 잡는다. 변화는 장식을 덧붙이는 방식보다 소재와 제작 기술에서 이뤄졌다. 1923년의 조형을 유지하면서 2026년 루이 비통이 다룰 수 있는 가죽과 목재, 마감 기술로 제품을 다시 구성했다.
이런 재구성은 빈티지 가구의 단순 재현과도 차이가 있다. 과거 디자인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재의 생활 공간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생산한다. 아카이브에 남아 있던 형태가 전시품에서 현행 컬렉션으로 이동한 셈이다.
루이 비통의 가구 사업도 최근 몇 년 사이 범위를 넓혀왔다. 2025년 선보인 Home Collections는 기존 Objets Nomades를 가구에만 한정하지 않고 조명과 텍스타일, 테이블웨어까지 확장했다. Kubic은 이 흐름 속에서 새 제품군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세기 전 브랜드가 이미 가구를 제작했던 역사까지 다시 연결한다.
Homage Collection에는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과 포르투나토 데페로(Fortunato Depero)의 아카이브 작업도 포함된다. 여기에 에스튜디오 캄파나(Estudio Campana), 로 에지스(Raw Edges), 프랑크 장세르(Franck Genser) 등 현대 디자이너의 작업이 함께 놓인다. 과거의 디자인과 현재의 협업 제품을 분리하기보다 하나의 가구 컬렉션 안에서 이어 붙이는 구성이다.
1925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현대장식미술산업박람회(International Exhibition of Modern Decorative and Industrial Arts)와 루이 비통의 관계도 이번 전시의 배경을 이룬다. 당시 가스통-루이 비통(Gaston-Louis Vuitton)은 아르데코가 확산되던 시기의 장식미술과 가구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Homage Collection은 이 역사와 100주년 기념 흐름을 현재의 가구 사업과 연결한다.
Kubic의 기하학적인 형태도 당시의 미감과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장식을 크게 늘리기보다 면과 선을 분명하게 나누고, 사각형과 사다리꼴을 반복해 구조를 만든다. 팔걸이를 둥글게 감싸지 않고 여러 면으로 꺾은 방식에서는 큐비즘(Cubism)의 조형 감각도 읽힌다.
Nomade 가죽은 이 단단한 형태에 다른 성격을 더한다. 목재나 금속만으로 구성했다면 조각에 가까운 차가운 인상이 강해질 수 있지만, 넓은 가죽 면이 들어가면서 실제 사람이 앉는 가구의 기능이 살아난다. 각진 구조와 부드러운 표면이 함께 놓이면서 1920년대의 조형과 루이 비통이 축적해온 소재 기술이 한 제품에서 만난다.
가죽은 사용 시간이 쌓일수록 표면과 색이 달라지는 소재다. 로즈우드 역시 고유의 결을 유지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달라진다. 한 세기 전의 디자인을 다시 만드는 작업에 시간이 축적되는 두 소재를 선택한 점도 Kubic의 성격과 맞는다.
루이 비통은 최근 패션과 가죽 제품을 넘어 자동차 협업과 가구, 인테리어, 생활용품까지 브랜드의 제작 영역을 넓히고 있다. Objets Nomades와 Home Collections는 이 가운데 주거 공간을 담당하는 축이다. Kubic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보다 브랜드 내부에 오래 남아 있던 가구의 역사를 현재 사업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위치에 놓인다.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 제품이나 도면을 전시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 제품으로 다시 만들어 현재 컬렉션에 편입한다. 오래된 디자인을 오늘의 소재와 제작 기술로 다시 생산하면서 브랜드의 역사와 현재 사업을 하나의 제품 안에 겹친다.
Kubic armchair는 9월 13일까지 파리 마르티냑 거리(rue de Martignac)의 Hôtel Particulier Louis Vuitton에서 열리는 Paris Design Week 2026 전시에서 공개된다. 1923년 자크 두세를 위해 만들어졌던 의자는 2026년 Nomade 가죽과 로즈우드를 입고 Objets Nomades에 들어왔다. 루이 비통이 이번에 되살린 것은 과거의 의자 한 점만이 아니라, 한 세기 전부터 이어져 온 가죽 공예와 가구 제작의 연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