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직두1리 경로당 어르신과… 외국인 노동자들 특별한 추석 보내
함께 송편 빚고, 함께 윷놀이…외국인, “제 고향 할머니같은 정 느꼈어요”
[KtN 조영식기자] 추석은 한 해 동안 정성껏 일궈낸 수확에 감사하고, 가족과 고향의 정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추석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긴 연휴가 반갑기도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추석을 맞는다면 어떨까.
그래서 한국인은 외국인에게 명절의 따뜻한 정을 한아름 안겨주고, 외국인은 한국인의 명절 속으로 직접 들어가 추석의 의미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곳은 바로 포천시 군내면 직두1리 경로당이다.
지난 27일 직두1리 경로당에서는 포천의 한국어 배움터 ‘한국어 네트워크’(대표 조영식)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이색적인 추석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몽골·인도·네팔·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에게 이날은 단순히 연휴를 보내는 하루가 아니라, 타국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추석을 ‘가족처럼’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특히 직두1리 경로당 어르신들에게도 이날은 평생 쉽게 경험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날이었다. 어르신들은 외국인들과 함께 송편을 빚고 윷놀이를 하며 음식을 나누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이렇게 하면 돼요?”…한국 할머니에게 배우는 송편 빚기
행사를 위해 경로당 어르신들은 이른 아침부터 경로당에 나와 외국인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추석의 대표 음식인 송편 빚기였다.
어르신 한 분이 외국인 한 명을 맡아 마치 손주에게 가르쳐주듯 송편을 빚는 방법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렇게 반죽을 떼세요.” “속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안 돼요.”
어르신들의 손길을 따라 외국인들도 조심스럽게 반죽을 빚었다.
처음에는 서툴던 손놀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모양을 갖춰갔다.
“이렇게 하면 돼요?” “이거 잘 만들었어요?”
외국인들의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어르신들은 웃으며 다시 한번 손으로 시범을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한국의 할머니가 먼 나라에서 온 손주에게 명절 음식을 가르쳐주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낯선 한국 땅에서 고향의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고, 어르신들에게는 평생 처음으로 외국인과 마주 앉아 송편을 빚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송편이 익는 동안 펼쳐진 ‘윷놀이 국제대회’
송편이 쪄지는 동안에는 한국의 전통놀이인 윷놀이가 시작됐다.
이날 윷놀이는 한국 대표로 직두1리 경로당 어르신 5명, 외국인 대표로 몽골·인도·네팔·브라질 등 다국적 외국인 5명이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국제 윷놀이 대회’가 됐다.
조영식 한국어 네트워크 대표는 이미 한국어 수업시간에 추석의 의미와 윷놀이의 유래, 관련 어휘와 놀이 방법 등을 계기교육으로 가르친 터였다.
하지만 책과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 윷을 손에 쥐고 던지는 것은 달랐다.
“윷이요!”
윷가락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박수와 탄식이 터졌다.
윷놀이의 진정한 재미는 말판에서 시작됐다.
“이 말을 업어야 해요.” “아니야, 여기로 가야 돼요.” “상대 말을 잡아요!”
같은 편끼리도 어떤 말을 선택할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렇게 고민하면서 말은 앞으로 나아갔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로 윷놀이 작전을 주고받으며 어느새 놀이에 깊이 빠져들었다. 결과는 어르신들의 4대 1 승리였다. 평생 윷놀이를 해온 어르신들의 관록이 외국인들의 뜨거운 도전을 앞섰다.
특히 박경자 어르신은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잇따라 두 모와 윷, 개를 던지며 단숨에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 어르신들의 저력을 보여줬다.
승패가 결정된 뒤 어르신들은 상대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격려했다. 윷놀이를 통해 서로의 언어와 국적은 달랐지만 함께 웃고 환호하는 데는 아무런 장벽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 송편과 브라질·인도 음식…‘맛으로 만난 문화’
한바탕 윷놀이가 끝날 무렵 잘 쪄진 송편이 식탁에 올랐다. 어르신과 외국인들은 함께 둘러앉아 직접 만든 송편을 나눠 먹으며 추석의 정취를 만끽했다.
이번에는 외국인들이 준비한 각국의 음식이 차례로 등장했다.
브라질 출신 디아고는 밀가루 반죽으로 닭고기를 감싸 튀긴 브라질 전통 음식 ‘콕시나(Coxinha)’를 선보였다. 인도 출신 빌루는 감자를 스틱 모양으로 썰어 매운 향신료를 입혀 튀긴 ‘알루 프라이(Aloo Fry)’를 준비했다.
한국 어르신들에게는 낯선 음식이었지만 맛을 보는 순간 표정이 달라졌다.
“외국 음식은 이런 맛이구나.” “생각보다 맛있네.”
한국의 송편과 브라질·인도의 음식이 한 식탁에 놓이면서 이날 경로당은 어느새 작은 세계 음식문화 축제가 됐다.
어르신들, “외국인과 함께 음식 만들고 윷놀이 한 것은 80평생 처음”
이날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외국인들의 한국문화 적응만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에게도 이날은 자신의 삶에서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만남이었다.
유양분 어르신은 “80평생 살면서 외국인과 함께 음식을 먹고 윷놀이를 해본 것은 처음이라 너무 특별한 날이었다”며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조금 무섭고 어색한 마음도 있었는데, 오늘 함께 지내보니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에게 음식을 맛보게 하기 위해 묵을 준비해 온 한영례 어르신도 “브라질과 인도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며 “요리 방법을 배워 집에서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웃었다.
이어 “외국인들이 한국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너무 재미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할머니들이 바로 여러분의 할머니입니다”
이인모 직두1리 이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와 생활하니 항상 가족이 그리울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 할머니들이 바로 여러분의 할머니라고 생각하세요.”
이어 “오늘의 즐거운 시간을 힘으로 삼아 각자의 일터에서 더욱 힘차게 생활하고 모두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병학 직두1리 노인회장도 “한국인에게는 추석이 즐거운 명절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고향과 가족을 더욱 그리워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오늘 행사를 통해 외국인들이 한국의 추석을 이해하고 따뜻한 정을 느끼는 계기가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한국의 마음을 배웠다”
조영식 한국어 네트워크 대표는 이번 행사의 의미를 ‘문화 체험’ 그 이상으로 설명했다.
조 대표는 “송편 빚기를 전문 요리사를 초빙해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외국인들이 한국 어르신들의 정을 통해 고향의 할머니와 같은 순수한 정을 느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한국어 수업에서 한국문화에 대해 질문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책으로 배우던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며 “한국의 언어뿐 아니라 한국인의 정과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사회에 더욱 빨리 적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어 네트워크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네팔 출신 때주는 “추석 명절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가르쳐주신 조영식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며 “송편을 함께 빚고 윷놀이를 해주신 할머니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와서 보낸 시간 가운데 오늘이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어르신들, “설날에 또 오세요”...외국인, 곰세마리, 학교종 노래 불러
행사의 마지막은 외국인들이 준비한 한국 노래로 장식됐다.
외국인들은 ‘사랑해’, ‘곰 세 마리’, ‘학교종’ 등을 한국어로 함께 불렀다.
서툴지만 정성껏 부르는 노래에 어르신들은 박수와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날 경로당에서 만난 한국인과 외국인은 처음에는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함께 송편을 빚고, 윷을 던지고, 음식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날 추석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한국의 명절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한국인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타국에서 새로운 가족 같은 인연을 만난 하루가 됐다.
반대로 어르신들에게도 이날은 평생 처음 외국인과 마주 앉아 송편을 빚고 윷놀이를 하며 서로의 음식을 나눈 특별한 추석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어르신들은 외국인들에게 한목소리로 말했다.
“설날에 다시 꼭 오세요! 그때는 맛있는 떡국 끓여놓을게요!”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이날만큼은 모두가 한 식구였다.
한국어 네트워크와 직두1리 경로당이 함께 만든 작은 추석 한마당은, 명절의 진정한 의미가 ‘같은 가족끼리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며 새로운 가족이 되어가는 데 있음을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