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아내와 맨덜리를 지배하는 죽은 여자의 흔적
듀 모리에의 소설에서 히치콕의 흑백 화면까지, 사랑은 누구의 기억을 믿는가

[KtN 박준식기자]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의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반면 책의 제목을 차지한 여자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죽었다. 대프니 듀 모리에가 1938년 발표한 '레베카'에서 살아 있는 아내는 자신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죽은 아내는 이름 하나로 집 전체를 차지한다. 누가 지금 이곳에 사는지보다 누구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가 더 큰 힘을 갖는 세계다.

소설은 맨덜리로 돌아가는 꿈에서 시작한다. 화자는 이미 그곳을 떠난 사람이다. 독자는 결혼의 시작을 읽기도 전에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펼쳐지는 사랑과 불안, 비밀은 모두 상실 이후에 되짚는 기억이다. 행복한 결혼이 어떻게 완성되는가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기에는 첫 문장부터 너무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부유한 여성의 말동무로 일하던 젊은 화자는 몬테카를로에서 맥심 드 윈터를 만난다. 아내를 잃은 그는 나이가 많고, 부유하며, 오래된 저택의 주인이다. 그의 청혼은 화자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기회이면서 남의 기분을 살피며 살아온 생활에서 벗어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 얻은 새로운 신분은 그 신분에 어울리는 자신감까지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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