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께 생트빅투아르를 강렬한 색면과 압축된 구조로 재구성…풍경의 재현보다 산이 주는 물성과 리듬을 앞세운 회화

마스던 하틀리(Marsden Hartley) 'Mont Sainte-Victoire (montagne rouge)'(약 1927). 세잔이 반복해서 그렸던 생트빅투아르 산을 붉은 색조로 다시 구성했다. 작품은 빌첵재단 컬렉션(The Vilcek Foundation Collection) 소장. © The Vilcek Foundation Collection/The Vilcek Foundation
마스던 하틀리(Marsden Hartley) 'Mont Sainte-Victoire (montagne rouge)'(약 1927). 세잔이 반복해서 그렸던 생트빅투아르 산을 붉은 색조로 다시 구성했다. 작품은 빌첵재단 컬렉션(The Vilcek Foundation Collection) 소장. © The Vilcek Foundation Collection/The Vilcek Foundation

[KtN 임민정기자]마스던 하틀리(Marsden Hartley)의 'Mont Sainte-Victoire (montagne rouge)'(약 1927)에서 생트빅투아르 산은 더 이상 멀리 바라보는 프로방스의 풍경이 아니다. 화면 중앙을 크게 차지한 산은 붉은색과 자주색, 주황과 황토색이 겹친 거대한 덩어리로 솟아 있다. 하늘과 들판, 능선은 산을 둘러싼 배경이라기보다 서로 맞물린 색면으로 압축됐다. 세잔이 수십 차례 그렸던 산을 다시 택했지만, 하틀리가 가져온 것은 세잔의 풍경을 닮은 외형이 아니라 산을 회화의 구조로 바꾸는 태도에 가깝다.

작품의 중심에는 붉은 산이 있다. 실제 지형의 세부를 따라가기보다 큰 면을 몇 개의 색으로 나눠 형태를 세웠다. 산의 왼쪽과 중앙에는 붉은색과 주황, 노랑이 층을 이루고, 정상으로 갈수록 자주색과 분홍빛이 강해진다. 빛과 그림자를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색의 온도와 대비가 산의 부피를 결정한다.

산 아래에는 짙은 남색의 능선이 수평으로 길게 가로놓였다. 화면 중간을 지나는 이 어두운 띠는 위쪽의 붉은 산과 아래쪽의 들판을 단호하게 분리한다. 동시에 강한 색채가 서로 직접 부딪치는 경계가 된다. 붉은 산은 남색을 만나 한층 앞으로 돌출되고, 남색의 산자락은 밝은 들판과 맞닿으면서 더 무겁게 가라앉는다.

전경의 들판은 원근법에 따라 멀어지지 않는다. 초록과 노랑, 주황, 붉은색, 분홍색이 굽은 띠처럼 반복되며 화면 아래를 가득 채운다. 밭의 경계를 연상시키는 색면은 실제 토지의 구획을 정확히 묘사하지 않는다. 굵은 곡선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화면 전체에 움직임을 만든다.

이 곡선의 방향은 중앙의 산과 대조적이다. 산은 위로 솟으며 화면을 붙잡고, 들판은 좌우로 휘어지며 시선을 움직인다. 수직적 상승과 수평적 흐름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작은 캔버스 안에 강한 긴장이 만들어진다.

하늘 역시 고요한 배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옅은 청록색 사이로 분홍과 황토, 크림색의 구름이 두껍게 지나간다. 붓질은 매끈하게 사라지지 않고 방향을 드러낸다. 하늘과 산, 들판을 구성하는 모든 면에서 손의 움직임이 남아 있어 자연의 깊이보다 물감의 물성이 먼저 감지된다.

'붉은 산'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색채는 작품의 중심적인 언어다. 하틀리는 산을 실제 풍경의 색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붉은색과 자주색을 산의 주조색으로 선택하면서 생트빅투아르는 지리적 장소에서 감각적인 존재로 바뀐다. 산의 무게와 열, 압력이 색으로 직접 전달된다.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세잔은 같은 산을 반복해서 그리면서 자연의 형태를 색과 붓질, 면의 관계로 분해하고 다시 조직했다. 산은 구체적인 풍경이면서 회화의 구조를 시험하는 대상이었다.

하틀리는 이미 세잔을 거친 생트빅투아르를 마주한다. 산을 처음 발견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1920년대의 생트빅투아르는 세잔의 회화와 분리하기 어려운 미술사적 이미지가 돼 있었다. 하틀리는 그 산을 다시 그리면서 세잔의 구도를 복제하지 않고 색채와 형태를 더 강하게 압축한다.

작품에서 자연은 점차 기호에 가까워진다. 산은 산을 닮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삼각형 덩어리이기도 하고, 들판은 농경지이면서 굵은 색띠의 집합이기도 하다. 산자락은 실제 지형과 연결되면서 동시에 화면을 절반으로 가르는 남색의 추상적 형태로 기능한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이 지점에서 흐려진다. 생트빅투아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그리고 있지만 작품의 힘은 장소의 정확한 묘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색면의 크기와 방향, 서로 부딪치는 색, 붓질의 속도가 풍경보다 먼저 작동한다.

특히 화면 하단의 들판은 풍경화가 추상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초록색 띠와 주황색 면, 붉은색과 노란색이 이어지는 구조는 실제 밭을 연상시키면서도 독립적인 색의 리듬으로 읽힌다. 자연에서 가져온 모티프가 회화 내부의 질서로 바뀌는 순간이다.

하틀리의 생트빅투아르는 세잔에 대한 단순한 경의로 보기 어렵다. 세잔이 남긴 회화적 문제를 자신의 시대와 감각으로 다시 밀어붙인 결과에 가깝다. 세잔이 자연을 관찰하면서 산을 형태와 색의 관계로 바꾸었다면, 하틀리는 이미 구조화된 산을 더욱 강한 색채와 단순한 면으로 압축했다.

산의 정상도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붉은색과 자주색 덩어리가 서로 맞물리며 봉우리를 만든다. 명암의 부드러운 변화 대신 색면 사이의 경계가 형태를 결정한다. 그래서 산은 멀리 있는 대상이라기보다 캔버스 표면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물체처럼 느껴진다.

공간의 깊이 역시 전통적인 풍경화와 다르다. 원경의 산과 전경의 들판 사이에는 거리감이 존재하지만, 모든 색면이 강한 채도를 유지하면서 앞뒤의 구분이 약해진다. 멀리 있어야 할 산도 전경의 색만큼 강하게 앞으로 나오고, 들판은 깊숙이 들어가기보다 표면을 따라 펼쳐진다.

세잔이 현대회화에 남긴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풍경을 눈앞의 자연과 캔버스의 평면 사이에서 다시 조직한 데 있다면, 하틀리는 그 긴장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풍경은 남아 있지만 캔버스가 평평한 물질이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작품이 세잔의 생트빅투아르를 기억하게 하면서도 독립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틀리는 세잔을 따라 산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세잔 이후에는 같은 산을 어떻게 다시 그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화가가 특정 풍경을 반복해서 그리면 그 장소는 미술사 속에서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생트빅투아르는 세잔에게 실제 자연이었지만 후대 작가에게는 세잔이라는 선행 이미지까지 함께 보아야 하는 대상이 됐다. 하틀리의 붉은 산에는 실제 산과 세잔의 산, 그리고 1920년대 회화가 동시에 겹쳐 있다.

'Mont Sainte-Victoire (montagne rouge)'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풍경의 아름다움보다 색이 만들어내는 산의 존재감이다. 붉은 산은 자연을 묘사한 결과이면서 자연을 넘어선 회화적 형태다. 남색의 산자락과 다채로운 들판은 깊이를 설명하기보다 색의 충돌로 공간을 만든다.

세잔이 생트빅투아르를 현대회화의 중요한 장소로 바꾸었다면, 하틀리는 약 한 세대 뒤 그 산을 다시 색채의 덩어리로 세웠다. 같은 산은 그대로 남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회화의 언어는 달라졌다. 하틀리의 붉은 생트빅투아르는 영향이란 선배의 형식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대상을 자신의 시대에 맞는 언어로 다시 만드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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