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리시미술관 'The Affrilachian Mountains'…커피·면 캔버스·낡은 농기구로 되짚은 미국 산업화의 이면, 흑인 노동자의 삶과 현대미술의 사회적 가치

[KtN 윤상길주필]1909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탄광 노동자의 26% 이상은 흑인이었다. 노예제 폐지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애팔래치아(Appalachia) 산악지대로 이주한 흑인들은 석탄을 캐고 운반하며 미국 산업화의 노동력을 담당했다. 탄광을 중심으로 마을과 공동체가 형성됐고, 광산에서 일하는 부모와 자녀들이 지역의 역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애팔래치아를 대표하는 대중적인 이미지에는 오랫동안 백인 광부와 산악지역 주민들의 생활이 더 강하게 남았다.

미국 화가 체이스 홀(Chase Hall)이 애팔래치아의 흑인 광부들을 대형 회화로 되살렸다. 지난 10월 1일 뉴욕주 워터밀의 패리시미술관(Parrish Art Museum)에서 공개한 신작 'The Affrilachian Mountains'(2026)다. 광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선 모습을 커피와 아크릴로 그렸으며, 캔버스 양옆에는 오래된 농기구를 배치했다. 커피와 담배, 맥아주를 담았던 금속 용기와 철사도 작품에 사용했다.

패리시미술관과 플래그 아트 파운데이션(The FLAG Art Foundation)이 공동 기획한 'FRESH PAINT'의 여덟 번째 전시다. 가로 279.4cm, 세로 243.8cm에 이르는 작품에는 미국 산업화를 떠받쳤던 흑인 노동자들의 모습과 커피·면화·석탄을 둘러싼 생산과 무역의 역사가 담겼다. 홀은 노동자의 얼굴을 그리는 데서 출발해 실제 생산과 소비에 사용됐던 재료까지 회화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체이스 홀, 'The Affrilachian Mountains', 2026. 커피와 아크릴로 그린 광부들의 집단 초상에 오래된 농기구와 금속 용기 등을 결합했다. 사진=Christopher Sta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Kordansky Gallery
체이스 홀, 'The Affrilachian Mountains', 2026. 커피와 아크릴로 그린 광부들의 집단 초상에 오래된 농기구와 금속 용기 등을 결합했다. 사진=Christopher Sta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Kordansky Gallery

광부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앞쪽에는 작업복을 입은 인물들이 나란히 배치됐고, 뒤쪽에도 여러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얼굴과 팔에는 짙은 갈색의 굵은 선이 이어지고, 흰색과 푸른색으로 처리한 작업복은 피부의 색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인물마다 눈과 코, 입의 형태가 다르며 몸의 방향과 서 있는 자세에도 차이가 있다.

굵은 윤곽선과 짧고 빠른 붓질은 인물의 형태를 단순화하면서 움직임을 더한다. 얼굴 주변에는 선이 여러 차례 겹쳐 있고, 옷의 주름과 팔의 윤곽도 일정한 두께로 정리되지 않았다. 갈색의 얼룩과 흰색 원단이 만나는 부분에서는 피부와 작업복의 경계가 거칠게 나타난다.

여러 사람이 일정한 방향을 바라보는 구성은 과거 탄광촌에서 촬영한 노동자들의 단체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광산회사와 지역사회는 노동자들이 함께 선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탄광과 철도, 공장의 집단 초상은 산업화 시대의 기록으로 축적됐다. 작업복과 모자, 도구를 갖춘 노동자들의 모습에는 당시의 직업과 생활환경이 함께 담겼다.

홀은 집단사진에서 익숙한 구도를 회화로 옮기면서 인물의 표정과 신체에 자유로운 변화를 줬다. 한자리에 모인 광부들은 공동체의 모습을 이루지만 각자의 얼굴은 서로 다르다. 작업복의 형태와 몸의 방향, 피부에 스며든 갈색의 농도도 일정하지 않다. 역사적인 노동 집단을 하나의 이미지로 구성하면서 그 안에 존재했던 개별 인물들의 차이를 드러낸다.

애팔래치아의 탄광산업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철도와 철강산업이 성장하면서 빠르게 확대됐다. 석탄 수요가 늘어나자 광산회사들은 웨스트버지니아와 켄터키, 버지니아 등지에서 새로운 탄광을 개발하고 노동자를 모집했다. 미국 남부의 흑인들과 유럽 출신 이민자, 인근 지역의 백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산악지대로 이동했다.

1870년부터 1930년 사이 웨스트버지니아의 탄광에는 수많은 이주 노동자가 들어왔다. 흑인 노동자들은 석탄을 광차에 싣는 일과 운반 작업, 코크스 생산시설의 노동 등을 담당했다. 특히 석탄을 싣는 작업은 흑인 광부들이 많이 종사한 직종이었다.

석탄을 캐고 운반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고됐고 사고의 위험도 컸다. 갱도 안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은 무거운 석탄을 직접 다뤘으며, 채굴한 석탄의 무게에 따라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광산에서 일하는 시간과 실제 지급받는 임금은 작업량과 광산회사의 운영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흑인 노동자들은 탄광에서 수입을 얻으며 가족의 생활을 꾸리고 지역 공동체를 형성했다. 남부의 인종차별적 사회질서에서 벗어나 경제적 기회를 찾으려는 이주도 이어졌다. 탄광촌에서는 흑인과 백인,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같은 산업에 종사했지만 직종과 임금, 주거와 교육에서는 인종에 따른 차별이 존재했다.

광산 노동자의 삶은 석탄 생산량과 임금, 사고 기록처럼 산업의 수치로도 남아 있다. 홀의 회화에는 작업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듯한 사람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채굴 장비와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기록했던 산업사의 한쪽에 노동자들의 신체와 공동체가 놓였다.

작품 제목에 사용된 '애프릴래치아(Affrilachia)'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연결된다. 미국 시인 프랭크 엑스 워커(Frank X Walker)가 1991년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애팔래치아를 결합해 만든 말이다.

워커는 당시 애팔래치아 주민을 백인 중심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통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애팔래치아에서 태어나거나 생활한 흑인들의 문화와 역사가 지역의 정체성 안에 충분히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인 시인들과 문학인들은 'Affrilachian Poets'를 통해 산악지역에 살아온 흑인들의 경험을 시와 문학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애팔래치아에는 흑인 광부와 농민, 음악가와 상인들이 오랫동안 생활했다. 지역의 음악과 문학, 노동문화에도 흑인 공동체의 영향이 남아 있다. 워커가 만든 새로운 명칭은 백인 중심으로 알려졌던 지역의 역사에 흑인 주민들의 존재를 다시 포함시키려는 문화적 움직임에서 나왔다.

홀은 1991년 만들어진 언어를 19세기 말 탄광 노동자들의 집단 초상에 적용했다. 과거의 노동과 후대의 문학이 한 작품에서 연결되는 구성이다. 당시의 광부들이 활동하던 시대와 오늘날 지역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100년이 넘는 시간이 놓여 있다.

'The Affrilachian Mountains'의 인물 부분. 갈색의 커피 안료와 흰색·푸른색 아크릴이 겹쳐지며 광부들의 얼굴과 작업복을 구성한다. 사진=Christopher Sta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Kordansky Gallery
'The Affrilachian Mountains'의 인물 부분. 갈색의 커피 안료와 흰색·푸른색 아크릴이 겹쳐지며 광부들의 얼굴과 작업복을 구성한다. 사진=Christopher Sta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Kordansky Gallery

광부들의 얼굴에는 밝은 황갈색부터 짙은 갈색까지 여러 색조가 사용됐다. 눈썹과 코, 입술 주변은 굵은 선으로 처리했고 피부의 일부에는 커피가 번지면서 형성된 불규칙한 흔적이 남아 있다. 원단의 밝은 바탕과 짙은 색이 겹쳐지는 부분에서는 아크릴과 커피의 성질이 다르게 드러난다.

홀은 커피의 농도를 조절해 피부색을 만든다. 원두의 분쇄 정도와 추출 방식을 바꾸고, 진하거나 연하게 내린 커피를 사용하면서 갈색의 폭을 넓혔다. 같은 원두에서도 여러 단계의 색을 만들 수 있으며 원산지에 따라 추출되는 색조도 달라진다.

물기가 많은 커피는 원단에 닿으면 빠르게 스며든다. 붓으로 선을 그은 뒤에도 색이 번지거나 흘러내리며, 건조 과정에서 농도가 달라진다. 홀은 이러한 성질에 맞춰 빠르게 선을 긋고 색을 덧입힌다. 커피가 면에 남긴 얼룩과 아크릴로 그린 윤곽선이 겹치면서 인물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면 캔버스에는 별도의 밑칠을 하지 않았다. 커피가 원단에 직접 스며드는 부분과 아크릴이 표면에 남는 부분 사이에 질감의 차이가 생긴다. 밝은 면 원단은 얼굴과 옷의 일부에 그대로 남아 있고, 커피의 갈색은 인물의 피부와 주변 공간을 채운다.

커피를 사용하게 된 과정에는 홀의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청소년 시절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영수증 뒷면에 커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본격적인 회화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같은 재료를 사용했고, 지금은 커피의 추출 농도와 원단의 흡수성을 회화 기법의 일부로 발전시켰다.

커피는 일상적인 음료이지만 생산과 유통의 역사는 식민주의와 국제무역에 깊이 연결돼 있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커피는 유럽의 해외 진출과 식민지 농업을 거치며 세계적인 상품으로 성장했다. 카리브해와 중남미 등지의 플랜테이션에서는 노예노동과 강제적인 노동체제를 통해 커피가 생산됐다.

면화도 미국의 경제와 인종 문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미국 남부의 면화 농업은 노예노동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생산된 면화는 영국과 유럽의 방직산업을 거쳐 국제무역의 핵심 상품으로 유통됐다. 면직물과 석탄, 철도와 공장은 산업화의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지만 노동력과 자본, 상품 생산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됐다.

홀은 커피로 피부색을 만들고 면 캔버스에 광부들의 모습을 그렸다. 작품 속 인물은 석탄을 캐던 노동자이고, 그림을 구성하는 재료에는 커피와 면화의 생산사가 남아 있다.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상품이 회화의 재료로 들어오면서 생산과 유통 과정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의 역사도 함께 떠오른다.

커피의 갈색은 광부들의 얼굴을 표현하는 색이면서 실제 물질의 흔적이다. 면 캔버스는 그림을 지탱하는 바탕인 동시에 미국 남부의 농업과 산업사를 떠올리게 한다. 홀은 재료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인물회화와 연결해 작품의 내용을 구성했다.

낡은 농기구와 금속 용기의 사용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작품 양옆의 쇠스랑과 삽은 땅을 파고 농작물을 다루는 노동의 도구다. 커피와 담배, 맥아주를 담았던 용기는 생산된 상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사용됐다. 오래된 물건의 표면에는 녹과 마모, 사용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금속 도구는 캔버스에 그려진 광부들과 다른 방식으로 시간의 흔적을 전한다. 회화 속 인물은 작가가 물감으로 만들어 낸 형상이지만 농기구와 용기는 실제 사용됐던 물건이다. 노동과 생산, 소비가 남긴 물질적 흔적을 그림 옆에 배치하면서 작품의 범위를 캔버스 밖으로 넓혔다.

농기구와 식품 용기는 서로 다른 산업에서 사용됐던 물건이다. 농업의 노동 도구와 소비재를 담았던 용기가 탄광 노동자들의 초상과 결합하면서 미국 경제를 형성했던 여러 생산 영역이 한자리에 모였다. 작품에는 산업화와 농업, 기호품의 생산과 소비가 함께 등장한다.

20세기 미술에서는 일상적인 물건을 작품에 사용하는 방식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미국 미술가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는 머리카락과 낡은 의류, 생활용품 등을 이용해 흑인의 삶과 미국 사회의 문제를 다뤘다. 물건이 지닌 문화적 의미와 실제 사용의 흔적을 작품의 일부로 삼은 작업이었다.

홀은 이러한 재료 실험을 인물회화와 연결한다. 커피와 면 캔버스, 오래된 농기구가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지만 중앙에는 광부들의 얼굴이 자리한다. 여러 물건의 상징성을 나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노동자들을 집단 초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The Affrilachian Mountains'의 하단 부분. 광부들의 줄무늬 작업복과 신발, 갈색으로 처리한 지면이 이어지며 굵은 선과 반복적인 무늬가 인물의 움직임을 강조한다. 사진=Christopher Sta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Kordansky Gallery
'The Affrilachian Mountains'의 하단 부분. 광부들의 줄무늬 작업복과 신발, 갈색으로 처리한 지면이 이어지며 굵은 선과 반복적인 무늬가 인물의 움직임을 강조한다. 사진=Christopher Stach,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Kordansky Gallery

작품 하단에는 광부들의 작업복 바지와 신발이 이어진다. 푸른색과 갈색의 굵은 세로선은 바지의 형태를 만들고, 검은색과 흰색, 노란색이 섞인 신발은 지면 위에 놓여 있다. 발 아래에는 잘게 반복되는 갈색 무늬가 넓게 펼쳐진다.

작업복의 줄무늬는 인물들의 다리를 길게 이어주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인 발은 집단 초상에 움직임을 더한다. 얼굴을 중심으로 인물의 특징을 강조했던 부분과 달리 하단에서는 노동자들이 함께 서 있는 자세가 두드러진다. 신발과 바지의 윤곽이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화면 아래쪽에 밀도가 높아졌다.

홀의 인물들은 대체로 실제 사람과 비슷한 크기로 그려진다. 인물과 관객의 신체적 거리를 좁히려는 작업 방식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광부들은 서로 가까이 서 있고, 관객은 여러 얼굴과 작업복을 한꺼번에 마주한다. 역사 속 노동자들이 작은 기록사진의 인물로 남는 대신 대형 회화 안에서 존재감을 갖게 됐다.

홀은 그동안 노동자와 운동선수, 가족과 친구 등 다양한 인물을 그렸다. 테니스 라켓을 든 사람과 서핑을 즐기는 인물, 말을 타는 사람, 바다에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작품에 등장했다. 흑인의 생활을 노동의 역사와 함께 여가와 운동, 가족의 관계 속에서 다뤄 온 것이다.

1993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난 홀은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새로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이후 드로잉과 회화로 작업을 넓혔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회화를 공부했으며, 버려진 캔버스 틀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작업을 이어갔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성장 배경도 작품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서로 다른 지역과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한 정체성과 소속감, 인종에 따른 사회적 구분을 회화의 인물과 소재로 다뤄 왔다.

홀의 작업에는 흑인 인물회화와 추상회화의 흐름이 함께 나타난다. 케리 제임스 마셜(Kerry James Marshall)과 제이컵 로런스(Jacob Lawrence)가 발전시킨 흑인 인물회화의 전통에 관심을 두면서 추상표현주의와 색면회화의 표현도 활용했다. 인물의 형태를 굵은 윤곽선으로 구분하고, 넓은 색의 얼룩과 불규칙한 붓질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제이컵 로런스는 1940~1941년 제작한 '이주 연작(The Migration Series)'에서 미국 남부 흑인들이 북부로 이동한 역사를 60점의 회화로 표현했다. 단순화한 인물의 형태와 선명한 색채를 이용해 역사적 사건과 사람들의 이동을 기록했다. 흑인의 경험을 개인적인 초상과 집단의 역사로 연결한 작업이다.

홀의 광부들도 미국 내 흑인들의 이동과 노동을 다룬다는 점에서 로런스의 작업과 연결된다. 남부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애팔래치아의 탄광으로 향했던 노동자들의 역사를 그렸고, 집단으로 모인 인물들을 단순화한 형태와 강한 색채로 표현했다. 커피와 면 캔버스라는 재료를 사용해 노동과 무역의 역사까지 작품 안에 포함시킨 점에서는 홀의 독자적인 접근이 나타난다.

케리 제임스 마셜은 흑인 인물들을 대형 회화의 중심에 배치하며 서양 미술사에서 흑인의 몸과 일상이 다뤄진 방식을 확장해 왔다. 피부색과 의상, 주변 공간을 세밀하게 구성하면서 흑인들의 평범한 일상과 역사, 문화적 경험을 작품의 주요한 소재로 삼았다.

홀은 이러한 인물회화의 흐름 위에서 자신이 경험한 미국 사회와 역사적 소재를 함께 다룬다. 광부들의 얼굴을 그리면서도 구체적인 개인의 초상보다는 집단의 존재를 강조하고, 커피의 번짐과 아크릴의 굵은 선을 통해 즉흥적인 회화의 특징을 남겼다.

'The Affrilachian Mountains'에 등장하는 광부들은 홀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인물들이다. 작가는 가족과 친구,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인물의 형태를 구성해 왔다.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한 인물의 사진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인물의 얼굴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과정에는 작가가 경험한 인간관계와 기억이 반영된다. 광부들의 표정과 자세도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노동자의 집단적인 역사에 개인의 모습을 더하는 방식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상징적인 재료와 회화적 표현의 관계가 특히 중요하다. 커피와 면은 미국의 노동과 무역, 인종의 역사를 환기하고, 농기구와 금속 용기는 생산과 소비의 흔적을 전한다. 작품 중앙의 광부들은 굵은 선과 자유로운 붓질로 표현됐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재료들이 인물의 형상과 함께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여러 역사적 소재가 한 작품에 집중되면서 해석의 층위도 많아졌다. 애팔래치아의 탄광 노동과 커피 플랜테이션, 면화 농업은 각각 다른 시대와 산업에 속한다. 홀은 이들을 노동과 상품 생산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연결했다. 작품을 관통하는 노동의 역사는 넓은 범위로 확장됐고, 광부들의 집단 초상은 서로 다른 생산 영역을 잇는 중심에 놓였다.

미국의 산업화와 인종 문제를 다루는 현대미술에서는 역사적 기록과 예술적 표현의 관계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래된 사진과 문서, 실제 사용했던 물건은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자료가 되고, 회화는 작가의 해석과 상상을 통해 인물을 다시 구성한다. 홀은 물질적인 흔적과 회화적 표현을 한 작품에 결합했다.

패리시미술관의 'FRESH PAINT'는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나 공개 기회가 적었던 작품을 한 점씩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홀의 신작은 미술관 로비의 크리에이티비티 라운지(Creativity Lounge)에서 관람할 수 있다. 전시에는 영국의 작가이자 기획자 에코 에슌(Ekow Eshun)과 홀이 나눈 대담도 함께 소개됐다.

작품 한 점에 집중하는 전시에서는 회화의 재료와 제작 방식, 주제의 역사적 배경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다. 대규모 전시와 달리 여러 작품을 빠르게 둘러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작품에 담긴 세부적인 표현을 살피는 시간이 마련된다.

홀의 신작은 이러한 전시 구조 속에서 광부의 집단 초상과 커피·면 캔버스, 오래된 금속 도구를 함께 소개한다. 그림을 이루는 재료마다 서로 다른 생산과 노동의 역사가 담겨 있어 작품의 형식과 역사적 배경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미술관이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인종과 젠더, 노동과 이주, 환경과 식민주의는 오늘날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예술가들은 기록사진과 역사 문서, 일상적인 물건을 회화와 설치작업에 활용하며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문화적 논의로 가져오고 있다.

체이스 홀의 작업에서는 실제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이 역사적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커피가 면에 스며드는 과정과 쇠스랑과 삽의 낡은 표면, 금속 용기의 녹슨 흔적은 그림의 조형적인 특징을 이루면서 노동과 생산에 관한 내용을 전달한다. 재료에 남은 물질적인 특성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 된 것이다.

회화의 색과 형태도 사회적 주제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부들의 얼굴을 구성한 갈색의 농도와 작업복의 굵은 선, 여러 사람이 어깨를 맞댄 자세는 인물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에 담긴 노동의 역사와 인종 문제는 이러한 회화적 표현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2026년 공개된 'The Affrilachian Mountains'는 19세기 말 미국의 탄광 노동과 1991년 만들어진 '애프릴래치아'라는 개념을 하나의 작품에 결합했다. 광부들의 집단 초상에는 산업화를 떠받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고, 커피와 면 캔버스, 낡은 도구에는 생산과 소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전시는 2027년 1월 25일까지 이어진다. 홀은 애팔래치아의 광산에서 일했던 흑인 노동자들을 현재의 회화에 다시 등장시켰다. 미국 산업화의 기록에서 채굴량과 임금, 노동력으로 남았던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는 얼굴과 작업복, 서로 다른 자세를 가진 인물들로 서 있다. 커피로 물들인 면 캔버스와 오래된 도구가 함께 놓인 작품에는 노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현대미술의 방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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