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부재의 경계, 침묵이 남긴 가장 강렬한 흔적
[KtN 박준식기자] 깊은 푸름이 응축된 채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색의 배치가 아니다. 화면 상단에서 시작된 강렬한 블루는 중력의 흐름을 따라 흩어지고, 점차 아래로 내려가며 희미해진다. 그 흔적들은 단순한 물리적 흐름이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가 축적되고 해체되는 과정의 기록이다.
허은선의 Dancing with Silence 5는 침묵과 움직임,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작가는 "침묵이 가장 강렬한 움직임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침묵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보이지 않는 힘, 그리고 그 힘이 물질과 결합해 하나의 형상이 되었다가 다시 흐려지는 과정이 이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다.
작품명: Dancing with Silence 5
제작 연도: 2019년
규격: 200 × 240cm
재료: 캔버스에 금박 혼합 기법 (Technique mixed with gold leaves on canvas)
존재의 흔적 – 작품의 철학과 영감
허은선의 작업은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 자체를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Dancing with Silence 시리즈는 그 연장선에서 존재의 생성과 소멸, 질서와 무질서가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Dancing with Silence 5에서는 화면 상단에서 응축된 강렬한 블루가 점차 흩어지고 희미해지는 과정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응축된 감정과 존재의 흐름이 풀려나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색채의 흐름은 마치 침묵 속에서 천천히 드러나는 진실처럼 서서히 내려앉는다. 강한 폭발 이후 남겨진 흔적이듯, 색이 아래로 스며들며 점점 옅어지는 과정은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흔적을 반영한다.
허은선은 이 작품을 통해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며 사라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형태가 흩어지고 점차 옅어지는 과정은 자연의 순환을 떠올리게 하며, 강렬했던 존재조차도 결국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색감과 질감, 구도 – 침묵이 만든 움직임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푸른 색채의 응축과 확산이다.
화면 상단에 집중된 강렬한 푸른 색은 깊은 정적과 응축된 에너지를 상징하며, 아래로 흐르며 점점 희미해지는 과정은 소멸과 흔적을 암시한다. 푸른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존재와 사유의 공간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금박이 혼합된 표면은 빛의 반사에 따라 다르게 보이며, 시각적으로도 유동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마치 남겨진 흔적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감이 캔버스를 따라 흘러내리는 흔적은 순간의 움직임을 응축한 결과이며, 정지된 시간 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화면의 상단에서부터 아래로 점차 희미해지는 구성은 단순한 색채의 흐름이 아니라, 존재가 흩어지며 소멸하는 과정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다. 형태가 점차 분해되며 사라지는 듯한 효과는 강렬한 시작과 고요한 끝 사이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조형적 미학을 넘어, 자연의 움직임과 인간의 감정을 반영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허은선의 창작 철학과 예술적 접근
허은선은 침묵과 움직임을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요소로 해석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형태는 단순한 조형적 구성물이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Dancing with Silence 5에서는 이 개념이 극대화된다. 푸른 색채는 화면 속에서 자유롭게 흐르지만, 그 흐름은 정적인 침묵과 공존하며 상호작용한다. 이로 인해 작품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성을 내포한 회화적 기록으로 기능한다.
금박을 활용한 방식 또한 이러한 개념을 확장한다. 금박은 정적인 물질이지만, 빛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하는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로 작동하며, 허은선의 철학적 탐구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다.
갤러리A 전시 – 침묵 속 흔적을 드러내다
갤러리A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실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전시이다. Dancing with Silence 5는 전시 전체의 흐름 속에서 침묵 속 흔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푸른 색채의 응축과 확산은 전시 전체의 흐름과 맞물리며, 창조와 소멸, 존재와 부재의 개념을 확장한다.
금박의 사용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허물며, 자연적 질서와 인간의 개입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공간을 채우는 동시에 남겨진 여백은, 전시가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 –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향해 가는가?" – 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허은선의 작품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다. 그것은 공간 속에서 시간과 움직임을 유도하며, 관객이 스스로 존재에 대해 질문하도록 이끄는 철학적 탐구의 일부다.
관객과의 대화 – 존재와 부재를 마주하는 순간
이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 관객은 단순한 색과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흔적을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푸른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과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남기는 흔적과도 닮아 있다. 그것은 물리적인 중력을 연상시키면서도, 마치 정신적인 깨달음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허은선의 Dancing with Silence 5는 단순한 정적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확장되는 흐름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본질을 담아낸 시각적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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