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영 의원 "필수 추경이 아니라 찔끔 추경"
[KtN 최기형기자] 국가 재정은 위기 대응의 최후 보루다. 위기의 크기만큼 대응도 과감해야 한다는 원칙은 오래된 교과서의 문장처럼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 경제 앞에 놓인 이번 추경안은 그 원칙과 철학이 무너진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일영 의원이 정부의 추경안을 두고 '찔끔 추경'이라고 비판한 배경에는 재정정책의 리더십 부재, 위기 대응 철학의 빈곤, 그리고 국가 정책 운용에 대한 총체적 문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숫자가 말해준 정부의 태도
정부가 발표한 12조 원 규모의 추경안은 당초 계획한 10조 원에서 2조 원 늘어난 수준이다. 겉으로는 국회와 언론, 한국은행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실질적 의미는 전혀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한 35조 원에는 크게 못 미치고, 한국은행이 제시한 적정 추경 규모 15조 원에서 20조 원에도 한참 미달한다.
정일영 의원은 이를 두고 "필수 추경이 아니라 찔끔 추경"이라고 단언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부가 선택한 대응의 크기와 속도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경제연구원 학술지에 "정부 지출이 GDP를 단기적으로 1.45배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를 게재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이 경기 대응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근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미 공인된 사실에 가깝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재정건전성이라는 오래된 관념에 갇혀 위기를 예산의 숫자로 축소해 대응하고 있다.
정 의원은 이런 방식이 국가적 기회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소비자심리지수는 넉 달 연속 기준치인 100을 하회했고, 청년 고용지표는 2013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7%로 하향 조정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실물지표의 경고음은 명확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속도도, 규모도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위기의 본질은 예산이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
정일영 의원은 위기의 본질을 숫자에 국한하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 지표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에 있다고 본다. 경기 하강에 대응하는 적극적 재정정책은 선진국 정부의 공통된 전략이다. 미국은 코로나19 이후 수차례의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해 경제 충격을 흡수했고, 유럽연합도 회원국 간 재정공조를 통해 위기 대응에 나서왔다.
한국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여전히 OECD 평균 이하에 머물러 있다. 통화정책 여력 역시 여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지연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선택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통해 추경 증액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필요한 경우 2차 추경 논의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는 단기적 재정투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국가 경제 위기 앞에서 국회가 재정정책의 리더십 공백을 메우겠다는 전략적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 정책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실물경제 지표 자체가 아니다. 정책의지 부재, 위기 대응 리더십 결핍, 그리고 정책 결정의 정당성 상실이 위기를 장기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일영 의원의 비판은 단순한 정치적 공세로 치부하기 어렵다. 국가 재정은 위기 대응 수단일 뿐 아니라 정책 신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국민 경제는 숫자보다 빠른 속도로 정책 신호에 반응한다. 정부의 우유부단한 대응은 시장에 불확실성을 확대시키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보수적 태도를 강요하게 만든다.
12조 원 추경안은 한국 경제 위기 국면에서 정책 리더십 공백이 만들어낸 상징적 결과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 모면이 아니라 구조적 해법이다. 적기에 충분한 규모의 재정 투입,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의 일관성과 투명성 확보가 위기 극복의 핵심이다.
정 의원이 제기한 추경 증액과 2차 추경 논의는 바로 그 출발점이다. 위기 대응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정책 실행으로 증명되는 영역이다. 한국 경제가 더 이상 정책 부재의 리스크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한 리더십과 정교한 재정정책 설계가 절실하다. 지금 그 시험대 위에 올라선 주체는 바로 한국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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