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북핵 군축 접근, 그리고 외교적 균형의 시험
[KtN 박준식기자]2025년 10월, 대한민국은 20년 만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경주에서 개최한다. 미국과 중국 정상 모두가 참석하는 이번 회의는 한국 외교의 무대 복귀를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 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타임 인터뷰에서 한국을 “동서양을 잇는 가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녹록지 않다. 같은 날 베이징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맞이했다. 이른바 ‘격변의 축’으로 불린 세력은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가교 역할을 자임한 외교 전략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품고 있다.
한일 관계: 첫 순방지 선택의 의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선택한 도쿄는 상징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17년 만에 한일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일본 총리와 “파트너로서 협력”을 약속한 행보는, 과거 민주당 정권과 다른 노선을 드러냈다.
한국 정치에서 일본과의 협력은 늘 논쟁적이다. 역사 문제와 영토 분쟁은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경제·안보 환경을 고려할 때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미국과의 3각 협력 구도에서 일본과의 관계 회복은 필수적 조건이기도 하다. 국내 비판을 감수한 선택은, 가교 외교의 첫 단추였다.
한미 협력: 관세 협상과 투자 약속의 외교적 함의
자동차 관세 인하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약속은 통상 문제를 넘어 외교적 신호였다. 미국은 한국을 전략적 동맹으로 인정했고, 한국은 거액의 투자로 응답했다. 대통령은 이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APEC을 앞두고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그러나 불균형 논란은 남는다. 한국이 얻은 것은 단기적 관세 인하, 미국이 얻은 것은 장기적 산업 투자라는 구도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외교 전략의 명분과 경제적 대가 사이의 균형이 흔들릴 경우, 동맹은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다.
대중 전략: 적대 없는 관리의 필요성
타임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도록 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깊숙이 편입되면서도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처지다. 한국 수출의 25%가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 발생한다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한국이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서게 될 위험이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할수록 중국은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 반도체 공급망, 희토류 수출 제한, 관광객 통제 등 경제적 수단은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 가교 외교가 성공하려면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정교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 군축 접근이라는 현실적 해법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전면적 비핵화가 아닌 ‘무기 생산 중단 → 단계적 감축 → 최종적 비핵화’라는 3단계 시나리오다. 부분적 제재 완화와 교환하는 현실적 방안이다. 이는 과거 리비아 모델처럼 전면 포기를 요구하다 협상이 결렬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군축 접근은 합리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곧바로 논란이 일었다. 보수 진영은 북한에 대한 지나친 양보라고 비판했고, 북한 노동당 김여정 부부장은 이를 “망상과 헛된 꿈”이라며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축은 북미 협상의 새로운 접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국제사회와 노벨 평화상 카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원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하다. 대통령이 군축 접근을 제안한 배경에는 이를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계산도 엿보인다.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부분적 합의를 이끌어내면,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 중재자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은 이를 통해 북핵 문제를 완화시키고, 동시에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외교 전략에서 아첨과 계산은 분리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면서도 북한 문제를 협상의 의제로 올린 이유는, 통상과 안보를 연결하는 ‘주의 분산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가교 외교의 기회와 위험
가교 외교는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일본과 협력을 복원하며, 북핵 문제에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는 모습은 국가 위상을 높이는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은 양측 진영이 충돌할 경우 최전선에서 피해를 떠안는 위험에 노출된다. 공급망 압박, 무역 보복, 군사적 긴장이 모두 현실적 시나리오다. 가교 외교가 진정한 기회로 작동하려면, 외교적 균형 감각과 국내 정치적 합의가 함께 필요하다.
균형의 외줄타기
타임 인터뷰에서 드러난 외교 전략은 기회와 위험이 교차하는 외줄타기다. 대통령은 한국을 “가교”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다리는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중국을 관리해야 하고, 일본과 손잡으면서도 국내 반발을 달래야 하며, 북핵 문제에서 현실적 해법을 찾으면서도 보수·진보 간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가교 외교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기회이자, 동시에 미·중 갈등의 최전선으로 내몰릴 위험이다. 리부트 코리아의 외교적 성패는 균형 감각에 달려 있다. 대통령이 강조한 “위기 속 기회”라는 구호가 실현되려면,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정교한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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