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 2026년 2월 보고서가 짚은 의료 접근성의 병목
불필요한 방문은 덜어내고, 전문의 시간은 다시 나누고, 예약은 환자 사정에 맞게 다시 짜야 한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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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정석헌기자]병원은 늘 붐빈다. 아침 외래가 시작되면 접수창구 앞부터 길게 줄이 선다. 복도 의자는 금세 차고, 검사실 앞 번호판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수술 날짜를 잡으려면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낯설지 않다. 겉으로 보면 답은 단순해 보인다. 의사가 모자라고 병상이 부족하니 더 늘리면 될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병원 안으로 한 발 더 들어가면 사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꼭 그날 그 자리에서 전문의가 보지 않아도 되는 방문이 끼어 있고, 준비가 덜 된 채 잡힌 일정이 한 칸을 차지한다. 짧게 끝날 일과 길게 설명해야 할 일이 같은 시간표에 함께 올라가고, 상급병원에서 볼 필요가 크지 않은 환자도 유명 전문의를 찾아 몰린다. 수요가 넘치는데도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제때 진료가 닿지 않는 까닭은 이런 데 있다.

2026년 2월 나온 맥킨지 보고서 ‘Solving the healthcare access challenge’는 이 대목을 정면으로 짚었다. 의료 접근성 악화는 단순한 공급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봤다. 의사와 병상을 무작정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고, 오히려 병원 안의 시간표와 역할 배분, 예약 경로와 환자 흐름을 함께 손보지 않으면 병목이 되풀이된다는 진단이다. 보고서가 내놓은 핵심 문장은 단순하다. 환자가 알맞은 진료를 알맞은 장소에서 알맞은 시점에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상식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이 상식이 자주 무너진다. 환자는 진료실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의료진은 정작 가장 중요한 판단에 쓸 시간을 행정과 조정, 뒤엉킨 일정 처리에 빼앗긴다.

보고서는 이런 비틀린 구조를 몇 가지 수치로 보여준다. 맥킨지가 2025년 의사 설문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응답 의사의 83%는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미루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예약이 늦어지고, 적절한 의뢰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방문 과정이 번거로워 치료가 뒤로 밀린다는 뜻이다. 치료가 늦어지면 환자 상태는 악화하기 쉽고, 뒤늦게 더 큰 비용과 더 큰 위험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병원 입장에서도 손해다. 일정은 더 꼬이고, 현장은 더 바빠지고, 의료진 피로는 더 짙어진다. 결국 접근성 악화는 환자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 성과와 병원 운영을 동시에 흔드는 문제로 번진다.

이 보고서가 특히 주목한 지점은 의사 시간이 쓰이는 방식이다. 많은 병원이 진료난을 풀겠다며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해법은 두 가지다. 의사를 더 뽑거나, 현재 의사에게 더 많은 환자를 맡기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이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 의료계에서는 앞으로 상당한 규모의 의사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력 자체가 빠듯한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한 사람에게 밀어 넣는 방식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실제로 보고서는 2025년 의사 설문에서 응답자의 35%가 번아웃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진료량이 많은 것만으로 피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꼭 의사가 해야 할 일과 굳이 의사가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일이 한데 뒤엉켜 있기 때문에 피로가 쌓인다. 바쁜데도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퇴근 뒤까지 문서와 메시지, 승인 업무가 따라붙는 구조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맥킨지는 이 점을 수치로 더 구체화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일정의 10%에서 30%는 굳이 그렇게 운영하지 않아도 되는 방문으로 채워져 있다. 불필요한 내원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정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더 눈에 띄는 대목도 있다. 의사 설문 응답자들은 환자 진료 시간 가운데 평균 42%는 다른 팀원이 맡을 수 있다고 봤다. 이 수치를 곧바로 인력 대체의 논리로 읽으면 보고서의 뜻을 놓치게 된다. 보고서가 말한 것은 의사를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숙련된 판단과 처치가 필요한 구간에 의사 시간을 다시 돌려놓자는 이야기다. 전문의가 직접 해야 할 일과 다른 직역이 맡아도 되는 일을 분리하지 않으면, 병원은 늘 바쁜데도 정작 중요한 환자에게 시간을 내주지 못하는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진료실 안팎에서 낭비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크다. 환자가 검사 준비를 덜 한 채 외래에 오면 의사는 설명을 다시 하고, 검사를 다시 잡고, 재방문 일정을 다시 짜야 한다. 결과적으로 진료 한 칸이 실제 치료로 이어지지 못한 채 사라진다. 진료 뒤에 붙는 차트 작성과 문서 업무도 만만치 않다. 보고서는 의사들이 임상 시간의 11%를 차트 작성과 문서화에 쓴다고 정리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하루 일과로 바꿔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환자를 직접 보는 시간 사이사이에 문서 작업이 끼어들고, 낮에 끝내지 못한 업무는 퇴근 뒤로 넘어간다. 이른바 ‘파자마 타임’이라 불리는 퇴근 후 차트 작업이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셈이다. 환자 대면 시간은 짧아지고, 의료진 피로는 더 깊어진다. 병원 바깥에서는 진료가 느리다고 하고, 병원 안에서는 하루가 모자라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고서는 이 병목을 푸는 첫 단계로 진료 모델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고 봤다. 핵심은 ‘누가 어떤 환자를 언제 맡을 것인가’다. 수술을 앞둔 고난도 환자와 안정된 만성질환 환자를 같은 방식으로 배치할 수는 없다. 수술 전후 관리 가운데 상당 부분은 다른 팀원이 맡을 수 있고, 그만큼 외과 의사는 수술실과 중증 판단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라면 상급병원의 세부 전문과에 계속 매달릴 필요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지역 의료기관이나 다른 팀이 꾸준히 관리하면 상급 의료기관은 더 복잡하고 더 급한 환자에게 시간을 열 수 있다. 보고서는 바로 이런 공동관리 모델과 역할 재배치가 접근성 개선의 중심이라고 봤다. 물리적 공간을 늘리기 전에 인력과 역할의 배치를 먼저 다시 그려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팀 진료가 전문의를 뒤로 빼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전문의가 가장 값비싼 판단과 처치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방식에 가깝다. 병원이 흔히 빠지는 함정은 전문성의 위계를 효율의 논리와 헷갈리는 데 있다. 이름값이 높은 의사 한 사람에게 많은 환자를 몰아넣는 것이 곧 최선이라고 여기면, 그 의사는 정작 자신의 숙련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쓸 시간을 잃기 쉽다. 반대로 역할을 세분화해 수술 전 설명, 회복기 관리, 약 조정, 생활 습관 상담, 문서 처리, 방문 전 준비 점검을 적절히 나누면 전문의는 고난도 판단에 집중할 수 있다. 환자도 무조건 오래 기다린 끝에 한 번 만나는 구조에서 벗어나 더 자주, 더 알맞은 접점으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기술은 이 구조를 떠받치는 도구로 등장한다. 의료 현장에서 AI를 말하면 대개 진단 보조나 영상 판독 같은 화려한 장면부터 떠올리기 쉽다. 맥킨지 보고서의 무게중심은 조금 다르다. 실제 접근성을 바꾸는 기술은 종종 그보다 덜 화려한 곳에서 힘을 낸다고 봤다. AI 서기, 인바스켓 분류, 약 리필 처리, 방문 전 계획, 사전 승인 서류, 의뢰 관리 같은 행정과 흐름의 자동화가 대표적이다. 진료실 마이크가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듣고 차트 초안을 정리하는 AI 서기는 의사가 키보드와 모니터에 빼앗기는 시간을 줄여 준다. 검사 결과 문의나 약 처방 연장 요청 같은 반복 업무를 미리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능은 의사와 간호사의 시간을 아껴 준다. 보험 심사에 들어가는 복잡한 서류 작업도 환자 기록에서 필요한 내용을 끌어와 자동으로 채우면 처리 지연을 줄일 수 있다. 기술의 목적은 의사를 대신하는 데 있지 않다. 의사가 아니어도 되는 일을 덜어 내고, 의사가 꼭 해야 하는 일에 더 오래 남게 하는 데 있다.

환자 예약과 동선도 다시 짜야 한다. 병원은 오랫동안 의료적 필요를 기준으로 일정을 설계해 왔다. 어느 과에 보낼지, 어느 날 검사를 붙일지, 재진은 언제 잡을지 의료진 판단을 중심으로 짜 왔다. 물론 의료적 기준은 흔들릴 수 없는 바탕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접근성 문제를 풀기 어렵다. 환자마다 사정이 다르고, 선호하는 접점도 다르다. 누군가는 문자 안내와 온라인 예약에 익숙하지만, 누군가는 전화 설명이 더 편하다. 누군가는 집 가까운 곳에서 짧고 자주 관리받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처음 한 번은 반드시 전문의를 직접 만나 안심하고 싶어 한다. 보고서는 이런 환자별 선호를 임상적 필요와 함께 반영해야 한다고 짚었다. 예약 시스템이 병원 편의만 따라가면 환자는 중간에 이탈하거나, 불필요한 고집과 불신을 키우게 된다. 반대로 환자 사정을 고려한 안내와 동선 설계가 들어가면 같은 자원으로도 진료 접근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목은 의료를 서비스업으로 보자는 뜻이 아니다. 치료의 기준을 환자 기분에 맞추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의료가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병원이 정한 최적의 경로와 환자가 체감하는 안심의 경로가 완전히 어긋나면 제도는 잘 굴러가지 않는다. 유명 전문의 진료를 고집하는 환자를 일방적으로 다른 팀으로 돌리는 방식은 현장 저항을 키우기 쉽다. 보고서가 강조한 신뢰와 투명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환자가 왜 이 경로로 이동하는지, 누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 이 방식이 안전하고 더 빠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새 모델이 자리를 잡는다. 효율은 설명과 설득의 과정을 건너뛰면 오래 가지 못한다.

물리적 확장에 대한 보고서의 태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병원이 진료난을 풀겠다며 가장 쉽게 떠올리는 카드 가운데 하나가 공간 확장이다. 새 건물을 짓고, 병상을 늘리고, 진료실을 더 여는 방식이다. 물론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카드를 가장 앞에 두지 않았다. 공간과 인력 확장은 자본이 많이 들고, 잘못된 순서로 들어가면 매출은 늘어도 운영 마진이 나빠질 수 있다고 봤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자원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이다. 불필요한 방문을 줄이고, 역할을 재배치하고, 환자 경로를 정교하게 만들고도 여전히 모자라는 곳에서야 비로소 물리적 확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병원이 커진다고 곧바로 접근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 구조가 비효율적이면 더 큰 공간 안에서 더 큰 혼잡이 벌어질 뿐이다.

가상진료를 둘러싼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보고서는 원격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대면진료보다 시간당 18%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수치만 떼어 놓고 보면 비대면이 만능인 것처럼 읽힐 수 있지만, 보고서의 뜻은 그보다 신중하다. 환자 상태가 비교적 단순하고, 재진 관리나 경과 확인처럼 화면을 통해도 충분한 경우라면 병원 건물 한 칸을 늘리기보다 가상진료 시간을 따로 배치하는 편이 더 빠르고 효율적일 수 있다는 정도다. 실제로 전용 가상진료 세션을 따로 편성하면 진료실 공간 부담도 줄고, 일정 운용도 더 유연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화면으로 옮길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환자에게 어떤 통로가 가장 적절한지를 가려내는 일이다. 접근성은 거리의 문제만이 아니다. 예약을 잡는 데 걸리는 시간, 병원까지 오가는 시간, 중간에 막히는 설명과 절차의 시간까지 모두 포함한다.

병원 경영의 관점에서도 이 보고서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접근성 개선은 공공성의 언어로만 설명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고서는 진료 모델 재설계, 환자 선호 반영, 운영 개선, 용량 확장을 맞는 순서로 통합 적용하면 EBITDA 마진이 3%포인트에서 7%포인트까지 개선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수치는 기술 도입이나 운영 혁신을 비용이 아닌 구조 개선으로 보게 만든다. 진료가 빨라지고 환자 만족이 높아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서도 덜 낭비하고, 더 알맞게 배치하고, 고비용 자원을 필요한 곳에 집중할수록 재무 구조가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접근성은 좋은 일과 돈이 되는 일이 갈라지지 않는 드문 영역이다. 다만 그 전제는 분명하다. 순서를 잘못 잡지 않아야 한다. 공간부터 늘리는 방식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고, 진료 모델과 환자 경로를 먼저 다듬어야 성과가 붙는다.

한국 의료 현실에 이 보고서를 대입하면 더 선명해지는 장면이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와 고난도 수술에 전문의를 묶어 두어야 하는 곳인데, 실제 외래는 그렇지 않은 수요까지 함께 떠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원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증상과 만성질환 관리를 맡아야 하지만, 환자 신뢰와 제도 설계의 한계로 그 역할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 사이에서 환자는 가장 유명한 곳으로 향하고, 병원은 가장 비싼 시간을 가장 넓게 펴 쓰지 못한다. 이 구조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은 맞지만 충분하지 않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의사 시간이 가장 필요한 곳에 먼저 가지 못한다’에 가깝다. 보고서가 던진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닿아 있다.

병원이 먼저 고쳐야 할 것은 숫자 자체보다 질서일 가능성이 크다. 의사 일정의 10%에서 30%를 차지하는 비효율 방문을 줄이고, 환자 진료 시간의 42%를 다른 팀과 나눌 수 있게 설계하고, 문서화에 쓰이는 11%의 시간을 덜어 내고, 필요한 곳에는 가상진료 같은 새로운 통로를 여는 일. 이런 조정이 쌓여야 비로소 병원은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은 환자를 제때 볼 수 있다. 붐비는 병원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더 어려운 일은 그 붐빔이 어디서 생기는지 정확히 가려내는 일이다. 맥킨지 보고서는 의료 접근성 위기의 초점을 거기 맞췄다. 병원이 먼저 손봐야 할 것은 모자라는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진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 질서가 바뀌지 않으면 외래 대기실은 앞으로도 계속 붐빌 것이고, 환자는 여전히 늦게 진료실 문을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