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중국의 분리 가속과 글로벌 공급망의 전략적 전환
[KtN 최기형기자] 글로벌 경제의 가장 심층적인 지형 변화는 ‘탈중국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이는 지정학적 대립과 기술 패권 경쟁이 초래한 ‘공급망 지각변동’이며, 지금 세계는 단순한 생산지 이동을 넘어 산업 생태계 자체의 전략적 재배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리쇼어링(reshoring), 니어쇼어링(nearshoring),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등 공급망 용어들이 증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세계 경제가 새로운 질서의 교차로에 서 있음을 반증한다.
미국의 리쇼어링 전략: 산업 안보에서 정치 레버리지로
바이든 행정부는 제조업 기반 재건을 명분으로 반도체, 배터리, 방위 산업을 중심으로 한 리쇼어링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은 그 상징이며, 이는 단지 산업정책이 아니라 지정학과 내치가 결합된 전략 패키지다.
2024년 기준 미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액은 전년 대비 40% 증가했고,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이전 계획은 130건을 넘어섰다. 이른바 ‘경제 안보화’ 흐름 속에서 미국은 공급망을 ‘정치적으로 검증된 파트너’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경제 효율성 논리를 대체하고 있다.
중국의 대응: 내수 강화와 ‘수출 다변화’ 이중 전략
미국의 리쇼어링과 대중국 견제가 노골화되자, 중국은 ‘쌍순환 전략(双循环)’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국내 내수 확대와 글로벌 수출 경로 다변화의 병행 추진을 의미하며, 특히 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로의 수출 축소판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의 해외직접투자(FDI)는 2025년 1분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 이는 생산 기지를 분산시키는 동시에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공급망 정치화’에 대한 회피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다.
‘글로벌 생산의 중립지대’로 부상한 제3국
베트남,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중립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멕시코 공장 이전은 2024년 60% 증가했고, 대만 반도체 기업들도 인도네시아, 인도로 생산 허브를 재편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지정학 리스크 완충지대이자 새로운 산업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동남아 생산 확대도 눈에 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을 발표했으며, 삼성전자도 베트남 내 반도체 후공정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 헷지’의 실용적 사례로 평가된다.
산업별 리쇼어링의 명암
리쇼어링은 모든 산업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반도체, 배터리, 의료기기는 정책 지원과 수익성이 맞물려 리쇼어링에 유리한 반면, 섬유, 전자부품, 자동차 부품 등 노동집약적 산업은 여전히 비용 문제로 인해 중립지대 혹은 중국 외 생산 기지 의존도가 높다. 이로 인해 산업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국가별 산업 구조의 ‘전략적 취약점’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공급망의 지정학화와 ‘경제 전략 시대’의 도래
이제 공급망은 더 이상 생산 효율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안보, 외교 전략, 산업 독립성이라는 ‘총체적 국가 전략’의 일환이 되었다. 디커플링은 단순한 분리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안보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서막이다.
한국을 비롯한 수출 중심 국가들은 ‘어느 블록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양쪽 모두와 협력하는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경제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유연성이 필수적이며, 산업 생태계의 내재화, 기술 독립성 강화, 중간재 공급망의 다각화는 앞으로의 국가 생존 전략이자 투자 전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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