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건 위기, 산업과 전통의 경계에서 흔들린 대만의 기호식물

빈랑 열매 / 사진=ⓒ 원근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빈랑 열매 / 사진=ⓒ 원근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1970년대 대만 중남부 평야지대는 풍요로운 찻잎의 녹색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이 지역의 풍경은 점차 변했다. 대만의 농민들은 차밭을 갈아엎고 빈랑나무(檳榔樹)를 심기 시작했다. 빈랑은 재배가 수월하고 수익성이 높다는 이유로 빠르게 대체 작물로 확산되었다. 당시 대만 사회는 빈랑나무 한 그루가 아이 한 명의 대학 등록금을 감당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빈랑의 경제적 가치를 신뢰했다. 빈랑은 곧 '녹색 다이아몬드'로 불렸다.

빈랑은 동남아 열대 지역에서 자생하는 아레카 야자의 열매로, 대만 원주민 문화에서는 제사와 환대, 모성애의 상징으로 오랜 세월 사용되었다. 빈랑 열매를 베틀후추 잎에 싸서 석회가루와 함께 씹는 전통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대만 각지에 퍼져 있었고, 아미족을 비롯한 원주민 사회에서는 빈랑을 신성한 식물로 여겼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시기를 지나며 한족 중심의 주류 사회는 빈랑 씹기를 미개한 하층민의 관습으로 간주했다.

빈랑은 1980~90년대를 거치며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대중화된다. 건설 노동자, 택시 기사, 야외근로자들은 각성 효과가 있는 아레콜린 성분을 이유로 빈랑을 일상적으로 씹었다. 붉게 물든 입술과 검붉은 치아는 새로운 기호 문화를 상징했고, 거리마다 붉은 침 자국이 흔적처럼 남았다. 대만 사회는 이 소비 행태를 ‘홍순족(紅唇族)’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1990년대 대만은 빈랑 판매를 둘러싼 독특한 성상품화 문화를 만들어냈다. ‘빈랑서시(檳榔西施)’라는 명칭은 네온사인 유리부스 안에서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빈랑을 판매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빈랑서시는 중국 4대 미인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거리의 가게들은 강렬한 조명과 선정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끌었다. 한때 대만 전역에 6만여 개의 빈랑 판매점이 성업 중이었고, 이는 곧 공공 윤리 논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대만의 빈랑 산업은 위기를 맞는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빈랑의 주성분인 아레콜린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구강암과 식도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보건 문제와 더불어 환경 파괴 또한 심각했다. 빈랑 재배는 벼농사보다 5배 이상의 물을 소모하며, 연간 50억 톤 이상이 빈랑밭에 투입되었다. 특히 산간지대의 빈랑나무는 뿌리가 얕아, 집중호우 시 토사 유출과 산사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만 정부는 오랫동안 ‘3불 정책(지원하지도, 장려하지도, 금지하지도 않는)’으로 일관했다. 빈랑 산업은 무분별하게 확산되었고, 한때 아름답던 대만의 차 산지는 빈랑나무로 뒤덮였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빈랑 폐원을 촉진하는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대체 작물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산사태 위험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특히 차나무로 전환할 경우 가장 높은 수준의 지원을 약속했다.

대만 농림청은 「빈랑 폐원 및 전환 재배 작업 규범」을 제정하고, 산비탈 지역의 빈랑밭부터 차밭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차나무는 심근성 작물로 분류되며, 깊은 뿌리로 토양을 고정하고 수자원 보전에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2013년 이후 정부는 차나무를 ‘환경 친화적 대체작물’로 지정하고, 적극적인 보급에 나섰다.

2020년 기준 대만의 빈랑 재배 면적은 3만 2천 헥타르로, 20년 전의 5만 헥타르에서 약 36% 감소했다. 빈랑 판매점도 2만여 개소에서 8천 개소로 줄어들었다. 공중보건, 환경, 문화적 논란이라는 세 축에서 빈랑 산업이 흔들린 사이, 차나무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대만의 찻잎은 다시금 햇빛을 보기 시작했고, 폐허처럼 방치되었던 빈랑밭 위에는 고산 홍차와 전통 우롱차가 자리를 잡았다.

대만의 차 산업은 빈랑과의 대결에서 회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전통 문화의 계승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빈랑 산업은 이제 자연과 공존하는 농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때 녹색 다이아몬드로 불리던 빈랑은 기호식물의 경제성과 문화적 의미, 그리고 생태적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었다. 반면, 차나무는 이 균형을 새롭게 재정립하며 대만 농업의 미래를 다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