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기업의 이윤 추구는 정당화될 수 없다”
SPC그룹의 ‘8시간 초과 야근 폐지’ 선언

 

[KtN 박준식기자] 2025년 7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 시흥의 SPC삼립공장을 찾았다. 반복되는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이곳에서 대통령은 허영인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마주했고, 사고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그리고 불과 이틀 뒤, SPC그룹은 “8시간 초과 야근을 전면 폐지한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거대한 기업의 운영방식을 바꾼 것이다. 이례적이고도 상징적인 변화의 순간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담고 있었다. 대통령은 “일주일에 나흘을 밤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12시간씩 일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하며,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문제제기는 단순한 발언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 노동시간이 생명과 직결된다는 근본 명제를 다시 사회에 환기시켰다. 야근 구조 자체가 안전의 뿌리를 흔드는 직접 원인이며, 그 구조를 방치한 채 사고를 막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드러낸 것이다.

SPC그룹의 ‘8시간 초과 야근 폐지’ 선언은 산업재해 대책이 실제 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장면이다. 단순히 언론을 통한 대국민 메시지가 아니라, 현장을 찾고, 노동자와 기업인을 동시에 대면한 결과로 도출된 변화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대통령이 국정 최우선 의제로 ‘노동안전’을 천명하고, 행정부 전체가 이에 발맞춘 구조 전환을 압박하면서 정부 메시지가 기업 행동을 유의미하게 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장면이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SPC의 발표에 대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기업의 이윤 추구는 정당화될 수 없다”며, “OECD 산재 사망률 최상위라는 오명을 벗고 행복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행정부가 더는 산업재해 문제를 개별 기업의 책임으로만 떠넘기지 않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향후 유사 사례에 대한 강력한 기준이자 선례가 될 전망이다.

이번 결정은 기업문화 전환의 단초이자 정책·노동 환경의 전환점을 예고한다. SPC는 지난 몇 년간 국내에서 가장 산재 사고가 반복된 대기업 중 하나다. 평택 SPL, 성남 샤니, 시흥 삼립에서 발생한 연쇄적 사망사고는 주로 야간 장시간 노동 중 발생했다. 12시간 교대 근무제, 인력 부족, 노후 설비, 안전관리 부재 등 구조적 요인이 중첩된 구조 안에서 사고는 예외가 아니라 상수였다.

그러나 과거와 달랐던 점은 대통령의 대응 방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단지 법률이나 지시로 문제를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현장에 가서 현실을 목격했고, 노동자의 언어로 사고를 이해했다. 그리고 기업이 반응했다. 이는 기존의 중앙집권적, 탁상행정식 재해 예방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정책이 현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최고 통치자가 현장에서 출발한 정책을 만든 셈이다.

이처럼 대통령의 행보는 단순한 행정 집행의 수준을 넘어 사회적 규범을 새로 쓰는 상징적 행동이 된다. SPC가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한 이유는 법적 의무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강력한 메시지가 ‘사회적 기준’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과 야근을 당연시해온 산업현장에 '8시간을 넘는 야근은 위험하다'는 새로운 규범이 설정된 것이다. 이는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문화의 변화이며, 가장 어려운 종류의 전환이다.

이번 SPC 결정은 다른 기업과 산업계 전반에도 신호를 보낸다. 아직 법제화된 노동시간 상한선은 없지만, 대통령의 행보는 ‘초과 야근 구조’ 자체를 공공연히 문제화했다. 포스코, 태안화력, CJ제일제당 등 사고 위험이 반복됐던 산업현장에서도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기업 위주 제조업계는 경영 리스크 차원에서도 노동안전을 새로운 경영 KPI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정치가 산업구조를 바꾸는 드문 성공의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단기간에 대기업의 경영 원칙을 바꾸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며, 그만큼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가 명확하고 단호했다는 방증이다. 국민 다수가 체감할 수 있는 노동환경 개선, 특히 생명과 직결된 안전 문제를 국가 리더십이 전면에 나서 주도한 일은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결국 SPC의 8시간 초과 야근 폐지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전환이다. 한국 산업사회의 무의식 깊숙이 내재돼 있던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냉소적 체념을 “죽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사회적 기준으로 다시 써내려가는 출발점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대통령의 방문이, 대통령의 질문이 산업현장의 문을 다시 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변화가 다른 기업, 다른 현장, 그리고 법과 제도의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