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신미희기자]  “서로 다른 문화가 조화를 이룰 때, 그 속에서 진짜 창의성이 피어난다.” RM이 29일 APEC CEO 서밋 무대에서 ‘K팝은 비빔밥’이라고 비유하며, 다양성과 포용의 힘이 만들어낸 K-컬처의 본질을 전 세계 앞에 전했다.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올해 서밋의 주제는 ‘비욘드, 비즈니스, 브리지(Beyond, Business, Bridge)’. 21개 회원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혁신 산업과 새로운 트렌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K-팝 아티스트가 연단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RM은 ‘APEC 지역의 문화창조산업과 K-컬처의 소프트파워’를 주제로 영어로 연설하며 “K-팝은 비빔밥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힙합, 알앤비(R&B),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등 서구의 음악 요소를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미학과 정서, 그리고 제작 시스템을 융합했다”며 “서로 다른 재료들이 각자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어우러져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비빔밥처럼, K-팝은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며 발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K-팝을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닌 “음악, 춤, 퍼포먼스, 비주얼, 스토리텔링, 그리고 소셜미디어까지 아우르는 ‘360도 토털 패키지’”라고 정의했다. RM은 “K-팝의 성공은 어느 한 문화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세계의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라며 “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창조적인 에너지가 폭발한다”고 강조했다.

RM은 방탄소년단이 처음 세계 시장에 진출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의 어려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10여 년 전 해외에 나갔을 때만 해도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며 “우리는 음악보다 먼저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설명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방송국의 문턱은 높았고, ‘비영어권 음악’이라는 이유로 외면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며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전단을 돌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여정을 바꾼 결정적인 힘으로 팬덤 ‘아미(ARMY)’를 꼽았다. RM은 “아미는 우리의 음악을 매개로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했다”며 “그들은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사회 캠페인을 펼치며 문화의 힘을 증명했다”고 전했다. 이어 “처음엔 ‘아시아의 소수문화 지지자’로 여겨졌던 아미가 이제는 새로운 공동체로서 전 세계 문화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며 “이들의 ‘국경 없는 포용성’은 나에게 끊임없는 창의적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연설의 마지막에서 RM은 문화와 예술이 경제를 넘어 인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란 막힘없이 흘러가며 어딘가에 닿고, 서로 섞여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며 “K-팝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그 어떤 곳보다 역동적이고 다양한 문화적 가능성을 지닌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창작자들이 그들의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과 기회의 장을 마련해 달라”고 글로벌 리더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문화와 예술은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가장 빠르고 깊게 전달하는 매개체”라고 덧붙였다.

RM은 이날 오전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함께 개회식에도 참석했으며, 이후 행사장 내 하이브 홍보 부스를 둘러보며 문화산업의 미래 비전을 함께 논의했다.
이번 RM의 연설은 단순한 문화인의 발언을 넘어, 글로벌 경제 포럼에서 ‘문화가 산업이자 외교의 새로운 축’임을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으로 평가된다. 세계 경제의 중심 담론이 기술과 자본에서 문화와 감성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특히 RM이 언급한 ‘문화 간 포용’과 ‘창의적 다양성’은 현재 전 세계가 직면한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더욱 큰 울림을 준다. K-팝이 단순한 한류 콘텐츠를 넘어, 국제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연결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문화외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