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계열화와 폐쇄적 생산 구조, 성장 속도를 늦추는 압력
[KtN 임우경기자]에르메스는 생산의 상당 부분을 프랑스 내에서 직접 수행한다. 장인이 중심이 되는 도제식 제작 방식이 유지되고 있으며, 자동화 설비 비중은 낮다. 가죽 제품군을 포함한 주요 제품의 생산량은 인력 확충 외에 확대 방안이 마땅하지 않다. 이 구조는 일관된 품질을 만드는 기반이지만, 수요가 급증하는 시장에서는 공급 병목으로 이어진다.
수직 계열화는 공급망 통제와 브랜드 진정성 확보 측면에서 장점이 크다. 원자재, 생산, 품질 관리, 유통을 본사 체계 안으로 묶어 관리하면 리스크가 최소화된다. 그러나 모든 공정을 내부에서 처리하는 방식은 외부 수요의 변동에 대응하는 속도를 낮춘다. 수요 충격이 발생해도 생산량을 확대할 수 없기 때문에 공급 불균형이 구조적으로 반복된다.
장인 인력 양성도 문제다. 에르메스는 새로운 장인을 양성하기 위해 자체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지만, 숙련 단계까지 도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 공급 조절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고정비 비중이 높은 인건비 투입 구조는 비용 압박으로 이어진다. 성장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력 투자 부담은 커지고, 과도한 비용은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가격 설정 방식도 논쟁의 대상이다. 비용 기반 가격 체계가 유지되고 있으나, 실제 시장에서는 희소성과 브랜드 자산이 가격 결정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용과 무관하게 가격 인상이 반복되면서, 소비자의 지불 능력과 제품 가격 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제품 가치가 품질에서 비롯되는지, 공급 통제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재고 운영 측면에서도 유연성이 낮다. 제품별 생산 계획이 수요 추적보다 브랜드 중심의 철학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시장 요구가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는 정합성 확보가 어렵다. 특히 패션 카테고리 확장은 본사 기준으로 엄격한 검토 절차를 거쳐야 하며, 한국 등 특정 시장의 수요 특성을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유통 구조의 폐쇄성은 고객 경험의 질을 저해할 수 있다. 전국 오프라인 매장과 제한적 온라인 채널만으로 구매 경로가 구성되어 있고, 수요가 높은 제품은 접근 가능성이 낮다. 고객의 반복 방문이 사실상 요구되는 구조에서 소비자 부담은 증가한다. 공급을 늘리는 대신 진입 장벽을 강화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매출 유지에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 고객 피로를 키울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브랜드 자산을 장기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공급 확대가 브랜드 희소성을 축소시키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수직 계열화 유지와 생산 제한은 브랜드 가치 보존 전략에 부합한다. 그러나 시장 환경 변화가 확대되고, 가격에 대한 저항이 커지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강한 고정비 구조는 수익성 방어에 부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시장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가장 먼저 드러낼 수 있는 시장으로 평가된다. 수요 집중 현상이 지속되고 고객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공급 병목은 더 큰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젊은 소비자의 인식 변화가 공급 제한 전략을 정당화하기 어렵게 만들면, 매출 중심 성장 전략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수직 계열화는 에르메스의 핵심 정체성이다. 그러나 이 정체성이 향후 경제적 경쟁력으로 작동할지, 성장 속도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남을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역사적 유산과 재무 성과가 충분하다 해도, 소비 환경 변화와 생산 구조의 경직성은 장기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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