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부재가 만든 ‘정보 불균형’,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는 구조
[KtN 임우경기자]에르메스는 명확한 정책을 갖고 있다. 마케팅 부서를 두지 않고, 제품 홍보를 위한 대규모 마케팅 활동을 지양한다. 커뮤니케이션 전담 조직만 운영하며, 모든 콘텐츠는 본사 중심의 승인 체계를 거친다. 신제품 발표, 유명인 활용 광고, 대규모 캠페인 노출 같은 일반적 방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에서 관측되는 효과는 마케팅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과도한 관심이다. 광고를 하지 않는 방식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줄여 희소성을 강화한다. 고객은 정보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매장 방문, 입점 대기, 직원 상담 등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고객의 노력과 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정보 비대칭은 에르메스 입장에서 유리하게 작동한다. 제품 우선권, 구매 가능 시점, 입고량, 대기 기준 등 핵심 정보가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고객 행동은 기업 규칙에 종속된다. 제품 설명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제품 외부 요인에 따른 수요가 확대되기 쉽다. 구매 자체는 제품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제한된 기회를 확보하는 행위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RTG(Repeat to Gain) 소비가 강화된다. 재방문을 할수록 고객 분류 기준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비가죽 제품군 구매가 증가한다. 고객은 원하는 제품을 사기 위해 원하지 않는 제품을 먼저 구매하는 상황에 놓인다. 매출 확대는 즉시 가능하지만, 고객 만족도를 보장하지 못하는 방식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소셜미디어 확산이 이 구조를 더 강화했다. 구매 인증 콘텐츠는 소비자의 불확실성을 더 자극하며, 일부 제품이 상징 자산으로 기능한다. 제품 희소성에 대한 수용도가 높을수록 정보 부족이 경쟁력을 가지는 역설적 환경이 만들어졌다. 단기적으로는 홍보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확대할 수 있지만, 불투명한 구매 구조에 대한 불만도 함께 축적된다.
에르메스는 커뮤니케이션 팀이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수직형 구조를 유지하며 브랜드 통일성을 확보해 왔다. 본사 기준에 충실한 콘텐츠 관리, 자사 디자이너 활용, 연간 통합 테마 운영 등 내부 통제 강화 방식은 브랜드 일관성 유지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시장 속도와 소비자 요구는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규모가 커진 현재 시장 환경에서는 통제 중심의 방식이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제품 접근성이 낮고 고객 이탈 신호가 증가할 경우, 커뮤니케이션의 폐쇄성은 개선 기회를 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기업은 고객의 불만을 파악하기 어렵고, 고객은 개선 요구를 전달하기 어렵다. 불확실한 품목 접근 방식은 장기적으로 소비 신뢰도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
한국 시장의 경쟁사들은 디지털 기반 CRM, 투명한 구매 정책, 온라인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있다. 에르메스의 방식은 경쟁 시장 안에서 이질적으로 남아 있다. 높은 브랜드 충성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문제로 드러나지 않지만,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소비자로부터 가장 먼저 외면받을 수 있는 구조다.
브랜드 가치 보호 전략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해 왔다. 그러나 바로 그 전략이 장기 성장에 대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케팅 부재가 아니라 통제 과잉이 문제로 지적되는 이유다. 시장 성장 규모가 커질수록 정보 비대칭은 기업보다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 되고,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도 확대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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