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이 잃어버린 감각, 창작자가 되찾아야 할 미래

[KtN 박채빈기자]명품 시장이 흔들린다는 분석은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다뤄졌다. 그러나 흔들림의 본질은 소비와 경기의 문제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대 자본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권력의 침식, 바로 그 균열이 산업 위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패션 산업을 주도해온 거대 기업은 로고 확대, 희소성 포장, 가격 인상 전략을 통해 욕망을 조작해왔다. 욕망 설계 능력을 자랑해온 구조가 더 이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자본이 부풀린 가격표와 마케팅 코드가 철학보다 앞서 존재한 시기가 길어지면서 산업 생태계는 결국 내부에서부터 붕괴를 맞이하고 있다. 패션 산업의 위기는 수치의 하락이 아니라 권력 구조의 종말이다. 소비자 선택의 방식이 변화한 현실에서 기존 시장 전략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창작자를 배제하고 상품 가격에만 집중한 구조가 도달한 결말이다.

명품 시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구조적 전환이다. 과거 세계적 럭셔리 그룹은 상업적 독점력을 내세우며 시장을 지배했다. 브랜드 이름 하나만으로 프리미엄을 형성하며 가치를 창출했다. 정체성 결여, 지속 불가능한 자원 사용, 표면적 다양성 소비가 이어지는 동안 소비자 감식안은 그 위선을 포착했다. 창작자 이름보다 승진한 경영진 이름이 더 자주 언급되는 현실에서 패션은 이미 본래의 영역을 상실했다. 유서 깊은 브랜드라는 사실이 창작 정신의 쇠퇴를 감춘 기간이 길어졌다. 그런데 소비자는 더 이상 이름값에 응답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철학이 담긴 브랜드와 손끝이 살아 있는 제작자의 감각을 찾는다. 창작자 중심의 시장 회복이 미래 패션 산업이 택해야 할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산업의 변곡점에서 창작자 기반 브랜드가 주목받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애슐린 박이 구축한 제로 웨이스트 패턴 시스템과 감각적 테일러링은 과시적 명품 전략의 한계를 반박한다. 윤리적 생산 방식이 창작자 시그니처와 결합하면 가격표보다 서사가 먼저 소비된다. 스테파니 수버빌이 이끄는 브랜드 HEIRLOME은 멕시코 장인의 기술을 현대적 제작 방식에 결합하며 전통을 미래 산업 자원으로 치환하고 있다. 지역 유산 보존 활동이 사라져가는 장인 기술을 보호하는 동시에 경제적 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패션 산업이 창작자 중심으로 회귀할 필요성은 단순한 미학적 구호가 아니라 산업 생존에 필수적인 구조 개편 문제다.

구독자 전용 기사 입니다.
회원 로그인 구독신청
저작권자 © KtN (K trendy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