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구심점은 투기에서 지속성으로 이동했다

[KtN 임민정기자]뉴욕 필립스 이브닝 세일에서 영국의 젊은 화가 자데 파도주티미 작품이 유찰된 순간은 이번 경매주간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무거운 장면이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경매장에서 이름만 등장해도 경쟁이 붙던 작가였다. 추정가 하단인 80만 달러에조차 도달하지 못한 유찰은 단순한 한 건의 실패로 보이지 않는다. 시장 구조가 변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초단기 플리핑에 기대던 자본이 물러서고 있다. 빠르게 샀다가 빠르게 파는 방식이 통하지 않기 시작했다. 경매장의 공기까지 달라졌다. 필립스는 오랫동안 신진 작가들의 고가 기록을 만들어내며 시장의 속도를 앞당기는 상징적인 무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속도가 꺼졌다. 무리하게 값이 오른 작품은 더 이상 경쟁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시장이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격은 과연 개연성이 있었는가. 박물관이나 연구자가 논의할 만큼 예술사적 의미가 충분한가. 공급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다음 거래는 어디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들에 얹힌 가격은 지금 차례대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단기 플리핑 열풍은 코로나19 기간에 정점을 찍었다.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미술품이 새로운 대체투자로 소비되던 시기였다. 주식, 암호화폐, 벤처투자가 한꺼번에 과열되던 순간, 미술 시장에도 속도전의 논리가 이식되었다. 신진 작가 한 명이 등장하면 가격이 순식간에 수십 배 뛰었고, 개인전 한 번이면 경매장에서 7자리 가격이 형성되었다. 시대의 에너지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끝났다.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로 자본 흐름이 바뀌었다. 글로벌 컬렉터는 예술적 진정성과 시장 내구성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이 변화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파도주티미 유찰은 시장의 새로운 기준이 무엇인지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단기적 열광이나 SNS 화제성만으로 옥션 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신진 작가에 대한 무조건적 띄우기가 주춤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제도적 검증이 비어 있었다. 박물관, 학예인, 평론가, 장기 컬렉터의 평가가 누적되지 않은 가격 상승은 결국 기초 없이 부풀린 거품과 같다. 둘째, 공급 조절이 미흡했다. 신진 작가 작품이 동시에 시장에 과하게 풀리면 희소성이 사라지고 가격 방어력이 급감한다. 셋째, 큐레이션 서사가 빈약했다. 작품이 왜 지금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소비자 반응에만 기대고, 예술사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이름은 쉽게 흔들린다. 결국 시장은 앞서가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기반을 검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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