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버랜드가 남긴 노동과 힙합의 상징은 지워지고 과시와 소유의 위계만 남았다
[KtN 임우경기자]루이비통 남성복을 총괄하는 퍼렐 윌리엄스의 손에서 탄생한 18K 골드 팀버랜드 부츠가 도쿄 중심 상업 지역 한 매장의 진열 공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VIP 구역에서 투명 케이스 안에 고정된 모습은 더 이상 누군가의 발을 위한 신발이 아니라 전시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제품은 전 세계 50족으로 수량이 제한되며, 판매가는 켤레당 약 8만5천 달러. 팀버랜드 본래의 역사나 실용적 목적을 알지 못한 채 금빛 표면과 루이비통의 권위만을 바라보고 가격을 논하는 시장이 완성되었다. 고급 이탈리아산 가죽이 외피를 뒤덮고 루이비통 모노그램이 가죽의 숨결을 일정한 간격으로 덮은 디자인은 도시를 걸으며 현실의 흔적을 남기던 팀버랜드의 의미를 소각한다. 더 이상 마찰이나 긁힘이 미덕이 아니다. 그 어떤 오염도 허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완결된 사물이 되어 존재하고 있다.
18K 골드로 제작된 하드웨어는 기능성을 보완하는 부품이 아니라 자산 가치를 상징하는 구성품이다. 텅과 측면에서 금속 부위가 존재감을 발산하고, 트렁크형 패키징은 이동을 위한 장비가 아니라 안전한 자산 보관을 위한 보호 장치로 설계됐다. 루이비통이 자랑하는 트렁크 제작 기술이 활용된 케이스는 여행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소유와 비소유를 나누는 경계로 작동한다. 트렁크 속 양질의 패딩과 안전 잠금장치는 워크부츠의 거친 출발선과 완전히 결별했다. 팀버랜드의 정체성은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과 금빛 장신구에 눌려 더 이상 드러날 자리를 갖지 못한다.
팀버랜드 6인치 부츠는 한때 북미 건설 노동자의 생존과 직결된 장비였다. 방수 기능과 발목을 보호하는 구조는 땀과 흙 위에서 힘겹게 움직이는 노동자의 몸을 지키기 위한 기술이었다. 이후 뉴욕 힙합에서 팀버랜드는 현실에 뿌리를 둔 저항과 자부심의 상징으로 확장되었다. 나스가 스토리텔링으로 동네의 울분을 토해낼 때, 팀버랜드는 무대 위의 장식이 아니었다. 우탱클랜이 새로운 사운드를 들이밀며 도시의 정체성을 새로 정의할 때, 팀버랜드는 발 아래에서 그들을 떠받쳤다. 사회적 인정에서 배제된 이들이 스스로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때 팀버랜드는 선택과 선언의 결과였다. 생존의 신발이 문화적 주도권을 쥔 상징이 된 과정은 도시 사회학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루이비통의 전략은 이 역사적 무게를 고급 소비 계층의 소유물로 봉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용성과 현실성이 사라진 자리에 희소성과 금액이 들어왔다. 원래 팀버랜드를 신어온 집단은 이 제품의 주요 고객층이 아니다. 노동과 힙합의 서사를 직접 경험한 계층이 개입하지 못할 만큼 높은 가격 장벽이 세워졌다. 문화의 기원은 철저히 삭제되고, 패션 산업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서사만 덧씌워진다. 더 이상 거리의 언어가 아니다. 권력이 패션을 통해 스스로의 위계를 강화하는 장면이다.
루이비통과 팀버랜드 모회사 VF가 기대하는 효과는 단순 매출이 아니라 브랜드 헤게모니 확보다. 초고가 한정판 모델이 존재하면 같은 협업 컬렉션의 2천~3천 달러대 일반 모델이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명품’으로 인식된다. 이는 고급 소비 장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장 크기를 키우는 방식이다. 수량 50이라는 숫자는 실물 세계의 존재감을 제한하는 동시에 정보 세계에서는 압도적인 관심을 만든다. 사진 한 장, 진열 영상 몇 초, 이를 둘러싼 시장 담론만으로도 제품은 실물을 보지 못한 다수에게 깊은 각인을 남긴다. 노동의 신발이 정보 자산이자 투기 자산의 성격으로 바뀌는 과정, 문화 자원을 독점하고 금융화하는 자본의 방식이 반복된다.
도쿄에서 진열된 부츠는 길 위를 걷기 위해 만든 신발이 아니다. 가치 측정의 단위는 아웃솔의 마모나 발의 편안함이 아니라 트렁크의 키 값과 번호표, 그리고 소유자가 누구인지로 바뀌었다. 도시 현실과 동떨어진 상징이 된 순간, 팀버랜드는 누군가의 일상을 보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일상을 압도하는 사치품으로 전환되었다. 도시 문화가 가진 생동감과 서사의 역사성을 자본이 소유 가능한 권리로 축소하는 과정은 패션 산업의 폭력 그 자체다.
퍼렐 윌리엄스는 스트리트·힙합 감성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온 인물이지만, 메종의 권력을 손에 넣은 뒤 선택한 전략은 거리와의 결합이 아니라 거리와의 분리를 강화하는 방향에 가깝다. 대중 문화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상층부 권력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으로 편입시키며 문화의 원천과 소비자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팀버랜드를 신어온 이들의 목소리는 이 제품에서 배제되었고, 그 빈자리를 자본이 점유했다. 상징의 주인이 바뀌는 장면이다.
가격과 희소성이 곧 권위라면, 패션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 숫자를 위해 존재하는 산업이 된다. 힙합이 부여한 의미는 공장에서 찍어낸 금속 장치와 가죽 장식으로 대체되었다. 팀버랜드가 보유한 정체성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징 자본으로만 평가된다. 패턴과 골드가 덮고 있는 합성된 화려함 이면에는 노동자의 발과 거리 청년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팀버랜드는 도시의 흙과 마찰하던 신발이었다. 지금은 진열대 위에서 수집가의 자본력을 입증하는 상품으로 머물고 있다. 누구의 발도 닿지 않은 완벽한 상태로 존재할수록 가치가 오른다는 관념은 패션을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부의 증거로 만든다. 팀버랜드가 걸어온 길을 부정한 채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는 초사치 전략 앞에서 패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패션은 현실을 담아야 한다는 원칙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 현실과 단절된 부츠는 노동과 음악, 거리의 목소리에서 출발한 상징을 고립시키며 새로운 계급의 트로피로 바꿔놓았다. 도쿄의 한 진열장에서 확인되는 장면은 패션이 숭배하는 대상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이 아니라 가격표, 문화가 아니라 희소성, 연대가 아니라 배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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