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주년 모델로 본 브랜드 전략…실적 부진과 에너지 전환 속 피아지오의 선택
[KtN 임우경기자]2026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베스파 설립 8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피아지오 그룹은 이를 앞두고 1946년 초기 모델의 파스텔 그린 색상을 복원한 ‘베스파 80th’ 에디션을 공개했다. 프리마베라와 GTS를 기반으로 제작된 이번 기념 모델은 80주년 전용 배지와 ‘Est. 1946’ 각인 휠을 적용했으나, 기술적 측면에서는 전동화 청사진 대신 기존 내연기관 제품의 시각적 유산을 재차 강조하는 방식을 취했다.
공개된 베스파 80th의 외형은 전동화 시대 이동수단이 표방하는 유선형이나 직선형 조형 언어와 대조를 이룬다. 둥근 헤드램프와 광폭 전면 실드, 바디 안쪽으로 수납된 기계 장치 등 80년 전부터 유지된 고유 실루엣을 보존했다. 이는 기구적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운전자의 신체와 직접 맞닿는 바닥면, 안장, 실드의 물리적 형태를 유지함으로써 브랜드 식별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러한 선택은 이륜차 업계의 전동화 속도와 대비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전기 이륜·삼륜차 판매량은 1,000만 대를 기록하며 전체 판매 비중의 15%를 차지했다. 도로 교통수단 중 전동화가 가장 가파르게 진행되는 영역임에도, 베스파는 배터리와 소프트웨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기존 차체 구조 내에 구동계를 배치하는 보수적 접근을 유지하고 있다. 4.2kWh 배터리를 탑재해 최대 80km를 주행하는 프리마베라 테크 일렉트리카 70 역시 기존 내연기관 모델의 형태를 계승한다.
디자인의 연속성은 브랜드 자산 보호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나,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는 성장의 제약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피아지오 그룹의 2025년 연결 매출은 15억 190만 유로로 전년 대비 11.7% 감소했으며, 순이익은 3,400만 유로를 기록해 49.4% 급락했다. 전 세계 판매량 또한 44만 5,200대로 전년 대비 7.6% 줄었다. 그룹 측은 유럽과 미국 시장의 수요 둔화 및 아시아·태평양 프리미엄 시장의 위축을 주요 실적 부진 요인으로 꼽았다.
유럽의 EURO 5+ 규제 도입도 경영 부담을 더했다. 규제 시행 전인 2024년 4분기에 등록 물량이 집중되면서 2025년 신규 수요가 상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피아지오 그룹은 2025년 기준 유럽 스쿠터 시장 점유율 17.5%, 북미 34.7%를 확보하며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단순한 브랜드 인지도만으로는 시장 수요 감소세를 타개하기 어려운 국면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피아지오 그룹은 전동화 투자를 지속하며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2025년 전기 모터 생산 개시에 따른 설비 감가상각이 발생했으며, 상용차 부문에서는 유럽 그린딜에 맞춘 전기 4륜차 ‘포터 NPE’를 출시했다. 동시에 베스파 브랜드 내에서는 310cc 신형 엔진을 장착한 그란투리스모를 선보이는 등 고배기량 내연기관 시장도 병행하고 있다. 기술 전환의 충격을 헤리티지 상품군으로 완충하는 이원화 전략이다.
결국 베스파 80th가 제시한 디자인은 제품 정체성의 영속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동화가 차량의 외형을 규격화하는 추세 속에서 80년간 축적된 시각적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프리미엄 가격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과 탄소 규제, 도심 진입 제한 등 실용적 제약이 강화되는 환경에서 디자인 자산이 기술적 열세를 지속해서 보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베스파 80주년 기념 모델은 미래를 향한 파격적인 선언보다 안정적인 과거의 복원을 택했다. 1946년의 색상을 입은 차체는 브랜드의 생존력을 증명하는 상징물이나, 기술 전환의 속도와 비교하면 신중한 방어 기제로 읽힌다. 전동화 시대의 스쿠터가 감성적 기호를 넘어 실무적 주행 장비로서 평가받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베스파의 고유한 얼굴이 기술적 진보와 어떤 속도로 결합할지가 향후 시장 안착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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