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포용금융 속도전…23년 묵은 채권 추심 끊고 공공기관 잔여 채권 정리로 확장
[KtN 김 규운기자]지난 12일 열린 제21회 국무회의 겸 제8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장기 연체채권 문제가 민생 현안으로 다뤄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를 언급하며 2003년 카드대란 당시 발생한 채무가 왜 지금까지 서민 채무조정 정책의 사각지대에 남아 있었는지를 금융위원장에게 물었다. 금융기관이 정부 인허가를 바탕으로 영업하는 만큼 공적 규제와 부담도 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대통령실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교복가격 안정화, 복지안전망 강화, 개인정보 관리체계, 여름철 자연재난 대책, 2027년 예산 편성 방향이 함께 논의됐다. 이 대통령은 소비쿠폰이 지역 소상공인 매출을 늘린 효과를 언급하며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했고, 폭염에 따른 노동자 산재 사망 방지와 위기가구 지원 대책도 주문했다. 장기 연체채권 문제는 취약계층 보호와 금융기관의 공적 책임을 다루는 흐름 속에서 제기됐다.
상록수는 2003년 카드대란 직후 카드사들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 배드뱅크다. 설립 당시에는 채무자의 재기를 지원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20년 넘게 장기 연체채권 추심과 회수 활동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 대통령은 상록수 사례를 두고 “원시적 약탈금융”이라고 비판했고, 금융위원회는 곧바로 관련 금융사들을 소집해 채권 이관 협의에 들어갔다.
금융권은 상록수가 보유한 장기 연체채권을 새도약기금과 한국자산관리공사, 캠코에 넘기는 방향으로 정리 절차를 밟고 있다. 대상 채권은 약 8,450억 원 규모로, 채무자는 약 11만 명으로 알려졌다. 채권 이관이 마무리되면 해당 채무자들에 대한 장기 추심은 중단된다. 대통령의 공개 문제 제기 이후 금융당국과 금융사가 곧바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상록수 사태는 이재명 정부 포용금융 정책의 집행 속도를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새도약기금은 이재명 정부가 장기 연체채권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 제도다. 대상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 개인·개인사업자 무담보 채권이다. 기금이 채권을 일괄 매입하면 추심은 즉시 중단되고, 이후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소각 또는 채무조정 절차가 진행된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취약계층 채권은 별도 상환능력 심사 없이 우선 소각 대상에 오른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새도약기금 출범 당시 전체 매입 규모를 16조4,000억 원, 수혜 인원을 113만4,000명으로 추산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10월 30일 새도약기금이 캠코와 국민행복기금으로부터 5조4,000억 원, 34만 명 규모의 장기 연체채권을 1차 매입했다고 밝혔다. 캠코 보유분 3조7,000억 원, 국민행복기금 보유분 1조7,000억 원이 첫 매입 대상이었다.
캠코는 올해 3월 말 기준 새도약기금이 8조2,500억 원 규모의 장기 연체채권을 인수했고, 취약계층 채권 1조8,000억 원어치를 우선 소각했다고 밝혔다. 채권 매입 즉시 추심을 중단하고,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는 소각하며, 일부 상환 여력이 있는 채무자는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기존 채권 회수 중심 관리와 달리 채무자의 경제활동 복귀를 제도 목표로 삼았다는 점이 다르다.
상록수 사태 이후 관심은 캠코가 보유한 잔여 장기 연체채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캠코는 새도약기금 운용의 핵심 기관이면서, 과거 부실채권 정리 과정에서 희망모아, 한마음금융, 국민행복기금 등 배드뱅크 계열 채권을 관리해온 공공기관이다. 민간 배드뱅크의 장기추심 구조가 정리 수순에 들어간 만큼, 공공기관이 보유한 초장기 연체채권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캠코가 보유한 과거 배드뱅크 채권 가운데 어떤 채권이 새도약기금으로 넘어갔고, 어떤 채권이 잔여 관리 대상으로 남았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잔여 채권의 연체 기간, 소멸시효 연장 여부, 민간 신용정보회사 위탁추심 현황, 새도약기금 이관 제외 기준도 공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민간 금융사에 공적 책임을 요구한 만큼, 공공기관인 캠코에는 더 엄격한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캠코 보유 채권 논란은 지난해 국회 자료를 통해서도 제기됐다. 2025년 4월 기준 캠코가 보유한 한마음금융·희망모아·국민행복기금 채권은 약 33만8,000명분, 5조2,970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0년 이상 연체된 초장기채권은 3조3,000억 원대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도약기금의 1차 매입 이후에도 남은 채권의 처리 기준을 둘러싼 공개 요구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캠코도 장기 보유 채권 정리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캠코는 20년 이상 연체되고 7년 이상 상환 이력이 없는 채권 가운데 새도약기금 매각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소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상은 최대 4만3,000명, 5조9,000억 원 규모로 제시됐다. 장기간 추심을 받아온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이재명 정부의 포용금융은 장기 연체채권을 단순한 채무 탕감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상환능력이 사실상 사라진 채무자는 소각으로 정리하고, 일부 상환 여력이 있는 채무자는 조정 절차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채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심사하는 장치를 두면서도, 회수 가능성이 낮은 초장기 채권은 사회적으로 정리하는 방향을 택했다. 도덕적 해이 논란을 줄이면서 장기추심의 굴레를 끊으려는 설계다.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공적 재원 투입 기준, 금융기관 손실 처리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15년, 20년 넘게 회수되지 않은 소액 무담보 채권을 계속 추심하는 방식은 금융질서 유지보다 사회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 채무자는 취업, 예금 형성, 주거 마련, 가족관계 회복 과정에서 다시 추심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정상적인 경제활동 복귀가 늦어지면 복지와 행정 비용도 함께 늘어난다.
새도약기금은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설계됐다. 채권을 매입해 추심을 멈추고, 상환능력이 없는 경우 소각하며, 필요한 경우 금융·고용·복지 지원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소비쿠폰이 지역 상권의 단기 회복을 겨냥한 정책이라면, 새도약기금은 장기간 금융 시스템 밖에 남아 있던 취약계층을 다시 경제 주체로 복귀시키는 정책에 가깝다.
상록수 채권 이관은 민간 금융권의 오래된 추심 관행을 정리하는 출발점이다. 다음 단계는 캠코 보유 잔여 채권의 실태와 처리 기준 공개다. 캠코가 초장기 연체채권을 회수 실적과 수익 관리 대상으로 계속 남겨둘지, 소각·종결·재기 지원 중심으로 전환할지는 새도약기금의 완성도를 가를 변수다.
이재명 정부가 상록수 사태에서 보여준 속도와 기준을 공공기관 보유 채권 정리로 이어간다면, 새도약기금은 단순한 채무조정 사업을 넘어 장기추심 구조를 끝내는 포용금융 정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캠코의 잔여 채권 공개와 초장기 추심 정리는 그 다음 단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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