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화장품 색조팀·경북과학대 향장공업과·숙명여대 원격대학원이 만든 전문인력의 첫 구조

1988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김주덕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의 첫 출발지는 대덕의 럭키 중앙연구소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88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김주덕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의 첫 출발지는 대덕의 럭키 중앙연구소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1988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김주덕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의 첫 출발지는 대덕의 럭키 중앙연구소였다. 전공은 화학공학이었다. 석사 논문 제목은 ‘Emulsion형 액체막에 의한 Toluene과 Heptane 혼합물의 분리’. 회사는 논문 제목 속 ‘에멀전’을 화장품 제형 연구와 연결했고, 배치 부서는 석유화학 연구 부서가 아니라 화장품연구소 색조팀이었다. 한국 화장품 교육의 한 흐름은 학과와 대학원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연구소의 인사 배치와 제품 개발 현장에서 먼저 시작됐다.

1980년대 말 화장품 연구직은 지금의 K-뷰티와 거리가 멀었다. 김 석좌교수는 훗날 고향 친지와 지인에게 화장품연구소 근무 사실을 말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화장품은 수출 효자 품목도, 국가 브랜드 산업도 아니었다. 화학공학 전공자가 연구자로 내세우기에는 사회적 인식도 높지 않았다. K-뷰티 교육의 출발점에는 화려한 산업 구호보다 화장품 연구를 직업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시대 분위기가 먼저 놓여 있었다.

럭키화장품 연구소의 규모도 지금의 산업 이미지와는 달랐다. 김 석좌교수가 입사하던 시기 연구소는 기초 연구 인력 20여 명, 색조 연구 인력 17명 정도였다. 색조팀에서는 파우더와 아이 메이크업 제품 연구가 주요 업무였다. 1990년 연구 개발에 참여한 ‘미네르바 트윈케익’은 한 해 150만 개가 팔렸다. 제품 하나가 영업 현장의 자신감과 회사의 시장 지위에 영향을 주는 경험은 화장품을 생활용품의 부속품이 아니라 독립 산업으로 보게 한 계기였다.

김주덕 석좌교수가 입사하던 시기 연구소는 기초 연구 인력 20여 명, 색조 연구 인력 17명 정도였다. 색조팀에서는 파우더와 아이 메이크업 제품 연구가 주요 업무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김주덕 석좌교수가 입사하던 시기 연구소는 기초 연구 인력 20여 명, 색조 연구 인력 17명 정도였다. 색조팀에서는 파우더와 아이 메이크업 제품 연구가 주요 업무였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화장품은 원료, 제형, 사용감, 품질 안정성, 소비자 반응이 한 제품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는 분야였다. 색조 제품 하나에도 화학적 안정성, 피부 위 사용감, 유통 현장의 반응, 영업 조직의 체감이 함께 걸려 있었다. 연구소에서 확인한 문제는 단순했다. 제품을 만들 사람은 있었지만, 제품의 원리와 시장의 언어를 함께 이해하는 인력은 부족했다. 화장품 교육 수요는 미용 기술의 주변부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제조 현장의 빈칸에서 생겼다.

1994년 대구 동국전문대학, 현재 경북과학대학교에 향장공업과가 문을 열었다. 국내 대학에서 화장품을 독립 교육 영역으로 다룬 첫 학과였다. 김 석좌교수는 커리큘럼 자문에 참여했고, 이듬해 전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연구소에서 축적한 제품 개발 경험이 강의실로 옮겨간 시점이었다. 화장품학은 대학 안에서 완성된 이론으로 출발했다기보다, 제조 현장이 요구한 인력 양성 과정으로 대학에 들어왔다.

경북과학대 향장공업과가 가장 먼저 증명해야 했던 지표는 취업이었다. ‘국내 최초’라는 이름만으로는 산업계 신뢰를 얻기 어려웠다. 졸업생이 현장에 들어가야 학과의 존재 이유도 생겼다. 김 석좌교수는 화장품 칼럼을 쓰고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신설 학과를 알렸다. 1999년 12월에는 ‘산학협동을 위한 21세기 국내 화장품산업 발전을 위한 심포지움’을 학교에서 열었다. 1990년대 후반 향장공업과는 교내 취업률 1위 학과가 됐다.

김주덕 교수의 2000년 숙명여자대학교 원격대학원 향장산업대학원 개설은 화장품 교육의 대상을 바꿨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김주덕 교수의 2000년 숙명여자대학교 원격대학원 향장산업대학원 개설은 화장품 교육의 대상을 바꿨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취업률은 신설 학과의 생존 조건이었다. 그러나 취업률만으로 화장품학의 자리를 설명하기에는 산업의 성장 속도가 빨랐다. 제품 제조와 품질관리 인력은 필요했지만, 피부 과학, 원료 연구, 제품 개발, 안전성, 소비자 이해를 대학원 수준에서 다루는 교육은 부족했다. 현장에 사람을 보내는 교육만으로는 커지는 시장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2000년 숙명여자대학교 원격대학원 향장산업대학원 개설은 화장품 교육의 대상을 바꿨다. 첫해 입학 정원 30명 모집에 7대 1의 경쟁률이 형성됐고, 약대·의대 출신과 화장품 기업 재직자가 지원했다. 2001년 개설된 학부 교양 과목 ‘화장품과 피부’에는 1,380명이 수강했다. 화장품을 학문적으로 배우려는 수요가 미용 실무자를 넘어 연구자, 기업 재직자, 의약·피부 관련 전문직으로 번지고 있던 시기였다.

원격대학원은 당시 대학 교육에서도 낯선 방식이었다. 온라인 강의에는 대면 강의와 다른 강의록, 자료, 학습 설계가 필요했다. 김 석좌교수는 격주 토요일 오프라인 강좌를 열고 해외 원서를 활용한 세미나 수업을 병행했다. 숙명여대 원격대학원에서는 2015년 8월까지 15년 동안 석사 450명이 배출됐다. 한 학기에 논문 27편을 지도한 시기도 있었다. 기업 현장의 경험은 대학원 논문과 학위 과정으로 옮겨졌다.

숙명여대 시기의 의미는 규모보다 구성에 있었다. 기업에서 화장품을 만들고 팔던 사람들이 대학원으로 들어왔고, 의약·피부 관련 전문직도 화장품을 연구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화장품은 기능과 이미지로만 설명되는 상품이 아니었다. 피부에 닿는 물질, 효능을 주장하는 제품,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브랜드였다. 화장품 교육은 이때부터 재직자 교육과 연구 교육을 함께 품기 시작했다.

2015년 성신여자대학교로 옮긴 뒤에는 학부와 대학원을 연결한 교육 모델이 만들어졌다.  /사진=sbs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15년 성신여자대학교로 옮긴 뒤에는 학부와 대학원을 연결한 교육 모델이 만들어졌다.  /사진=sbs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15년 성신여자대학교로 옮긴 뒤에는 학부와 대학원을 연결한 교육 모델이 만들어졌다. 기존 메이크업디자인학과는 뷰티산업학과로 바뀌었고, 이듬해 뷰티융합대학원이 출범했다. 현직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과목과 내용을 조사해 커리큘럼에 반영한 점도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원료, 제형, 피부과학, 제품개발, 마케팅, 산업정책을 함께 다루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화장품 교육은 제품 제조와 미용 실무 중심에서 산업 전반을 다루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는 2025년 기준 학부와 대학원을 합쳐 외국인 학생 150여 명이 재학하는 학과로 커졌다. 아시아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남미에서도 유학생이 모였다. 한·중 합작학과 프로젝트를 통해 북경공상대학 화장품학과에 커리큘럼을 제공했고, 교수진이 현지 강의에 참여했다. 홍콩 메트로폴리탄대학교 대학원 과정으로도 교과과정 전수가 추진됐다. 다만 해외 교과과정 확산은 아직 초기 흐름이다. 현지 규제, 피부 특성, 소비문화, 산업 수요에 맞춘 조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국내 교육 모델의 단순 이전에 머물 수 있다.

숙명여대와 성신여대를 거치며 김 석좌교수는 석·박사 650여 명을 배출했다. 전임교수가 된 제자와 기업 대표·임원이 된 제자도 각각 100여 명에 이른다. SCI급 논문 20여 편, KCI 등재지 300여 편도 남겼다. 제자들과 함께 쓴 ‘화장품의 정석’은 202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기술과학 분야에 선정됐다. 숫자는 화장품 교육이 일정 규모의 인력 공급망을 형성했다는 근거다. 동시에 배출 규모만으로 교육의 질과 산업 경쟁력을 단정할 수는 없다.

김주덕 석좌교수의 교육론은 화장품을 ‘아름다움’의 언어로만 다루지 않는다. 후학에게 전한 조언에는 화장품의 원리 이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감,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는 시선, AI 기반 뷰티테크 시대의 융합 역량이 함께 들어 있다.  /사진=2026.05.27.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김주덕 석좌교수의 교육론은 화장품을 ‘아름다움’의 언어로만 다루지 않는다. 후학에게 전한 조언에는 화장품의 원리 이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감,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는 시선, AI 기반 뷰티테크 시대의 융합 역량이 함께 들어 있다.  /사진=2026.05.27.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화장품, 미용, 메디컬을 한데 묶은 한국화장품미용학회 활동도 교육과 산업을 잇는 장치였다. 2011년 창립된 학회는 연구자와 실무자, 의료·미용 분야 전문가가 화장품산업을 논의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강의실에서 만들어진 지식은 제품 개발, 피부 과학, 미용 실무, 산업정책과 만났다. 화장품학이 대학 학과 안에만 머물지 않고 산업 현장과 접점을 넓힌 배경에는 학회와 정책 자문 활동도 있었다.

김 석좌교수의 교육론은 화장품을 ‘아름다움’의 언어로만 다루지 않는다. 후학에게 전한 조언에는 화장품의 원리 이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감,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는 시선, AI 기반 뷰티테크 시대의 융합 역량이 함께 들어 있다. 성분 이름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성분이 피부 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독성학과 법규, 소비자 신뢰, 기술과 감성의 균형도 같은 교육론 안에 들어 있다.

수출 시장은 화장품 교육의 기준을 다시 바꾸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5년 11월 ‘K-뷰티 수출 성과 제고 및 확산방안’을 발표하면서 뷰티 브랜드 창작자 300개사 지원, 강한 수출 소상공인 500개 팀 발굴, K-뷰티 거점 재외공관 지정, K-뷰티·AI 협업과제 신설, 화장품 신·필수소재와 원재료 국산화 기술개발, 해외시장·규제 정보 AI 통합, K-뷰티스쿨 운영 등을 제시했다.

김주덕 석좌교수는 정부와 기업을 향한 제언에서도 규제 완화, 전략적 R&D 투자, 기술 주도형 경쟁체제 전환을 강조했다.  /사진=김주덕 facebook.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김주덕 석좌교수는 정부와 기업을 향한 제언에서도 규제 완화, 전략적 R&D 투자, 기술 주도형 경쟁체제 전환을 강조했다.  /사진=김주덕 facebook.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정책 항목이 말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K-뷰티 인력은 더 이상 제품을 빠르게 기획하고 제조하는 사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비처방의약품 규제, 유럽의 성분 안전성 요구, 동남아와 중동의 기후·문화·표시 기준, 중남미 유통 구조를 읽어야 한다. 안전성 평가, 규제 대응, 효능 검증, 원료 데이터, 현지 소비자 이해가 교육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단계다.

김 석좌교수는 정부와 기업을 향한 제언에서도 규제 완화, 전략적 R&D 투자, 기술 주도형 경쟁체제 전환을 강조했다. 기능성화장품 중심의 제한된 범주를 넘어 과학적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효능을 인정하는 체계,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 소재 개발과 중장기 효능 검증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도 함께 제시했다. 화장품 교육은 학과와 학위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규제, 안전성, 효능 검증, 원천기술 교육과 맞물릴 수밖에 없는 단계로 들어섰다.

2026년 서울사이버대학교 일반대학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김 석좌교수는 ‘화장품학특론’을 맡고 있다. 성신여대 정년퇴임 이후에도 석·박사 과정 학생 지도가 이어지고 있고, 2학기에는 제품개발론 강의를 계획하고 있다. 연구원에서 교수로, 교수에서 정책 자문과 해외 교과과정 논의로 이어진 경로는 한국 화장품 교육이 지난 30여 년 동안 넓어진 범위를 보여준다.

1990년대 화장품 교육은 취업이 되는 학과를 증명하는 일에서 출발했다. 2000년대에는 기업 재직자와 전문직이 대학원으로 들어왔고, 2010년대에는 학부와 대학원이 결합한 뷰티산업 교육 모델이 자리 잡았다. 2020년대에는 해외 교과과정, 안전성 평가 인력, AI·바이오 융합 연구, 글로벌 규제 대응이 교육의 새 기준으로 떠올랐다. 김주덕 석좌교수의 30여 년은 한국 화장품 교육이 실무 인력 양성에서 대학원 연구, 산업정책, 해외 교육 논의로 확장된 과정을 보여준다. 다음 평가는 배출 인원보다 수출 시장에서 통하는 안전성, 규제 대응, 효능 검증 전문성으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