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등 15일 국민연금에 의견서 제출…사과·해임 뒤에도 남은 내부통제 실패와 주주가치 훼손 책임
[KtN 최기형기자]6월 15일 오후 2시,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이마트와 스타벅스코리아에 대한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활동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행사가 5·18민주화운동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조롱했다는 비판을 받은 지 한 달 가까이 지나면서, 논란은 스타벅스코리아의 마케팅 사고를 넘어 이마트 이사회와 국민연금의 주주 책임으로 옮겨가고 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박종철기념사업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는 이날 서울 충정로역 인근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견서를 제출한다. 은성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 박재홍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등이 발언자로 나선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이 사회를 맡는다.
스타벅스코리아 논란은 5월 18일 앱과 온라인 스토어에 올라온 텀블러 판촉 행사에서 시작됐다. 행사명은 ‘탱크데이’였고, 홍보 문구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라는 단어가 쓰였고, ‘책상에 탁’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은폐성 해명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행사는 중단됐지만, 앱 삭제와 선불카드 환불 요구, 매장 앞 항의 행동, 불매운동은 빠르게 확산됐다.
신세계그룹은 손정현 당시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해임하고 담당 임원도 물러나게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공개 사과문에 이어 5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5·18민주화운동 유가족, 박종철 열사 유가족, 광주시민, 국민에게 사과했다. 사과와 해임은 사태 수습의 출발점이었지만, 자체 조사 결과는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의 검증 체계가 얼마나 느슨했는지를 더 분명하게 드러냈다.
신세계그룹 자체 조사에서 ‘탱크데이’ 행사는 커머스팀 기획 뒤 팀장, 담당, 본부장, 대표이사 결재를 거쳐 최종 확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마케팅 내용이 담긴 첨부파일을 열어보지 않고 승인한 사례도 확인됐다. ‘책상에 탁!’ 문구는 기존 텀블러 홍보 문구인 ‘가방에 쏙’과 운율을 맞추기 위해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추천받은 표현을 여과 없이 채택한 것으로 설명됐다. 신세계그룹은 고의로 기획했다는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의성 입증 실패가 책임 부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대표이사까지 거친 결재라인에서 5월 18일, 탱크, 책상에 탁이라는 세 요소를 아무도 걸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경영진과 내부통제 시스템의 실패에 가깝다.
스타벅스코리아가 내놓은 설명은 오히려 기업 규모와 맞지 않는 조직 운영을 드러냈다. 연매출 3조원 규모의 국내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가 역사적 기념일과 국가폭력의 기억을 건드릴 수 있는 문구를 검토하면서 CSR, 법무, 리스크 관리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생성형 AI 사용 여부는 본질이 아니다. AI가 추천한 문구라도 최종 게시 책임은 조직에 있다. AI를 썼다는 설명은 면책 사유가 아니라, 사람의 검토 없이 판촉 속도와 매출 압박을 앞세운 업무 구조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국민연금이 등장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스타벅스코리아 운영사 SCK컴퍼니는 이마트가 67.5%를 보유한 핵심 자회사다. 미국 스타벅스 본사는 2021년 한국 합작법인 지분을 매각하면서 한국 사업을 이마트와 GIC 중심의 완전 라이선스 구조로 전환했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소비자 신뢰와 실적은 이마트 기업가치와 연결된다. 스타벅스코리아가 비상장사라는 이유로 논란이 연결재무제표 밖에 머물 수 없다.
불매운동은 이미 재무 변수로 반영됐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스타벅스코리아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고, 증권가 일부는 불매운동에 따른 외형 감소와 수익성 둔화를 반영해 이마트 목표주가를 낮췄다. 국민연금은 이마트의 주요 주주다. 기자회견 주최 측은 2025년 이마트 사업보고서 기준 국민연금 지분을 7.89%로 제시했다. 최근 보도에서는 국민연금이 올해 이마트 주식을 추가 취득해 지분율이 8.94%로 높아졌다는 내용도 나왔다. 기준 시점은 다르지만, 국민연금이 정용진 회장에 이어 이마트 2대 주주라는 점은 같다.
국민연금의 침묵은 단순한 관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은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해 기금을 운용하고, 필요할 경우 비공개 대화, 중점관리기업 선정, 공개서한, 주주제안 등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스타벅스코리아 사태는 역사 인식 논란이자 소비자 신뢰 훼손이고, 이마트 연결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회사 리스크이며, 경영진 결재와 내부통제 실패가 드러난 지배구조 사안이다.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 활동을 언급하지 않을 이유보다, 지금 움직여야 할 이유가 더 많다.
정용진 회장의 책임도 사과문으로 닫히기 어렵다. 2022년 ‘멸공’ 발언 논란 당시 이마트와 스타벅스 등 신세계 계열사를 향한 불매 움직임이 벌어졌다. 총수 개인의 정치적 발언이 소비자 반발과 주가 부담으로 번지는 흐름을 신세계그룹은 이미 경험했다. 이번 사태는 총수 개인 SNS가 아니라 스타벅스코리아 공식 마케팅 시스템에서 발생했다. 과거에는 총수 리스크가 계열사 브랜드를 끌고 들어갔고, 이번에는 계열사 내부통제 실패가 총수 책임론과 결합했다. 반복되는 리스크를 막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같은 그룹 이름 아래 두 차례의 불매 논란이 같은 방식으로 누적되기 어렵다.
미국 스타벅스 본사도 책임선 밖에만 서 있을 수 없다. 미국 본사는 한국 사업 지분을 팔고 완전 라이선스 구조로 전환했지만, 스타벅스 상표와 글로벌 브랜드 신뢰는 여전히 본사의 핵심 자산이다. 한국 운영은 이마트가 맡고, 브랜드 사용과 글로벌 운영 기준은 미국 본사와 연결된다. Reuters 보도에서 미국 본사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조사와 대응 상황을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본사가 한국 법인을 직접 지휘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지만, 글로벌 브랜드가 현지 운영사의 역사 인식 실패로 타격을 입었을 때 라이선스 모델의 검수 책임과 사후 통제 기준은 별도로 따져야 한다.
시장에서는 미국 본사의 콜옵션 조항도 거론됐다. 이마트 귀책으로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될 경우 미국 본사가 이마트 보유 지분을 일정 조건으로 되살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계약서 원문과 실제 발동 요건은 공개 확인이 제한돼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콜옵션 보도 자체가 이마트 주주에게 중요한 신호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이마트가 보유한 소비재 자산 가운데 현금창출력과 브랜드 파급력이 큰 축이다. 브랜드 훼손이 장기화하면 단순한 불매 매출 감소를 넘어 지분가치와 라이선스 협상력까지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비판은 사안을 기업 내부 문제에서 공적 책임 논의로 끌어올렸다. 대통령은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 행사를 강하게 비판하고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민주주의 역사를 가볍게 여기거나 상업적 소재로 소비하는 기업의 상품을 정부 행사 경품으로 제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보훈부 장관도 5·18민주화운동 관련 허위사실 유포 모니터링 강화를 언급했다. 사기업의 판촉 문구가 대통령 메시지, 정부 부처 구매 관행, 보훈 행정 영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정부 대응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공권력이 특정 기업 상품을 배제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방식은 기업 활동에 대한 행정적 압박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논의는 정부의 정치적 압박과 다른 층위에 놓인다. 국민연금은 이마트 주식을 보유한 장기 투자자이고,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다. 국민연금이 이마트에 비공개 대화를 요구하는 일은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행위가 아니라, 투자 대상 기업의 내부통제와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을 확인하는 주주권 행사다.
15일 기자회견의 무게는 기자회견 장소에서도 드러난다. 스타벅스 매장 앞 항의나 신세계 본사 앞 규탄이 아니라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 앞이다. 시민사회는 이제 이마트와 스타벅스코리아만이 아니라, 이마트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책임을 겨냥하고 있다. 기업이 사과하고 대표를 해임했으니 사안이 끝났다는 논리와, 주주가치 훼손과 내부통제 실패가 확인된 이상 기관투자자가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가 맞붙는 국면이다.
국민연금이 이마트와 비공개 대화에 착수할 경우 확인해야 할 항목은 분명하다. 스타벅스코리아 행사 승인 과정에서 어떤 검증 장치가 빠졌는지, 이마트 이사회가 핵심 자회사 리스크를 어떤 경로로 보고받았는지, 대표와 임원 해임 뒤 내부통제 절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역사·인권 감수성 검토가 마케팅 절차에 어떻게 반영될지, 미국 본사와의 라이선스 협의에서 어떤 요구가 오갔는지, 불매운동이 매출과 기업가치에 미친 영향을 주주에게 어떻게 설명할지가 우선 점검 대상이다.
스타벅스코리아 사태는 한 문구의 실패로 축소될 수 없다. 5월 18일이라는 날짜, ‘탱크데이’라는 행사명,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 대표이사까지 이어진 결재, AI 추천 문구의 무검증 채택, 법무·CSR 검토 부재, 매출 하락, 미국 본사 보고, 국민연금 보유 지분까지 한 줄로 이어졌다. 이마트와 스타벅스코리아가 이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면 사과는 사과문으로만 남는다.
국민연금은 이마트의 주가가 떨어진 뒤에야 움직이는 사후 감시자가 아니라, 장기 주주가치 훼손을 막아야 하는 수탁자다. 15일 제출될 의견서는 스타벅스코리아의 사과 진정성을 다시 묻는 문서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스스로 세운 수탁자 책임 원칙을 실제 기업 리스크 앞에서 적용할 수 있는지 가르는 요구다. 이마트가 자회사 내부통제와 총수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국민연금이 2대 주주 지위에도 원칙론 뒤에 머문다면 ‘탱크데이’ 논란은 스타벅스코리아의 마케팅 실패가 아니라 국민 노후자금이 떠안은 지배구조 리스크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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