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세 18년 차 유럽 식탁, 폴란드 돈육이 서울에서 새 길을 연다
EU 'Good Food–Good Life' 서울 미디어 행사… 안전·복지 서사로 한국 소비자와 접점 넓혀
[KtN 임우경기자] 2023년 9월, 폴란드산 돼지고기가 한국 시장에서 다시 통관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한-EU 자유무역협정으로 관세 장벽이 사라진 지 8년째 되는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6년 6월 11일, 유럽연합(EU)이 공동 재원을 댄 농식품 판촉 캠페인 'EU Good Food – Good Life'가 서울에서 미디어 행사를 열었다. 폴란드산 소고기·돼지고기와 그리스산 키위·황도복숭아 통조림을 한국 언론 앞에 내놓는 자리였다.
캠페인은 폴란드 육류산업생산자협회(UPEMI)와 그리스 이마티아 농업협동조합연합(ASIAC)이 운영한다. 2024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한국과 베트남을 겨냥한 정보·판촉 프로그램으로, 냉동 소고기와 신선·냉장·냉동 돼지고기, 가공육, 황도복숭아 통조림, 신선 키위를 대상 품목으로 한다. 행사에는 그리스·폴란드 대사관 관계자와 영양 전문가가 참여했고, 만찬 시연이 곁들여졌다.
캠페인이 전면에 내세운 것은 품질과 안전이다. 무성장호르몬·무항생제 사육, 추적관리 시스템, 동물복지, 지속가능성이 메시지의 골자다. 이 메시지가 놓인 경제적 토대는 한국과 유럽을 잇는 무관세 통로다.
행사 참가자는 캠페인을 운영하는 두 단체와 양국 외교 채널, 영양 전문가로 구성됐다. 폴란드 측에서는 캠페인 주관 기관인 폴란드 육류산업생산자협회(UPEMI) 대표가, 그리스 측에서는 공동 운영 기관인 이마티아 농업협동조합연합(ASIAC) 대표가 각각 자국 농식품 부문의 역할과 대상 품목의 특성, 공급망 투명성을 설명했다.
행사에는 주한 폴란드 대사관과 주한 그리스 대사관 관계자가 참석해 유럽 식문화와 한국 시장을 잇는 의미를 짚었고, 초청된 영양 전문가가 품목별 영양가치와 품질 보증·추적관리·지속가능성을 발표했다. 참가 언론인에게는 캠페인 관계자·전문가에게 직접 질문하고 배경 정보를 취재할 기회가 주어졌으며, 행사는 대상 품목을 활용한 만찬 시연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캠페인이 거쳐 온 행보를 보면 이번 행사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202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EU 농식품 행사에서는 우고 아스투토(Ugo Astuto) 주한 EU 대사가 환영사를 했고, EU 한국대표부 통상담당관이 EU의 통합 농식품 체계와 품질·진정성·지속가능성·안전을 뒷받침하는 공동 기준을 소개했다. 미디어와 수입·외식 업계를 함께 겨냥하는 EU 농식품 행사의 구성이 이번 'Good Food – Good Life' 미디어 행사에서도 이어진 셈이다.
한-EU FTA에 따라 2015년 12월부터 대한국 수입에 부과되던 관세가 모두 폐지됐고, 한국과 폴란드 교역은 이후 더욱 활성화됐다. 폴란드 측은 이 통로를 적극 활용해 왔다. 대한국 무역 역조를 보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23년 9월부터 폴란드산 돼지고기 수입이 재개됐다. 무관세라는 토대 위에서 폴란드가 품질 서사를 앞세워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구도다.
수출입 흐름 자체가 캠페인에 우호적이다. 2025년 1~10월 한국 농식품 수출에서 증가율이 높은 권역은 중동(20.4%), 유럽·영국(14.8%), 북미(13.9%) 순이었다. 한국과 유럽 사이 식품 교역의 양방향 통로가 함께 넓어지는 국면이다. 한쪽으로 K-푸드가 유럽으로 향하는 동안, 반대편에서 유럽산 농식품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교차 흐름은 양국 식문화 교류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캠페인이 기대는 동물복지·안전 서사는 한국 소비자의 실제 구매 변화와 정확히 맞물린다. 2026 푸드 트렌드 분석에서 일반 신선란 구매는 감소한 반면, 동물복지란 구매금액은 38.6%, 유정란은 33.2% 증가했다. 육체적 건강을 넘어 사회적·환경적 건강까지 고려하는 웰니스의 방향으로 소비가 옮겨가고 있다. 사육 방식과 생산 기준을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흐름은, 무항생제·추적관리를 앞세운 유럽산 육류에 분명한 접점을 만든다.
생산국의 변화도 같은 방향이다. 2020년 폴란드 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밀집 사육이 동물에게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동물 복지 인식이 높아지며 소비 패턴이 변하고 있다. 생산국과 소비국이 같은 가치를 공유할 때 캠페인 메시지의 설득력은 커진다. 폴란드산 적색육이 '안전하고 책임 있게 길러진 단백질'이라는 자리를 한국 시장에서 새로 만들 여지가 여기에 있다.
품질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이미 형성돼 있다. 유럽산 냉동 전지는 미국·캐나다산보다 높은 kg당 4.30~4.80달러대 오퍼가격을 유지해 왔고, 국내 시세도 kg당 5천 원 초중반대를 이어갔다. 가격이 높다는 것은 시장이 유럽산을 상위 품질군으로 인식해 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캠페인은 이 인식을 폴란드라는 구체적 원산지로 확장하는 작업을 시작한 셈이다.
미디어 사전 행사부터 영양 전문가 발표, 만찬 시연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인지에서 경험으로 연결하는 합리적 설계다. 대사관 참여로 국가 차원의 신뢰를 더한 점도, 원산지 인지도를 새로 쌓아야 하는 폴란드·그리스산에 유효한 전략이다. 인지를 실제 매대 구매로 잇는 유통 입점과 조리 제안이 후속 단계에서 보강된다면, 3년 캠페인의 효과는 한층 단단해질 수 있다.
소비 흐름 가운데 가격을 따지는 경향이 함께 나타나는 점은 캠페인이 고려할 변수다. 2025년 1~7월 와인 수입액은 전년 대비 6.9% 감소했으나 수입량은 13.2% 증가하며, 가성비 품목의 비중이 확대됐다. 수입 식품 시장이 양극화되는 국면에서, 유럽산 육류는 '값을 치를 만한 품질'이라는 근거를 소비자가 직접 확인하도록 만드는 데 캠페인의 무게를 둘 수 있다. 안전·복지·추적관리라는 메시지가 바로 그 근거다.
캠페인은 EU 공동 재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단기 매출보다 3년에 걸친 이미지 자산 축적을 목표로 한다. 관건은 캠페인이 끝나는 2027년 이후 자생적 수요로 이어지느냐다. 한-EU FTA의 무관세 구조가 가격 경쟁력의 토대를 제공하고, 동물복지·안전을 중시하는 소비 흐름이 뒷받침되는 만큼, 폴란드산이 한국 시장에서 새로운 자리를 확보할 조건은 갖춰져 있다. 그 성과는 향후 수입 통계가 보여줄 몫이다. 캠페인은 2027년까지 한국과 베트남에서 후속 행사를 이어간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