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아크릴·자연 소재로 읽는 컨템포러리 회화의 검토 지점
[KtN 박준식기자]박희열(Hee Yeol, Park)의 회화는 캔버스와 아크릴, 산과 숲, 물가와 설경, 인물과 새, 불상과 집이라는 비교적 익숙한 요소 위에 서 있다. 설치, 영상, 디지털 이미지처럼 매체의 경계를 흔드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자연을 감정의 색으로 바꾸고, 풍경을 기억의 구조로 다시 세우는 방식에서 동시대 회화와 만나는 대목이 생긴다.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풍경은 더 이상 장소의 묘사로만 읽히지 않는다. 도시화, 이동, 고립, 회복, 생태 감각, 개인의 기억이 겹치면서 풍경은 외부 세계의 기록이자 내면의 압력을 담는 형식이 됐다. 박희열의 작품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데 머물지 않는다. 초록 숲은 생명감의 밀도로 쌓이고, 붉은 하늘은 감정의 온도로 변하며, 푸른 설경은 정지된 시간을 품는다.
‘The Mystery Nature’는 박희열 회화가 전통적 풍경 묘사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낸다. 붉은 태양과 초록 산, 풀숲이 결합하면서 자연은 고요한 배경보다 에너지가 쌓인 공간으로 바뀐다. 산과 수풀은 지형의 정확성보다 색채의 농도로 읽힌다. 자연은 관찰 대상이면서 동시에 감정의 표면이 된다. 전통 산수의 여백이나 묵색의 절제와 다른 길이다.
‘Ambition’은 자연과 도시가 함께 놓인 작품이다. 붉은 하늘 아래 건축물의 윤곽과 식생이 겹친다. 도시는 세밀한 구조로 묘사되기보다 어두운 실루엣처럼 남고, 식생은 초록의 밀도로 앞선다. 제목이 가리키는 욕망의 정서는 붉은 하늘과 맞물려 강하게 읽힌다. 자연과 문명이 균형 있게 대립한다기보다, 붉은색이 도시와 식생을 같은 긴장 안에 묶는 구성이다.
‘Winter Sapporo’는 다른 방향에서 박희열 회화의 현재성을 만든다. 삿포로라는 지명은 작품의 출발점이지만, 작품을 붙잡는 것은 도시 정보가 아니라 푸른 설경과 달빛의 정지감이다. 눈 덮인 자연은 흰색의 공백으로 남지 않고 청색 계열의 감정으로 채워진다. 장소는 여행지의 기록보다 기억 속 겨울의 온도로 바뀐다. 동시대 풍경 회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심리적 장소성도 이 대목에서 읽힌다.
‘A Museum Pond’는 연못과 바위, 꽃과 수풀을 통해 자연의 작은 단위를 다룬다. 거대한 산세나 넓은 들판 대신 물가의 응집된 구조가 앞선다. 물은 시선을 낮추고, 바위는 구성의 무게를 붙잡으며, 꽃과 풀은 정지된 풍경 안에 작은 움직임을 만든다. 자연은 장대한 경관보다 여러 요소가 밀착한 장소로 제시된다. 박희열의 풍경은 넓게 펼쳐지는 방식보다 색과 대상이 촘촘히 쌓이는 방식에 가깝다.
‘Namsan Buddist Heart’는 자연 회화 안에 정신적 상징을 끌어들인다. 불상, 바위, 숲, 붉은 하늘이 결합하면서 풍경은 사유의 공간으로 바뀐다. 불상은 작품의 정적인 중심이 되고, 바위는 주변의 무게를 만든다. 다만 종교적 의미를 작가의 신앙이나 특정 의도로 단정할 수는 없다. 작품 안에서 확인되는 것은 자연과 상징물이 결합하며 관람자의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는 구조다.
‘Thought’와 ‘A Moment of Serenity’ 같은 인물 작품은 박희열 회화가 자연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인물은 특정 개인의 서사를 세밀하게 설명하기보다 정지된 감정의 상태로 놓인다. 얼굴과 자세는 극적인 표현보다 절제를 택하고, 색채가 정서를 먼저 만든다. 동시대 회화에서 인물은 종종 정체성, 고립, 응시, 내면의 압력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박희열의 인물도 자연과 분리된 주인공보다 색채와 공간 안에서 감정을 품은 대상으로 읽힌다.
박희열 회화를 동시대 미술 안에 놓을 때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대목은 매체와 감각이다. 박희열의 작업은 매체 형식의 급진성을 앞세우지 않는다. 캔버스와 아크릴, 붓질과 색채, 자연과 인물이라는 전통적 회화 요소가 중심이다. 따라서 박희열을 컨템포러리 아트의 급진적 실험성과 같은 기준으로 읽으면 작품의 성격이 흐려진다. 박희열 회화는 새 매체보다 오래된 회화 형식 안에서 감정과 기억을 다루는 쪽에 가깝다.
한국 현대회화에서 자연은 반복적으로 호출돼 온 소재다. 산수의 전통은 자연을 정신적 질서로 다뤘고, 근현대 풍경화는 장소의 정취와 현실의 풍경을 함께 다뤘다. 색채 중심 회화와 표현적 풍경은 자연을 감정의 색으로 바꾸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박희열의 작업은 전통 산수의 비움보다 채움에 가깝고, 사실적 풍경화의 기록성보다 색채의 정서성에 무게를 둔다. 자연은 묘사의 대상보다 감정이 쌓이는 구조로 놓인다.
작품 소장처는 박희열 회화를 둘러싼 수용의 폭을 말해주는 자료다. 보령제약 사옥, 하나투자 강남센터 사옥, 서강대학교 김대건 신부관, 대유 몽베르 CC, 글로리사랑나눔 문화재단,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특별시 공관 등으로 이어지는 소장처는 박희열 작품이 기업, 교육기관, 문화 공간, 공적 공간에 걸려 왔다는 사실을 말한다. 다만 소장처가 곧 미술사적 평가나 시장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구입 시기, 소장 경위, 비평 자료, 전시 맥락이 더해져야 작가의 위치가 더 정확하게 잡힌다.
박희열 회화의 장점은 접근성에 있다. 자연 소재는 낯설지 않고, 색채는 강하며, 새와 불상, 길과 집 같은 대상은 비교적 빠르게 읽힌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복잡한 이론을 거치지 않고도 풍경의 정서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접근성은 언제나 양면을 지닌다. 의미가 너무 빠르게 도착하면 작품 안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진다. 색채와 상징이 감정의 결론을 먼저 말할 때, 풍경의 복합성은 줄어든다.
박희열 회화의 검토 지점도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 강한 색채는 작품을 각인시키지만, 색의 선명함만으로 회화적 밀도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자연을 마음의 색으로 바꾸는 방향은 일관되지만, 작품별 완성도는 색과 대상의 결합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The Mystery Nature’처럼 색채와 자연의 에너지가 맞물리는 작품에서는 풍경의 힘이 살아난다. 반대로 제목과 상징이 감정을 빠르게 설명하는 작품에서는 해석의 여백이 줄어든다.
동시대 회화는 새로움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오래된 소재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다루는 방식도 중요한 축이다. 박희열의 작품은 자연, 인물, 상징이라는 전통적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풍경을 심리적 공간으로 바꾼다. 이 대목에서 박희열 회화는 보수적 형식과 동시대 감정 사이에 놓인다. 매체의 새로움은 약하지만, 자연을 기억과 정서의 구조로 재배열하는 방식은 오늘의 관람 환경에서 읽힐 여지를 갖는다.
‘The Mystery Nature’, ‘Ambition’, ‘Winter Sapporo’, ‘A Museum Pond’, ‘Namsan Buddist Heart’, ‘Thought’는 박희열 회화의 서로 다른 방향을 나눠 보여준다. 자연의 에너지, 도시와 식생의 긴장, 겨울의 정지감, 수변의 응집, 불상과 바위의 사유, 인물의 내면이 각각 다른 층을 이룬다. 이 작품들을 함께 놓으면 박희열 회화는 단순한 자연 예찬보다 자연을 통해 감정의 구조를 반복해서 실험해 온 작업으로 읽힌다.
박희열 회화의 위치는 전통 풍경화의 연장선에만 머물지 않고, 그렇다고 컨템포러리 아트의 급진적 실험으로 곧장 옮겨가지도 않는다. 캔버스와 아크릴이라는 익숙한 형식 안에서 자연을 색과 기억의 질서로 재구성하는 회화다. 작품의 힘은 자연 소재의 친숙함, 강한 색채, 상징의 접근성에서 나오고, 작품의 부담은 같은 요소들이 해석을 빠르게 정리하는 순간에 생긴다. 박희열 회화는 전통적 자연 회화와 동시대 감정 회화 사이에서, 색과 대상이 얼마나 오래 긴장을 유지하는가에 따라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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