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물고기·원·나선, 피부의 굴곡과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쉐가예프의 조형 언어
[KtN 박준식기자] 붉은 암벽 앞에 선 인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덮여 있다. 가슴에는 여러 겹의 원이 놓였고 복부에는 날개를 펼친 새 형상이 자리 잡았다. 한쪽 팔에는 흰 점이 이어지고, 반대편 팔에는 굵은 선이 어깨에서 손목까지 내려온다. 길게 솟은 흰색 머리 장식과 검은 신체가 강한 명암을 만들고, 양손에 든 검 형태의 소품은 몸의 중앙을 수평으로 가른다.
유리스탄베크 쉐가예프(Yuristanbek Shygaev)의 바디아트에서 검은색은 피부를 감추는 색이 아니다. 몸의 외곽을 하나의 실루엣으로 압축한 뒤 흰 선과 점이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어깨와 허리, 가슴과 복부, 팔과 다리는 해부학적 구조보다 문양의 방향에 따라 다시 나뉜다.
얼굴 중앙의 흰 선은 이마에서 코와 턱을 지나 목까지 내려온다. 길게 솟은 머리 장식의 검은 문양은 얼굴의 축을 위로 연장한다. 가슴의 원은 몸의 입체감을 따라 바깥으로 퍼지고, 복부의 새 형상은 좌우로 펼쳐진 날개와 긴 몸통으로 상체의 중심을 잡는다. 허벅지의 굵은 띠와 물고기형 윤곽은 두 다리에 서로 다른 리듬을 부여한다.
쉐가예프는 사람과 새, 물고기, 삼각형과 사각형을 회화와 두루마리에서 반복해 사용했다. 사람의 윤곽 안을 다시 여러 기호로 채우고, 새와 물고기를 공기와 물, 위와 아래를 잇는 형태로 배치했다. 선과 점, 기하학적 문양으로 표면을 채우는 방식은 피부 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2007년 작가 도록에는 그래픽과 회화, 두루마리, 바디아트가 각각의 작업 영역으로 수록됐다. 몸에 그림을 입히는 행위는 회화의 부속물이 아니라 쉐가예프가 구축한 조형 체계의 한 갈래였다.
인물이 등을 돌리면 정면과 전혀 다른 구성이 펼쳐진다. 목 아래에서 시작된 흰 선은 척추를 따라 내려가고, 허리 아래에서는 크게 휘어 엉덩이의 나선으로 이어진다. 앞쪽을 채운 원과 새 형상은 사라지고, 긴 수직선과 나선이 뒷면의 중심을 잡는다.
가슴의 원은 바깥으로 퍼지고 등의 나선은 안쪽으로 말린다. 앞면과 뒷면은 하나의 문양이 이어진 구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진 두 개의 구도다. 인물이 몸을 돌리는 순간 작품의 중심도 가슴에서 등으로 이동한다.
앉은 자세에서는 문양의 간격과 방향이 다시 달라진다. 팔꿈치가 접히면서 흰 점은 한곳으로 모이고, 허벅지의 가로띠는 무릎의 굴곡을 따라 휘어진다. 서 있을 때 떨어져 있던 팔과 다리의 문양은 가까워지고, 등과 엉덩이의 선은 몸의 회전에 따라 일부가 가려진다.
캔버스에 놓인 선은 움직이지 않지만 피부에 놓인 선은 관절과 근육을 따라 계속 형태를 바꾼다. 쉐가예프의 바디아트에서 자세는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동작이 아니다. 몸을 굽히고 돌리는 행위가 작품의 구도를 직접 바꾼다.
검 형태의 소품도 자세에 따라 다른 선을 만든다. 서 있을 때 골반 앞을 가로지른 긴 수평선은 앉은 자세에서 지면을 향한 수직선으로 전환된다. 머리 장식과 몸통, 검신이 나란히 서면서 신체의 높이가 강조되고, 두 발을 벌린 자세에서는 양손 사이의 수평선이 몸의 폭을 넓힌다.
쉐가예프의 픽토그램은 오래된 문양을 그대로 복원하지 않는다. 암각화와 민족 장식, 사람과 동물의 형태를 분해한 뒤 원과 선, 점과 실루엣으로 다시 묶는다. 가말 보콘바예프(Gamal Bokonbaev)는 세계미술의 인용과 키르기스 민속미술의 결합을 쉬가예프 작업의 특징으로 짚었다. 차용을 숨기지 않고 새로운 조합으로 바꾼 방식은 신화를 단순한 삽화에서 떼어내는 역할을 했다.
작은 사람과 동물, 새와 물고기로 시작한 문양은 회화의 보조 요소에서 작품 전체를 조직하는 언어로 확대됐다. 쉬가예프의 ‘예술적 픽토그래피’는 몸 위에서 가장 직접적인 형태를 얻는다. 평평한 캔버스에서는 분리됐던 선과 점이 어깨와 가슴, 골반과 다리의 곡면을 따라 하나의 신체로 연결된다.
거친 암벽의 균열과 검은 신체의 흰 선은 서로 다른 질서를 만든다. 바위의 선은 방향 없이 갈라지지만 몸의 문양은 원과 나선, 수직선과 가로띠로 정리돼 있다. 흰색 머리 장식은 밝은 암석과 이어지고, 검은 몸은 주변에서 선명하게 분리된다.
촬영 거리가 멀어지면 작은 점과 가는 선은 사라지고 검은 실루엣과 흰 머리 장식, 가슴과 복부의 큰 형상만 남는다. 가까이에서는 여러 문양이 몸을 나누지만 멀리에서는 인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픽토그램으로 압축된다.
쉐가예프의 바디아트는 그림을 피부에 옮긴 작업에 머물지 않는다. 검은색은 몸을 하나의 형태로 묶고, 흰 선은 자세가 바뀔 때마다 길이와 간격을 달리한다. 가슴의 원은 몸을 돌리면 사라지고 등의 나선이 나타난다. 팔의 점은 팔꿈치를 접을 때 밀집하며, 허벅지의 띠는 앉는 순간 곡선으로 바뀐다. 캔버스에 고정돼 있던 픽토그램은 살아 있는 몸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