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서 피어난 꽃, 눈동자와 노란 머리까지 이어지는 행복의 밀도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붉은 바탕 한가운데 노란 곱슬머리의 여성이 자리한다. 두 손은 몸 앞에서 모였고, 손끝에서 시작한 가느다란 줄기와 흰 꽃이 가슴과 목을 지나 얼굴 가까이까지 올라온다. 보라색 옷에는 흰 점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고, 인물 좌우에는 여러 색이 겹쳐진 원형 꽃들이 흩어져 있다. 얼굴을 크게 둘러싼 노란 머리는 붉은 공간과 맞부딪히며 작품 전체의 색채 밀도를 높인다.

구승희의 2026년작 ‘기쁨가득’은 대형 작업이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 가운데 혼합매체 작품은 ‘기쁨가득’과 ‘행복으로’ 두 점이다. 장지채색을 중심으로 이어온 구승희 작업에서 두 대형 혼합매체 작품은 같은 해 제작됐지만 행복을 다루는 방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행복으로’의 인물이 초승달과 빗자루를 타고 공간을 이동했다면 ‘기쁨가득’의 여성은 한자리에 머문다. 몸의 움직임을 크게 줄인 대신 작은 꽃과 점, 곡선을 인물 가까이에 집중시켰다. 행복의 방향도 바깥을 향한 이동에서 한 존재의 내부와 주변을 채우는 쪽으로 옮겨간다.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은 두 손이다. 손에서 여러 갈래의 가느다란 줄기가 부채처럼 퍼지고, 줄기마다 작은 흰 꽃이 촘촘하게 달린다. 꽃은 가슴을 지나 목과 턱 아래까지 올라오면서 옷과 피부, 주변 공간의 경계를 잇는다. 구승희가 반복해온 작은 꽃은 생활 속에서 쉽게 지나치는 행복과 연결돼 있으며, 큰 꽃에는 사람마다 다른 행복의 색을 담아왔다.

‘기쁨가득’에서는 작은 꽃의 위치가 중요하다. ‘행복으로’에서 작은 꽃이 초승달과 검은 공간을 따라 넓게 퍼졌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손과 가슴, 목 주변에 집중된다. 바깥으로 멀리 흩어지던 행복이 몸 가까이 모이고, 손에 쥔 작은 줄기에서 시작해 위로 자라난다. 제목에 들어간 ‘가득’이라는 상태를 꽃의 밀도와 방향으로 구체화한 구성이다.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보라색 옷도 하나의 색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은 흰 점과 꽃이 옷 전체에 반복되고, 손과 가슴 쪽으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진다. 인물 주변의 흰 꽃과 옷의 작은 점들이 이어지면서 어디까지가 옷이고 어디부터가 꽃인지 경계가 느슨해진다. 구승희가 행복을 하나의 독립된 상징으로 놓기보다 한 사람의 몸과 생활에 스며드는 감각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눈동자에는 꽃과는 다른 형태의 응축이 들어 있다. 구승희의 여성은 코와 눈썹의 표현을 줄이고 두 눈을 크게 강조하며, 눈동자 안에는 꽃이나 별처럼 보이는 결정 형태를 넣는다. 작가는 눈을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생각했고, 과거 접했던 물의 결정 이미지를 내면의 진심과 긍정적인 생각을 시각화하는 조형 요소로 가져왔다.

눈동자 속 결정 형태는 과학적 설명보다 작가가 받아들인 ‘긍정의 이미지’에 가깝다. 구승희는 보이지 않는 마음과 내면의 진심을 하나의 결정 형태로 옮겨 눈동자 안에 담았다. ‘기쁨가득’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적 증명보다 작가가 보이지 않는 마음을 하나의 결정 형태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손에서 출발한 꽃이 목을 지나 얼굴 가까이 올라오고, 그 위에 결정 형태를 품은 두 눈이 놓이면서 외부의 작은 행복과 내부의 감정이 한 인물 안에서 만난다.

노란 곱슬머리는 이 흐름을 크게 감싸는 영역이다.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던 시기, 제한된 작업시간과 생활의 속도에서 생긴 복잡한 심리를 머리카락에 풀어낸 것이 노란 곱슬머리의 출발점이었다. 관람객은 작가가 복잡한 마음을 담았던 형태에서 오히려 밝고 긍정적인 인상을 받아들였고, 반복되는 노란 머리는 이후 구승희 작업을 대표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쁨가득’의 머리는 얼굴과 상반신을 압도할 만큼 크게 부풀어 있다. 안쪽에서는 노란 곡선이 빽빽하게 겹치고, 바깥으로 갈수록 작은 고리의 밀도가 낮아지면서 붉은 바탕과 섞인다. 단단하게 닫힌 머리 모양보다 수많은 곡선이 바깥으로 풀려가는 형태에 가깝다. 복잡한 감정을 품었던 반복선이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인물 주변으로 번지는 파동의 성격을 얻는다.

구승희가 곱슬머리의 반복 작업을 돌을 하나씩 쌓는 행위에 빗댄 점도 여기서 중요해진다. 작은 곡선 하나만으로는 커다란 머리를 만들 수 없지만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 얼굴보다 훨씬 큰 노란 덩어리가 생긴다. 작은 행복 하나가 삶 전체를 바꾸지는 못해도 매일의 경험이 쌓이면 한 사람의 감정과 생활을 바꿀 수 있다는 작가의 행복관과 제작 방식이 맞물린다.

작품 아래와 좌우에 놓인 원형 꽃은 흰 꽃과 다른 리듬을 만든다. 여러 색이 동심원처럼 겹쳐진 꽃은 크기와 배치가 서로 다르고 정확한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작은 흰 꽃이 일상에서 쉽게 놓치는 미세한 행복을 나타낸다면, 강한 색을 지닌 원형 꽃은 조금 더 또렷하게 기억되는 감정이나 경험처럼 작품 곳곳에 자리한다. 서로 다른 크기와 색을 가진 꽃이 함께 놓이면서 행복을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붉은 바탕도 ‘기쁨가득’의 성격을 결정한다. 검은 공간 속에서 노란 달과 작은 꽃을 드러냈던 ‘행복으로’와 달리 이번 작품은 바탕부터 강한 붉은색을 사용한다. 노란 머리와 붉은 바탕이 큰 색채 대비를 만들고, 그 사이에 보라색 옷과 흰 꽃이 들어가면서 작품 전체가 높은 밀도의 색으로 채워진다. 이동을 강조했던 전작과 달리 한 장소 안에서 색과 형태를 계속 축적하는 방식이다.

구승희의 ‘채움’은 ‘기쁨가득’에서 제목과 직접 만난다. 넓은 색면을 그대로 남겨둘 수 있는 옷에도 작은 문양을 반복하고, 머리에는 수많은 곡선을 넣으며, 인물 주변에도 크고 작은 꽃을 계속 더한다. 구승희는 선 하나와 색 하나를 반복해 빈 곳을 채우는 방식이 자신의 성향과 맞는다고 설명했다.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채움은 장식만을 위한 반복이 아니다. 작은 꽃 하나, 곡선 하나, 옷의 문양 하나에는 작가가 들인 시간이 쌓여 있다. 작품의 빈 곳이 줄어들수록 형태의 밀도는 높아지고, ‘가득’이라는 제목은 언어에서 실제 제작 행위로 옮겨간다. 구승희가 일상의 작은 행복을 하나씩 발견하듯 작품에서도 작은 형태를 하나씩 더하면서 기쁨의 양을 시각적으로 축적한다.

‘기쁨가득’의 여성은 크게 움직이지 않지만 작품 안의 작은 형태들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손에서 꽃이 솟고, 가슴과 목을 지나 눈으로 올라가며, 노란 머리의 곡선은 다시 주변으로 퍼진다. 바깥으로 멀리 떠나는 이동 대신 한 존재 안에서 감정이 들어오고 쌓이고 다시 바깥으로 번지는 순환이 만들어진다.

‘행복으로’가 작은 꽃을 초승달과 공간으로 확장해 행복을 향한 움직임을 보여줬다면 ‘기쁨가득’은 작은 행복이 한 존재 안에 축적되는 과정에 집중한다. 같은 혼합매체 대형작이지만 한 작품에서는 행복이 이동의 힘이 되고, 다른 작품에서는 내부를 채우는 밀도가 된다. 구승희가 행복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반복하기보다 인물의 자세와 꽃의 위치, 색과 공간의 밀도를 달리하며 여러 상태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도 두 작품을 함께 볼 때 선명해진다.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기쁨가득’, Mixed media on canvas, 162×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쁨가득’에서 가장 큰 형태는 노란 머리지만 작품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은 꽃이다. 손에서 시작한 흰 꽃이 몸을 통과하고, 옷의 작은 점과 주변의 원형 꽃이 서로 다른 밀도로 이어진다. 거대한 기쁨 하나가 갑자기 등장하는 대신 작은 기쁨이 하나씩 쌓이면서 한 사람의 몸과 생각, 주변 공간까지 채워간다.

구승희는 ‘기쁨가득’에서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나는 인물을 그리지 않았다. 가까이에 들어온 작은 행복이 한 존재 안에서 쌓이고, 꽃이 되고, 파동이 되어 넘쳐나는 순간을 붙잡았다. 인물의 몸은 멈춰 있지만 기쁨은 손과 가슴, 눈과 머리 사이를 계속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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