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에서 머리와 몸, 주변 공간으로 번지는 행복의 파동

구승희, ‘행복으로’, Mixed media on canvas, 163×130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행복으로’, Mixed media on canvas, 163×130cm, 2026.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검은 바탕을 가로지르는 노란 초승달 위에 붉은 옷의 여성이 몸을 실었다. 두 손은 빗자루를 잡고 있고 상체는 앞으로 기울었다. 바로 뒤에는 작은 흰 강아지가 함께한다. 달의 안팎과 인물 주변에는 노랑과 분홍, 초록과 파랑의 작은 색점이 무수히 흩어져 있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점으로 인식되던 흔적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꽃으로 모습을 바꾼다.

구승희의 2026년작 ‘행복으로’는 Mixed media on canvas, 163×130cm의 대형 작업이다. 이번에 선보인 69점 가운데 혼합매체 작업은 ‘행복으로’와 ‘기쁨가득’ 두 점이고 나머지는 장지채색으로 제작됐다. 장지채색을 중심으로 이어온 구승희의 작업 가운데 ‘행복으로’는 재료뿐 아니라 인물의 움직임과 공간의 확장에서도 다른 흐름을 만들어낸다.

거대한 초승달보다 먼저 살펴볼 부분은 달의 표면과 주변을 메운 작은 꽃이다. 구승희에게 작은 꽃은 평범한 하루에서 쉽게 지나치는 행복과 맞닿아 있다. 큰 꽃에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행복의 색을 담고, 점처럼 작은 꽃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상의 행복을 새겨왔다.

‘행복으로’에서는 작은 꽃이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초승달 안쪽에서 밀집된 꽃은 달의 형태를 만들고 가장자리에서는 검은 바탕을 향해 흩어진다. 인물과 빗자루 주변에서도 작은 꽃이 이어진다. 한 송이만 떼어놓으면 미세한 흔적이지만 수많은 꽃이 모이면 색의 밀도가 달라지고 달이 생기며 인물이 이동할 공간까지 만들어진다.

구승희 회화에서 작은 꽃은 행복을 설명하기 위해 곁들인 기호라기보다 작품을 이루는 최소 조형 단위에 가깝다. 하나의 꽃을 짧은 기쁨이나 기억, 사소한 일상의 감각이라고 한다면 거대한 노란 달은 수많은 작은 행복이 쌓인 결과가 된다. 큰 행복을 먼저 그리고 꽃으로 주변을 꾸민 것이 아니라 작은 존재들의 축적이 더 큰 형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작가가 행복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한 변화를 거쳤다. 초기에는 성공처럼 멀리 있는 목표에 행복을 두었지만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족과 이웃, 시원한 물과 바람처럼 가까운 생활로 시선을 옮겼다. 행복은 도달해야 할 먼 목적지에서 이미 곁에 존재하는 작은 경험으로 바뀌었다.

작품을 바라보는 거리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멀리서는 커다란 노란 달과 붉은 인물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달은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꽃으로 나뉜다. 하나의 거대한 행복으로 보였던 형상이 실제로는 작은 것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노란 머리 여성의 출발점에는 작가 자신의 생활이 놓여 있다. 구승희는 20대에 생머리를 한 현대 여성을 그렸다. 결혼과 육아를 거치면서 외부에서 소재를 찾던 생활이 달라졌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기 시작했다.

지금은 구승희 작품을 단번에 알아보게 만드는 노란 곱슬머리도 처음부터 행복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에는 정해진 시간 안에 작업을 마치고 다시 육아로 돌아가야 했다. 오후 5~6시가 가까워지면 작업을 더 하고 싶은 마음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겹쳤다. 빠르게 흘러가는 생활 속에서 쌓인 복잡한 심리를 머리카락에 풀어낸 것이 노란 곱슬머리의 시작이었다. 작가가 복잡한 마음을 담았던 형태를 관람객은 오히려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였다.

노란색 자체에 행복이라는 고정된 상징을 부여하기도 어렵다. 구승희는 노랑과 빨강, 주황처럼 밝은 색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행복으로’에서 더 주목할 부분은 색의 상징보다 머리카락을 만드는 반복이다. 얼굴보다 훨씬 크게 부풀어 오른 머리는 수없이 되풀이한 작은 곡선으로 이루어졌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선의 밀도가 낮아지면서 검은 공간으로 풀려나간다.

복잡한 심리를 담았던 선은 반복과 시간을 거치면서 다른 성질을 얻었다. 조급함을 담았던 곡선은 하나씩 축적될수록 밝은 덩어리가 되고, 인물 안쪽에 머물던 감정은 머리의 경계를 넘어 주변으로 퍼진다. 불안과 조급함에서 출발한 선이 오랜 작업을 거치며 파동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구승희가 곱슬머리를 한 줄씩 채워가는 작업을 돌을 하나씩 쌓는 행위에 빗댄 것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머리가 바깥으로 팽창한다면 눈동자는 인물의 내부를 향한다. 구승희의 여성은 코와 눈썹의 표현을 크게 줄이고 두 눈을 강조한다. 눈동자 안에는 꽃이나 별을 연상시키는 결정 형태가 들어 있다. 작가는 눈을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생각했고, 과거 접했던 물의 결정 이미지를 눈동자의 조형 요소로 가져왔다.

구승희, ‘행복으로’, Mixed media on canvas, 163×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행복으로’, Mixed media on canvas, 163×130cm, 2026.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물 결정에 관한 과학적 주장과 작품의 조형적 의미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행복으로’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적 증명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을 하나의 결정 형태로 시각화하려 했다는 점이다. 작은 눈동자 안에서는 감정이 응축되고, 그 바깥의 거대한 노란 머리에서는 수많은 곡선으로 증폭된다. 머리 외곽의 선이 주변으로 풀리면 작은 꽃들이 다시 그 흐름을 이어받는다.

눈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주변 공간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몸에 이르러 움직임으로 바뀐다. 여성은 두 손으로 빗자루를 붙잡은 채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무릎을 뒤로 접었다. 길게 뻗은 빗자루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솟아오르는 초승달의 곡선이 함께 진행 방향을 만든다. 정적인 상태에 머물던 인물이 행동하는 존재로 변한 것이다.

작품 제목 ‘행복으로’에도 같은 방향성이 들어 있다. ‘행복’에서 끝났다면 하나의 상태로 머물 수 있지만 ‘행복으로’에는 움직임이 생긴다. 여성은 행복을 얻은 뒤 머무는 인물이 아니라 행복을 향해 이동하는 존재다. 완전히 닫힌 원이 아닌 초승달 역시 정착보다 이동에 가까운 형태를 만든다.

여성 뒤에 앉은 작은 흰 강아지는 이동을 한 사람만의 경험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가족과 아이, 강아지는 구승희가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가져온 소재다. 실제로 함께했던 강아지도 작품에 들어왔다. ‘행복으로’에서는 사람과 강아지가 같은 빗자루를 타고 같은 방향을 향한다. 눈과 머리가 개인의 내면을 구성한다면 강아지의 등장은 행복을 다른 생명과 함께하는 관계로 넓힌다.

검은 바탕도 밝은 색을 강조하기 위한 배경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상당한 면적의 검은색이 그대로 남아 있고 작은 꽃도 모든 어둠을 덮지 않는다. 꽃이 밀집된 부분에서는 노란 달이 만들어지고 밀도가 낮아지는 곳에서는 다시 검은색이 드러난다.

구승희가 말해온 행복 역시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 뒤 시작되는 낙관과는 거리가 있다. 힘들고 화나고 울고 싶은 날을 인정하면서도 웃는 날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태도에 가깝다. ‘행복으로’에서도 어둠을 지운 뒤 꽃을 배치하지 않는다. 검은 공간 속에 작은 꽃이 하나씩 늘어나고, 꽃이 축적되면서 어느 지점에서는 밝은 달을 만든다. 행복을 어둠의 반대편에 놓기보다 같은 삶 안에서 조금씩 밀도를 높여가는 감정으로 다룬다.

구승희의 ‘채움’은 작품의 내용과 제작 방식을 연결한다. 붉은 옷은 단순한 색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까이 보면 작은 문양이 촘촘하게 반복되고, 넓은 부분도 한 번에 처리하기보다 선과 색을 거듭 더해 완성한다. 구승희는 빈 곳을 세밀하게 채우는 방식이 자신의 성향과 맞는다고 설명했다.

작은 꽃 하나, 곱슬머리의 곡선 하나, 옷의 문양 하나에는 작가가 보낸 시간이 남는다. 채움은 장식에 그치지 않고 노동과 시간의 기록이 된다. 평범한 하루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듯 빈 공간에 작은 형태를 하나씩 더하고, 다시 꽃 하나를 그리고 곡선 하나를 채우는 동안 공간의 밀도도 높아진다. 구승희에게 행복을 찾는 행위와 그림을 채우는 작업이 맞닿는 부분이다.

‘행복으로’의 흐름은 작은 꽃에서 시작해 눈동자에서 내면을 얻고, 노란 머리에서 파동으로 넓어진다. 파동은 몸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움직이는 몸 옆에는 또 다른 생명이 함께한다. 작은 꽃은 다시 인물 밖의 공간으로 흩어진다. 꽃에서 눈으로, 눈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몸으로, 몸에서 관계와 공간으로 이어지는 순환이다.

작가 자신에서 시작한 노란 머리 여성도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의 모습만을 재현하는 인물에서 멀어진다. 가족과 동물, 꽃과 달을 만나고 멈춰 있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구승희 회화 안에서 독립적인 생명성을 얻는다.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공간을 만들듯, 작가의 생활과 감정, 반복된 제작 시간이 축적되면서 한 존재의 성격도 형성된다.

‘행복으로’는 행복한 인물을 보여주는 작품에 머물지 않는다. 점처럼 미세한 행복이 모여 하나의 생명을 만들고, 만들어진 생명이 다시 행복을 향해 움직이는 과정까지 담는다. 눈동자의 작은 결정에서 시작한 내면은 노란 머리의 곡선을 지나 바깥으로 퍼지고, 그 흐름은 몸의 행동과 다른 생명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커다란 노란 달도 결국 수많은 작은 꽃으로 이루어진다. 멀리 있던 큰 행복에서 가까운 일상의 행복으로 시선을 돌린 구승희의 변화가 한 작품 안에서 다시 반복된다. 초승달 위의 여성은 행복을 소유한 채 멈춰 있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행복으로’ 계속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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