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이 박힌 눈동자와 노란 머리, 두 손 사이 흰 꽃에서 선명해지는 ‘채움’의 조형 언어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주황빛이 넓게 번진 공간 안에 노란 머리의 여성이 자리한다. 얼굴은 오른쪽 위를 향하고, 한 손은 가슴 가까이에 두고 다른 손은 위로 뻗었다. 아래쪽 손에는 작은 흰 꽃이 모여 있고, 꽃들은 두 손 사이를 지나 인물의 시선이 향하는 위쪽까지 흩어진다. 붉은 옷에는 어두운 꽃무늬가 반복되고, 얼굴보다 훨씬 크게 퍼진 노란 머리는 인물의 몸 뒤로 둥글게 확장된다.

구승희의 2021년작 ‘담아서’는 장지 채색, 162×130cm다. 2026년의 ‘행복으로’와 ‘기쁨가득’이 혼합매체 대형작으로 확장되기 전, 장지 위에서 지금의 대표적인 조형 언어가 상당 부분 자리 잡았던 시기의 작업이다. 작품에는 노란 머리의 여성, 결정 형태가 들어간 눈동자, 반복되는 작은 꽃, 세밀하게 채운 옷의 문양이 함께 등장한다. 이후 작품에서 더욱 확장되는 꽃과 눈, 머리, 손의 관계를 2021년의 ‘담아서’에서 이미 읽을 수 있다.

‘담아서’에서 가장 먼저 눈여겨볼 부분은 두 손 사이의 거리다. 한 손은 작은 꽃을 품고 있고 다른 손은 비어 있는 공간을 향해 펼쳐져 있다. 아래에 모여 있던 흰 꽃들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서로의 간격이 벌어지며 인물의 손을 벗어난다. 제목의 ‘담아서’가 단순히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고, 모은 것을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까지 품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구승희에게 점처럼 보이는 작은 꽃은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치는 행복과 연결돼 있다. 각각의 작은 꽃은 크기도 작고 단독으로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반복될수록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큰 꽃에는 사람마다 다른 행복의 색을 담고, 작은 꽃에는 보이지 않던 일상의 행복을 옮겨왔다는 작가의 설명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담아서’에서는 그 작은 행복이 인물의 주변에 무작위로 흩어지지 않는다. 손을 중심으로 일정한 방향을 갖는다. 아래쪽에서는 꽃이 한데 모여 있고 위로 올라가면서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꽃이 인물에게 들어오는 것인지, 손에 담았던 것을 다시 내보내는 것인지 한쪽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모음’과 ‘확산’이 한 작품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은 분명하다.

두 손의 역할도 서로 다르다. 가슴에 가까운 손은 꽃을 붙잡는 쪽에 가깝고, 위로 올린 손은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거나 내보내는 동작을 만든다. 구승희의 행복이 단순한 소유보다 발견하고 모으고 다시 관계 속으로 흘려보내는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담아서’의 손은 행복의 이동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관이 된다.

2026년작 ‘행복으로’에서 몸 전체가 빗자루를 타고 이동했다면, ‘담아서’에서는 몸보다 손의 움직임이 먼저 나타난다. 인물의 몸은 한곳에 머물지만 팔과 손, 꽃의 방향은 오른쪽 위로 이어진다. 정지된 몸 안에서 작은 행위가 시작되고, 작은 꽃이 그 행위의 궤적을 남긴다. 이후 구승희 작업에서 행복이 몸의 움직임과 주변 공간으로 확대되는 흐름을 생각하면 ‘담아서’는 그 이전 단계에 놓인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시선도 손의 방향과 맞물린다. 얼굴은 정면을 향하지 않고 오른쪽 위로 기울어 있다. 눈동자는 손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흩어지는 흰 꽃들도 같은 방향을 따른다. 손의 동작과 눈의 방향이 어긋나지 않으면서 작품 전체에 하나의 상승 흐름이 생긴다.

구승희의 인물에서 눈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코와 눈썹의 표현을 줄이고 큰 눈을 남겼으며, 눈동자 안에는 꽃이나 별을 닮은 결정 형태를 넣었다. 작가는 눈을 내면의 진심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생각과 내면을 시각화하기 위해 과거 접했던 물의 결정 이미지를 조형적 모티프로 가져왔다.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담아서’의 눈동자는 특히 손과 함께 볼 때 의미가 커진다. 손에서 흩어진 작은 꽃이 바깥의 행복이라면 눈동자의 결정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면에 가깝다. 인물은 꽃을 손에만 쥐고 있지 않는다. 눈은 꽃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가고, 시선은 다시 작품 바깥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손에 담긴 행복과 눈에 담긴 마음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노란 머리는 그 흐름을 인물 전체로 넓힌다. 구승희의 노란 곱슬머리는 처음부터 행복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가 아니었다. 육아와 작업을 함께 이어가던 시기, 정해진 시간 안에서 작업해야 했던 조급함과 복잡한 심리를 머리카락에 풀어낸 데서 시작됐다. 관람객은 작가가 복잡한 마음을 넣었던 머리에서 오히려 밝음과 긍정의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담아서’에서도 노란 머리는 실제 머리카락의 비례를 크게 벗어난다. 인물의 얼굴과 상반신보다 넓은 영역을 차지하며 뒤쪽으로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만든다. 중심에서는 노란색이 짙게 모이고 외곽으로 갈수록 주황색 바탕과 섞이면서 경계가 흐려진다. 머리를 고정된 물체로 묘사하기보다 인물 주변으로 퍼지는 빛이나 파동에 가까운 형태로 확장한 구성이다.

여기서 눈과 머리의 관계가 다시 드러난다. 눈동자 안에는 작은 결정이 응축돼 있고 머리는 반대로 크게 팽창한다. 작은 형태가 내면에 모이고, 그 안에서 생긴 감정이 머리를 지나 바깥으로 넓어지는 구조다. 눈에서 응축된 긍정의 감각이 생각을 거쳐 노란 머리의 넓은 영역으로 번진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담아서’에서는 이 파동과 손끝의 작은 꽃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머리는 인물을 감싸며 바깥으로 퍼지고, 손에서는 꽃이 위로 흩어진다. 하나는 감정의 확장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의 확장이다. 내면에서 생긴 변화가 머리에서 멈추지 않고 손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붉은 옷에 반복된 문양도 구승희 특유의 ‘채움’을 보여준다. 넓은 붉은 면을 그대로 남기지 않고 작은 형태를 반복해 넣었다. 구승희는 옷의 문양까지 선을 하나씩 긋고 색을 더하며 빈 곳을 채우는 작업을 이어왔다. 한꺼번에 넓은 면을 처리하기보다 작은 단위를 반복하는 방식이 자신의 성향과도 맞는다고 설명했다.

구승희의 채움은 작품에서 행복을 다루는 방식과 겹친다. 행복 역시 큰 사건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감각을 하나씩 모으고, 다시 하나를 더하면서 밀도가 생긴다. 붉은 옷의 작은 문양과 손에 모인 흰 꽃, 머리를 이루는 수많은 노란 흔적은 모두 반복과 축적이라는 같은 제작 원리 안에 놓인다.

‘담아서’라는 제목은 이 지점에서 더 구체적인 의미를 얻는다. 무엇을 담는지는 작품 안에서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작은 꽃일 수도 있고, 일상의 행복일 수도 있으며, 작가가 살아오며 쌓은 감정과 기억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담는 행위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품의 흰 꽃은 손 안에만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흩어진다.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구승희, ‘담아서’, 장지 채색, 162×130cm, 2021. 사진=구띠커피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행복을 모으는 것과 나누는 것이 분리되지 않는다.

2026년 ‘기쁨가득’에서는 작은 꽃이 손에서 가슴과 목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한 존재의 내부를 채웠다. 2021년 ‘담아서’에서는 이미 손을 중심으로 꽃을 모으고 흩어 보내는 구조가 나타난다. 제작연도를 따라 살펴보면 구승희에게 손은 단순한 신체 일부에서 점차 행복의 방향을 만드는 조형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담아서’의 인물은 어디론가 이동하지 않는다. 달을 타지도 않고 자전거를 타지도 않는다. 대신 손을 움직이고 시선을 들어 올린다. 큰 이동이 시작되기 전, 한 존재 안에서 작은 행동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작은 꽃은 손에 모였다가 바깥으로 나가고, 눈동자의 결정은 내면을 품으며, 노란 머리는 감정을 넓게 확장한다. 옷에 반복된 문양은 그 모든 과정에 작가가 투입한 시간을 남긴다. 구승희가 이후 작품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가는 꽃·눈·머리·몸의 관계가 ‘담아서’에서는 이미 하나의 구조로 연결돼 있다.

거대한 행복을 한 번에 얻어 품는 모습은 아니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하나씩 발견해 손에 모으고, 모인 행복은 다시 손끝을 지나 다른 공간으로 흩어진다. ‘담아서’는 행복을 붙잡는 인물보다 행복을 품은 뒤 다시 내보내는 존재에 가깝다.

구승희의 행복은 손 안에 갇히지 않는다. 담을수록 다시 밖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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