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눈은 크게 번지고 먼 눈은 작은 입자로 남아…초점과 거리의 차이가 만든 깊이, 개별 눈송이에서 폭설의 전체로
[KtN 박준식기자]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공간 위로 수많은 흰 점이 쏟아진다. 바늘 끝처럼 작은 입자부터 윤곽이 풀린 커다란 흰 덩어리까지 크기가 제각각이다. 오른쪽 아래에는 크게 번진 눈송이가 자리하고, 중앙과 왼쪽 위에도 초점에서 벗어난 흰색이 떠 있다. 그 사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작은 눈이 촘촘하게 채운다.
엄효용(Um HyoYong·嚴孝鎔)의 ‘20210107’은 2023년 제작된 사진작품이다. 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Pigment Print on Cotton Paper) 방식으로 출력됐다. 나무와 땅, 건물처럼 장소를 가늠하게 하는 대상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눈송이의 크기와 밝기, 초점의 차이만으로 앞과 뒤가 갈리고 깊이가 만들어진다.
가까운 눈은 형태를 잃고, 먼 눈은 점으로 남는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크게 번진 흰색이다. 카메라와 가까운 위치를 지난 눈송이는 가장자리가 부드럽게 풀리면서 구체적인 결정 형태를 잃었다. 중간 거리에 놓인 눈은 회색을 머금은 둥근 입자로 남고, 더 멀리 있는 눈송이는 작고 또렷한 점에 가까워진다.
크기가 커질수록 세부는 흐려지고, 작아질수록 외곽은 상대적으로 또렷해진다. 가까운 눈은 강한 존재감을 갖지만 정확한 형태는 사라지고, 멀리 있는 눈은 작아지는 대신 하나의 입자로 분명하게 남는다. 한 장 안에서 크기와 선명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평선이나 길, 건물의 배열이 없어도 공간은 평평하지 않다. 큰 흰 덩어리에서 중간 크기의 회색 입자, 가장 작은 흰 점으로 이어지는 차이가 눈송이 사이의 거리를 대신한다. 앞쪽과 뒤쪽을 선으로 구분하지 않고 초점의 변화만으로 여러 층의 공간을 만든다.
작품 전역에 흩어진 눈송이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다. 작은 입자가 밀집한 부분과 짙은 바탕이 상대적으로 넓게 드러나는 부분이 번갈아 나타난다. 큰 눈송이 역시 정해진 간격 없이 불규칙하게 놓였다. 반복되는 무늬보다 실제 강설에서 나타나는 우연성과 불균형이 강하게 남는다.
풍경을 지우자 눈 자체가 남았다
겨울 풍경사진에서 눈은 흔히 산과 숲, 도시와 도로를 덮는다. ‘20210107’에서는 배경이 거의 사라지고 눈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정 장소를 설명하는 풍경보다 카메라 앞을 통과하는 눈 자체가 전면으로 올라온다.
짙은 바탕은 흰색의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아주 작은 눈송이는 날카로운 흰 점으로 빛나고, 초점이 흐려진 입자는 흰색과 회색 사이에서 부드럽게 번진다. 검은색과 흰색이라는 강한 대비 사이에 여러 단계의 회색이 들어가면서 공간도 함께 넓어진다.
가까이에서 살피면 눈보다 점과 원, 얼룩의 배열이 먼저 들어온다. 작은 흰 점들은 미세한 입자가 되고, 커다란 눈송이는 둥근 색면처럼 퍼진다. 거리를 두면 서로 흩어져 있던 점과 얼룩이 다시 한꺼번에 쏟아지는 눈으로 묶인다.
구체적인 자연현상과 추상적인 형태가 관람 거리에 따라 번갈아 나타나는 구조다. 사진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라보면 눈이 쏟아지는 순간이지만, 피사체의 정보를 잠시 덜어내면 수많은 흰 점이 검은 바탕 위에서 밀도를 달리하는 추상 이미지에 가까워진다.
사진이 만든 회화적 질감
커다랗게 번진 눈송이는 흰 물감을 떨어뜨린 흔적을 떠올리게 하고, 작은 입자들이 밀집한 부분은 안료를 촘촘하게 흩뿌린 듯하다. 붓이나 물감을 사용해 만든 표면은 아니다. 카메라와 눈송이 사이의 거리와 초점 차이가 점과 얼룩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엄효용은 나무 연작에서도 실제 대상을 촬영한 이미지를 반복하고 포개면서 사진의 기록을 연필선이나 옅은 물감과 닮은 질감으로 변화시켜 왔다. ‘20210107’에서는 나무의 반복된 윤곽 대신 눈송이 자체의 크기와 초점 차이가 비슷한 시각적 긴장을 만든다.
검은 바탕도 단순한 배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흰색이 없는 부분은 눈송이 사이의 빈 공간이 되고, 밝은 입자가 밀집할수록 검은색은 더 깊게 물러난다. 흰색을 보기 위해 검은색이 필요하고, 검은색의 깊이 역시 수많은 흰 입자 때문에 드러난다.
한 송이가 아닌 ‘내리는 눈’
눈송이는 수없이 많지만 중심에 놓인 하나의 대상은 없다. 오른쪽 아래의 커다란 흰색이 잠시 시선을 붙잡아도 눈길은 곧 주변의 작은 입자로 흩어진다. 중앙에도 작품 전체를 대표하는 단일한 형상이 자리하지 않는다.
각각의 눈송이는 크기와 위치, 밝기와 선명도가 다르다. 하나만 떼어놓으면 작은 점이나 희미한 얼룩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입자가 한꺼번에 모이면 ‘눈이 내린다’는 현상이 생긴다. 개별적인 형태보다 집단이 만들어내는 밀도와 움직임이 먼저 들어온다.
엄효용의 나무 연작에서도 서로 다른 나무는 겹침을 거치며 한 그루처럼 모이면서 각 나무의 차이를 옅은 선과 얼룩으로 남겼다. 한 개체와 여러 개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였다. ‘20210107’에서는 수직으로 선 나무 대신 수많은 눈송이가 작품 전체에 흩어지면서 중심과 주변의 구분마저 약해진다.
눈송이의 차이는 전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큰 입자와 작은 입자, 선명한 점과 흐릿한 원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눈이 카메라를 향해 쏟아지는 듯한 깊이가 생긴다. 동일한 크기의 흰 점만 반복됐다면 평평한 무늬에 가까워졌을 공간이 각각 다른 눈송이로 인해 다시 입체적인 겨울로 돌아온다.
여덟 자리 숫자로 남은 시간
‘20210107’이라는 제목은 여덟 자리 숫자로만 이루어졌다. 지명이나 계절, 대상의 이름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숫자와 달리 작품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눈송이가 한순간에 펼쳐져 있다.
사진에 고정된 눈송이는 모두 서로 다른 위치를 통과하고 있다. 어떤 눈은 렌즈 가까이에 들어와 크게 번졌고, 어떤 눈은 먼 곳에서 작은 점으로 남았다. 같은 순간 안에서도 각 입자의 위치와 거리는 모두 다르다.
엄효용은 ‘여기, 지금, 나무’ 연작에서 장소와 시간, 대상을 나란히 놓고 여러 개체와 순간을 하나의 사진으로 축적해 왔다. ‘20210107’에서는 장소를 알아볼 만한 풍경이 사라진 대신 수많은 눈의 위치와 거리가 시간의 흔적을 대신한다.
사진은 떨어지는 눈을 멈췄지만 움직임까지 없애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크기와 초점으로 남은 눈송이는 카메라 앞을 지나던 순간의 위치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록한다. 한 송이의 아름다움보다 수많은 눈이 동시에 지나가던 밀도와 깊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짧은 시간이 검은 공간 전체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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