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바카렐로, 린즈펑 아카이브에서 친밀감·욕망·로맨스 선별…완결된 커플 이미지 대신 열매와 피부, 짧은 접촉
[KtN 신명준기자]두 사람의 얼굴과 머리가 가까운 거리에서 겹친다. 한쪽 얼굴에는 빛이 강하게 떨어지고, 나머지는 침구와 그림자 사이로 물러난다. 관계를 설명하는 배경도, 정면을 향한 표정도 없다. 가까워진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피부의 거리와 빛, 잠시 멈춘 몸의 자세다.
중국 사진가 No.223로 활동하는 린즈펑(Lin Zhipeng·林志鹏)의 개인전이 지난 6일 베이징 Saint Laurent Rive Droite에서 시작됐다.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큐레이션한 이번 전시는 린즈펑이 축적해온 사진 가운데 친밀감과 욕망, 로맨스를 다룬 작품을 골라 2026년 칠석에 맞췄다. 전시는 9월 11일까지 이어지며 출품작은 판매된다.
8월 19일 칠석을 앞두고 생로랑이 선택한 사랑의 이미지는 전형적인 커플 초상과 거리가 있다. 꽃과 과일, 신체와 접촉이 반복되고 인물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린즈펑 역시 이번 사진들을 조용하고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 관능과 연결해 설명했다. 꽃과 과일, 몸, 사람 사이의 작은 교류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다룬다는 설명이다.
사진 속 관능은 노출의 강도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물과 사물을 바짝 붙이고, 몸 전체 대신 목이나 입 주변, 손과 피부의 일부를 남기는 방식이 감각을 밀어 올린다. 관람자가 관계와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없도록 정보를 덜어낸 뒤 색과 질감, 접촉의 짧은 순간을 앞세운다.
얼굴 일부와 목이 들어온 사진에서는 붉은 열매 하나가 피부 가까이에 놓인다. 밝게 드러난 피부, 짙은 배경, 작은 붉은색이 좁은 범위 안에서 부딪힌다. 인물의 표정과 복장을 중심에 두는 초상사진과 달리 얼굴은 잘리고 신체는 부분만 남는다. 붉은 열매 역시 정물의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피부 가까이 놓이면서 색과 형태가 신체의 일부처럼 작동한다.
꽃과 과일은 린즈펑이 지속해서 사용해온 소재다. 린즈펑은 최근 인터뷰에서 꽃과 과일을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충분히 익었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 존재로 설명했다. 욕망과 성장뿐 아니라 쇠락까지 함께 품는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남부 출신으로 따뜻한 빛과 습한 공기에 끌리고 남부와 열대 지역을 자주 여행해온 경험도 사진에 여름의 색과 온도를 남겼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과일을 성적인 상징 하나로 좁혀 읽기에는 부족하다. 잘 익은 상태는 가장 충만한 순간인 동시에 변질이 시작되는 시간과 맞닿아 있다. 꽃 역시 활짝 피어난 상태가 영구히 지속되지 않는다. 피부와 열매, 꽃을 같은 사진군 안에 배치하면서 욕망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생겨나고 성숙하고 사라지는 시간으로 다루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두 사람이 가까이 붙은 사진에서도 관계의 이름은 제시되지 않는다. 연인인지 친구인지, 앞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사진 밖의 서사로 보충하지 않는다. 바로 그 생략 때문에 접촉은 특정 인물의 연애담보다 넓어진다. 머리가 맞닿은 거리, 몸에 떨어지는 빛, 서로를 향한 자세 같은 물리적인 정보가 감정을 대신한다.
린즈펑의 사진이 칠석을 다루는 방식도 여기서 갈린다. 2026년 칠석을 기념한 전시지만 칠석을 상징하는 새로운 광고 이미지를 제작한 것이 아니라 기존 아카이브에서 작품을 골랐다. 바카렐로와 린즈펑은 방대한 기존 작업에서 칠석의 분위기와 맞닿는 사진을 선별했다.
한정 상품의 색이나 하트 모티프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보다 작가가 오랫동안 찍어온 친밀성의 이미지를 가져온 선택이다. 브랜드가 기념일에 맞춰 사랑의 모습을 새로 규정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작가의 시선에서 칠석과 접점을 찾았다는 차이가 생긴다. 이번 전시가 No.223와 생로랑의 첫 만남도 아니다. 린즈펑은 2022년 파리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Saint Laurent Rive Droite 그룹전 'Pink Matter'에 참여했고, 2023년에는 개인전으로 다시 소개됐다.
사진의 질감에서도 지나치게 정돈된 이미지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 린즈펑은 완벽한 사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조화로운 이미지 안에 남아 있는 작은 결함과 미완결성에 끌린다고 말했다. 오래된 아날로그 기술에서 발생하는 불완전성도 사진의 매력으로 받아들이며, 현재 디지털 이미지에 널리 퍼진 지나치게 매끈한 완결성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두 사진에서도 완벽하게 설명된 인물이나 관계는 찾기 어렵다. 얼굴은 잘리고 빛은 한쪽에 치우치며, 작은 열매 하나가 사람만큼 강한 비중을 차지한다. 기술적으로 흠 없는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잘라낼 것인지가 사진의 성격을 결정한다.
생로랑이 칠석을 앞두고 No.223의 아카이브를 다시 펼친 이유도 이런 사진 언어와 맞닿아 있다. 린즈펑이 이번 전시에 배치한 사랑은 완성된 커플의 모습이나 영속성을 약속하는 기호보다 짧은 접촉, 익어가는 과일, 피어난 꽃, 가까워진 피부에 머문다. 8월 19일 칠석이 지나도 전시는 9월 11일까지 계속된다.
한여름 가장 풍성한 상태에 도달한 꽃과 과일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가까워진 두 몸도 사진 한 장이 붙잡은 시간 밖에서는 다시 움직인다. 린즈펑이 지난 작업에서 반복해온 일시성과 친밀성이 2026년 베이징의 칠석과 만나면서, 생로랑이 선택한 사랑의 이미지는 ‘완성된 관계’보다 사라지기 직전의 감각 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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