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띠커피갤러리 1만원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와 ‘남과 여’ 게시판 연결…값을 낸 사람과 마시는 사람이 다른 시간에 만나는 선결제 방식
[KtN 박준식기자]카페에서 주문과 소비는 대개 몇 분 안에 끝난다. 주문한 사람이 계산하고, 만들어진 커피를 받아 마신다. 구띠커피갤러리의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는 이 익숙한 순서를 바꾼다. 커피를 사는 사람은 지금 매장에 있지만, 마실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첫사랑을 기억하는 방문객이 1만원을 먼저 결제하고, 첫사랑에게 남기는 메모를 실내 ‘남과 여’ 게시판에 붙여둔다. 선결제된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도 포스트잇과 연결해 게시된다. 시간이 지난 뒤 메모 속 당사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카페를 찾아 해당 기록과 만나면 먼저 마련된 커피 한 잔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는 소금을 가미한 커피로 마련된다. 첫사랑의 감정을 억지로 달고 쓰거나 짠맛에 빗대기보다, 일반적인 커피와 구분되는 맛의 요소를 둔 특별 메뉴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이 메뉴에서 더 눈여겨볼 대목은 레시피보다 한 잔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값을 낸 사람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다르다.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카페에 있을 필요도 없다. 먼저 온 사람이 커피 한 잔을 남기고 돌아가면 주문은 끝나지만 소비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한 잔의 커피 사이에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들어간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위해 미리 커피를 사두는 문화에는 오래된 전례도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카페 소스페소(caffè sospeso)’는 한 잔을 주문하면서 두 잔 값을 내고, 남은 한 잔을 형편이 어려운 낯선 사람이 마실 수 있도록 남겨두는 전통이다. 이탈리아 관광 안내와 나폴리시 자료에도 한 사람이 마시지 않을 커피를 미리 결제해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문화로 소개돼 있다.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는 선결제라는 형식에서는 닮았지만 커피가 향하는 곳은 다르다. 카페 소스페소가 이름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익명의 호의라면, 첫사랑 블렌드에는 한 사람의 이름과 개인적인 기억이 붙는다. 불특정한 다음 사람을 위한 커피가 아니라 오래전 기억 속 특정한 사람에게 남겨두는 한 잔이다.
이 차이가 커피의 성격도 바꾼다. 일반적인 선물은 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고 직접 건네거나 주소를 알아 전달한다. 첫사랑 블렌드는 카페에 맡겨둔다. 첫사랑 상대가 이곳을 찾지 않으면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구매자가 상대의 현재 생활 안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커피와 메모만 한 장소에 남겨두는 방식이다.
첫사랑을 기억하면서도 직접 연락하지 않는 마음과 맞닿는 부분도 있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지만 현재의 삶을 흔들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연락할 용기보다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클 수도 있다. 한 잔을 미리 사두는 행위는 재회를 요구하지 않은 채 기억을 표현할 수 있는 중간 지대에 놓인다.
실내 ‘남과 여’ 게시판은 이 기다림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긴다.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안에 첫사랑에게 보내는 포스트잇과 선결제된 커피의 흔적이 함께 놓인다. 커피는 실제 음료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누군가를 기다리는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포스트잇에 적힌 문장도 선결제와 만나면 성격이 달라진다. ‘잘 지내니’라는 한마디만 적힌 메모와, 누군가를 위해 실제 한 잔을 마련해 둔 메모는 읽는 사람에게 다른 무게로 다가올 수 있다. 글 뒤에 작은 행동이 하나 더 붙기 때문이다.
한 잔의 가격이 1만원이라는 사실도 여기에서는 단순한 메뉴 가격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자신이 마실 커피에 1만원을 쓰는 것과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먼저 지불하는 것은 구매 동기가 다르다. 음료를 사는 행동에 기억과 선물의 성격이 들어온다.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대개 원두와 산지, 추출법, 재료의 조합처럼 맛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는 여기에 ‘누가 마실 것인가’라는 조건을 붙인다. 같은 커피라도 자신을 위해 주문할 때와 다른 사람을 위해 남길 때 소비의 맥락이 달라진다.
특별 메뉴를 만드는 것과 특별한 소비 방식을 만드는 것도 차이가 있다. 새로운 맛은 한 번 마신 뒤 평가할 수 있지만, 선결제된 첫사랑 블렌드는 구매 이후의 시간이 남는다. 메모가 게시되고, 누군가 읽고, 첫사랑 상대가 카페를 방문할 가능성이 이어지면서 한 번의 주문이 곧바로 닫히지 않는다.
첫사랑 상대가 실제로 나타나야만 한 잔의 가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커피를 남긴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기억했던 이름을 다시 꺼내고, 아직 만나지 않은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마련했다는 행위가 먼저 남는다. 전달되지 않은 한 잔도 한 사람의 기억을 표현한 기록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실제 당사자가 포스트잇을 발견하고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는 한 잔의 시간이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현재를 연결한다. 커피를 남긴 날과 마신 날 사이에 얼마나 긴 시간이 놓일지는 알 수 없다.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과거의 관계와 현재의 삶이 서로 다른 날짜에 카페를 지나게 된다.
갤러리카페라는 장소도 이런 구조와 맞물린다. 작품은 작가의 시간을 담아 일정 기간 공간에 머물고, 관람객은 뒤늦게 찾아와 작품과 만난다. 첫사랑의 메모와 선결제 커피 역시 누군가 먼저 남기고 다른 사람이 나중에 발견한다는 시간차를 갖는다. 미술 작품과 개인의 기록은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먼저 놓인 것을 뒤에 온 사람이 만난다는 공간의 흐름은 닮아 있다.
첫사랑 블렌드가 카페트렌드에서 흥미로운 이유도 ‘소금 커피’라는 이색 메뉴 하나에 있지 않다. 커피의 소비를 주문한 순간에서 끝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가능성까지 남겨둔다는 데 있다. 메뉴에 이야기 하나를 붙이는 방식보다 구매 자체에 다른 시간 구조를 넣는다.
카페에서의 선결제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음료를 건네는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나폴리의 카페 소스페소가 익명의 이웃에게 커피를 남겼다면 ‘첫사랑찾기’는 한때 자신의 삶에 들어왔던 사람을 향한다. 한쪽에는 연대가 있고 다른 쪽에는 기억이 있다. 공통점은 돈을 낸 사람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첫사랑이라는 이름 때문에 재회의 낭만만 앞세우면 선결제 구조가 가진 문화적 결은 오히려 흐려진다. 커피를 남겼다고 상대가 찾아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찾아왔다고 다시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 잔을 받아 마시는 것과 과거의 관계를 현재로 되돌리는 일은 별개다.
그래서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의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보다 그 이전에 놓인다. 한 사람은 커피를 사두고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게시판에는 메모가 남고, 선결제된 한 잔도 함께 기다린다.
커피는 보통 따뜻할 때 마시거나 얼음이 녹기 전에 비우는 음료다. ‘첫사랑찾기’에서는 실제 커피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한 잔의 시간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기억해 값을 먼저 치른 순간부터다.
구띠커피갤러리의 첫사랑 스페셜 블렌드는 1만원짜리 특별 메뉴보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남겨둘 수 있는가’라는 소비 방식에 더 가까이 놓인다. 카페에서 한 잔을 산다는 행위가 자신의 갈증을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건넬 시간을 미리 마련하는 쪽으로 한 걸음 옮겨간다.
첫사랑이 끝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우연히 포스트잇 앞에 멈출 수도 있다. 결과와 관계없이 먼저 남은 것은 이름 하나와 커피 한 잔이다. 구띠커피갤러리의 ‘첫사랑찾기’에서 선결제는 결제를 미루는 방식이 아니라, 만남보다 먼저 마음을 건네두는 방식으로 쓰인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