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건져 올린 생명과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몸…정해인이 담아낸 희미한 호흡

[KtN 박준식기자]곤의 목뒤에는 세로로 갈라진 아가미가 있다. 깊은 물에 던져진 아이가 죽음 직전 얻은 호흡의 기관이다. 아가미가 생긴 순간 곤은 살아남았지만, 이전과 같은 인간으로 돌아갈 길은 닫혔다. 생명을 지켜낸 몸의 변화는 이후의 삶을 세상에서 감춰야 하는 이유가 된다.

아가미,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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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목뒤에 닿자 붉은 아가미가 드러난다. 곤의 얼굴은 프레임 바깥에 있고, 시선은 몸에 새겨진 흔적으로 모인다. 아가미를 확인하는 손길에는 낯선 생명체를 대하는 호기심과 한 사람의 비밀에 닿는 긴장이 함께 실린다. 곤이 살아온 시간은 얼굴보다 먼저 목뒤의 갈라진 살을 통해 제시된다.

소설 ‘아가미’는 생존을 축복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물에 빠진 아이가 살아났다는 사실 뒤에는 살아남은 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남는다. 곤은 자신을 살린 아가미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없다. 죽음은 피했지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 누군가에게 몸을 맡기는 일, 사랑받을 가능성을 믿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아가미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기관이면서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표식이다. 곤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겼고, 곤이 원한다고 없앨 수도 없다. 몸은 물에 빠졌던 과거를 잊지 않은 채 상처의 순간을 계속 현재로 불러낸다. 살아남은 사람의 기억이 마음뿐 아니라 신체에도 남을 수 있다는 구병모의 상상은 곤을 단순한 판타지의 존재에서 현실적인 고독을 지닌 인물로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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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곤의 어깨와 목은 차가운 빛을 받는다. 주변은 깊은 밤처럼 가라앉았고, 눈은 정면보다 아래를 향한다. 물 밖에 나와 있지만 곤을 감싼 색은 여전히 물속과 가깝다. 몸은 육지에 머물러도 감정은 죽음이 다가왔던 깊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곤의 고독은 혼자 있다는 상태보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데서 깊어진다. 목뒤의 아가미와 등의 비늘을 드러내는 순간 곤은 사람들에게 이해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설명되고 분류돼야 할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 인간임을 증명해야 하는 삶은 곤에게 침묵과 은폐를 익히게 한다.

세상은 곤에게 먼저 이름을 묻지 않는다. 인간인지 인어인지, 현실인지 상상인지부터 가르려 한다. 어느 범주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몸은 존재 자체보다 정체를 판별하려는 시선에 노출된다. 곤이 숨어 지내는 이유에는 낯선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의 질서가 놓여 있다.

곤에게 아가미는 자랑할 능력도 제거할 결함도 아니다. 아가미가 없는 곤을 상상할 수 없듯, 물속에서 겪은 죽음의 순간을 지우고 현재의 삶만 남길 수도 없다. 상처를 극복의 재료로 미화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곤의 존재를 바라보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살아남은 몸은 온전함을 되찾은 몸이 아니라 달라진 채 계속 살아가는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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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곤은 육지와 다른 자세를 취한다. 두 팔과 다리는 물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옷자락은 중력에서 풀려난 듯 뒤로 퍼진다. 검은 물고기들이 곤의 주변을 지나가지만 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숨겨야 했던 몸은 물속에서 설명을 요구받지 않는다.

물은 곤을 죽음 가까이 몰고 갔지만 동시에 곤의 몸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육지에서는 감춰야 하는 아가미가 물속에서는 호흡을 가능하게 한다. 같은 신체가 어느 공간에서는 결함이 되고 다른 공간에서는 생존의 조건이 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바라보는 환경과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곤의 이동을 따라 드러난다.

물속의 자유가 곧 해방을 뜻하지는 않는다. 곤이 찾는 삶은 인간의 세계를 버리고 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곤에게는 함께 살아갈 사람이 있고, 되짚어야 할 기억과 다시 만나야 할 존재가 남아 있다. 물에서 편안히 숨 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과 맺은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아가미, 사진=영화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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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사이에 선 어린 곤의 머리카락은 길게 흐트러져 있고, 맨몸에는 보호할 장치가 없다. 밝은 들판 한가운데 있지만 표정에는 경계심이 남아 있다. 어린 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 앞서 달라진 몸과 낯선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이 곤에게 안전한 곳인지 판단할 경험조차 충분하지 않은 시기다.

어린 곤을 구한 노인은 생명을 유지하게 한 첫 번째 타인이다. 물에서 건져 올리는 행위만으로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세상에 알려질 수 없는 아이를 받아들이고, 달라진 몸을 지닌 채 살아갈 자리를 마련한다. 곤은 노인의 보호 아래에서 사람의 세계에 다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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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을 등지고 선 노인의 표정에는 놀라움보다 오래 지켜본 사람의 무게가 묻어난다. 등에 멘 여러 개의 판자는 노동과 생활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노인은 곤의 아가미를 설명하거나 곤의 존재를 판정하는 사람보다 말없이 곁을 내준 인물에 가깝다. 곤에게 인간의 세계는 거대한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을 밀어내지 않은 한 사람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보호는 곤을 살게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삶까지 피할 수 있게 하지는 못한다. 세상으로부터 감춰준 공간은 안전한 울타리인 동시에 곤이 바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경계가 된다. 보호와 고립은 서로 반대되는 상태가 아니라 곤의 성장 과정에서 함께 움직인다. 살아 있게 하려는 선택이 곤을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남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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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 곤은 어린 시절과 같은 억새밭에 서 있다. 짧아진 머리와 단단해진 얼굴선은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지만 푸른 눈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기색이 남는다. 어린 곤의 몸에 직접 드러났던 불안은 성장한 뒤 절제된 표정과 침묵으로 옮겨간다.

몸이 자라는 동안 곤은 아가미를 감추는 법과 사람의 시선을 피하는 법을 익혔을 가능성이 크다. 적응은 상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축소하고 말하지 않는 습관이 굳어지는 과정도 적응의 일부다. 곤의 성장은 세상과 능숙하게 어울리는 변화보다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은 채 살아가는 기술에 가깝다.

정해인은 곤을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이 존재해도 되는 사람인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결핍과 외로움을 품은 인물”로 받아들였다. 살아남은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불안과 고독,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곤 안에 함께 있다는 해석이다.

‘존재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곤의 고독이 머무는 자리를 정확히 짚는다. 곤은 살아갈 능력이 있는지보다 살아갈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한다. 자신의 몸과 과거가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관계가 시작되기 전부터 거절을 예상한다.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만 생기지 않는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온전한 모습을 내보일 수 없을 때 더욱 깊어진다.

정해인은 곤의 목소리에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정을 크게 분출하는 연기보다 목소리 안에 남은 작은 떨림과 호흡, 말이 나오기 전의 머뭇거림이 중요해진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곤에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곤의 침묵은 무력함과 다르다. 자신을 드러냈을 때 돌아올 위험을 알고도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말을 선택하는 데에는 별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물속에서 아가미로 쉬는 호흡이 본능이라면, 사람을 향해 내놓는 목소리는 관계를 받아들이려는 의지에 가깝다. 영화에서 곤의 삶은 숨을 얻는 순간보다 숨겨온 목소리를 타인에게 건네는 과정에서 더 넓어진다.

아가미가 곤의 몸을 살렸다면 사람들은 곤이 삶을 이어가게 한다. 노인은 곤을 죽음에서 건져 올리고, 강하는 곤이 머물 세계가 되며, 해류는 곤의 존재를 기억한다. 몸의 호흡과 관계의 호흡이 함께 이어져야 곤은 물속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넘어 자신의 삶을 가진 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

곤의 여정에는 상처 이전의 몸으로 돌아가는 결말이 놓일 수 없다. 아가미는 지워야 할 과거가 아니라 곤이 살아 있다는 증거로 남아 있다. 9월 9일 극장에서 만나는 곤은 남들과 같아지는 방식이 아니라 달라진 몸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길을 찾아간다.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생존은 자신도 이 세계에 머물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삶의 이름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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