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장르 매출 순위 4위로 하락한 극장가…대작과 독립영화 사이에서 제작 인력과 장르 문법 잇는 신작
[KtN 박준식기자]죄수들이 지배하는 네 개의 격리구역, 식량과 생필품을 장악한 절대 권력자, 자유를 얻기 위해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무기수. 9월 9일 개봉하는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은 폐쇄된 무법지대와 육체의 소진을 전면에 내세운 하드코어 프리즌 액션이다. 브루스 칸이 공동감독과 각본, 액션 슈퍼바이저, 주연을 맡았고 이채영·김재현·조성하·박철민·조재윤·예수정이 합류했다.
한국 액션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조건은 이전보다 까다로워졌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 연속 국내 극장 매출 장르 순위 1위를 지켰던 액션은 2025년 4위로 내려갔다. 한국 대작과 범죄영화 제작 감소가 액션 장르의 매출 비중 하락으로 이어졌다. 애니메이션은 2816억원의 매출과 26.9%의 점유율로 1위에 올랐고 드라마와 코미디가 뒤를 이었다.
액션을 향한 관객의 관심이 사라진 결과는 아니다. 2025년 특수상영 매출은 1110억원으로 전년보다 46.3% 증가했고 관객 수는 739만명으로 52.4% 늘었다. IMAX와 4D, Dolby Cinema처럼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청각 효과가 관객을 불러들였다. 할리우드 대작과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미 형성된 팬덤에 특수상영 포맷을 결합해 관람 수요를 끌어모았다.
관객은 액션영화를 떠나기보다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가 확실한 작품으로 이동했다. 압도적인 크기와 음향, 익숙한 지식재산권, 전편에서 축적된 인지도는 예매 단계부터 선택을 돕는다. 처음 공개되는 인물과 세계관으로 출발하는 한국 액션영화는 작품의 규칙을 설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은 제1연옥부터 제4연옥까지 네 구역으로 나뉜 격리공간을 구축했다. 구역마다 서로 다른 세력과 우두머리인 연옥장이 존재한다. 김재현이 맡은 ‘염왕’은 식량과 생필품을 장악해 수용자들의 생사를 좌우한다. 조성하가 연기하는 정부 관리자 ‘신상현’은 무기수 ‘유성’에게 염왕을 제거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관객은 네 구역의 관계와 연옥장, 염왕의 권력, 유성이 받은 임무를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처음부터 따라가야 한다. 널리 알려진 원작이나 전편의 흥행을 발판으로 삼지 않고 공간과 인물의 규칙을 새로 세워야 한다. 새로운 세계관을 만든다는 창작의 가치가 시장에서는 설명과 홍보에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한 조건으로 돌아온다.
극장에 도착한 뒤의 경쟁도 작품의 내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개봉 첫 주에 확보한 스크린과 상영 횟수, 관객이 찾기 쉬운 시간대, 홍보 규모와 온라인 화제성이 초반 관객 수에 영향을 미친다. 첫 주말 성적이 낮으면 입소문이 쌓이기 전에 회차가 줄어들 수 있다.
관객이 선택하지 않은 영화와 관객에게 충분히 발견되지 못한 영화는 같은 흥행 성적표에 놓인다. 오전이나 심야에 편중된 상영은 스크린 한 개를 확보했다는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상영 기간이 짧아지면 관객의 평가가 형성될 시간도 함께 줄어든다. 작품의 완성도와 시장에서 살아남는 능력 사이에는 배급과 편성이라는 별도의 조건이 놓여 있다.
흥행은 영화산업을 움직이는 현실적인 기반이다. 제작비를 회수해야 다음 작품에 투자할 수 있고 극장도 좌석을 판매해야 운영을 이어간다. 제작과 배급 단계에서 예상 관객과 수익성을 따지는 판단은 피할 수 없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으로 제작이 지나치게 몰리면 한국영화가 감당해야 할 비용도 커진다. 검증된 인물과 익숙한 갈등, 성공한 장르의 결합이 반복되고 새로운 감독과 배우에게 돌아갈 기회가 줄어든다. 관객의 선택을 중시한다는 명분과 달리 실제로 관객 앞에 놓이는 영화부터 비슷해질 수 있다.
한국영화의 다양성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제작 규모와 장르, 표현 방식, 관객층이 다른 영화가 함께 만들어지고 상영돼야 한다. 저예산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액션·공포·스릴러처럼 대중적인 문법을 사용하는 영화도 대형 투자와 프랜차이즈 바깥에서 새로운 형식을 개발할 수 있다.
대작과 독립예술영화 사이의 제작 영역은 장르 인력이 성장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감독은 장편 서사를 운용하는 경험을 쌓고, 배우는 긴 호흡으로 인물을 구축한다. 무술감독과 스턴트팀은 동작의 속도와 충돌 거리를 조율한다. 촬영팀은 배우의 움직임과 카메라 위치를 맞추고, 조명과 미술은 액션이 벌어질 공간의 깊이와 위험 요소를 계산한다.
한 편의 영화가 곧바로 큰 흥행을 기록하지 못하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협업 경험은 다음 작품으로 이동한다. 제작이 끊기면 숙련된 인력은 현장을 떠난다. 대형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축적된 호흡은 자본만으로 단기간에 복구하기 어렵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은 앞선 작품에서 쌓인 액션 경험을 다시 연결했다. 브루스 칸은 1998년 스턴트맨으로 데뷔한 뒤 홍금보 무술팀에서 활동했고 성룡 주연의 ‘메달리온’에서 파이트 코디네이터를 맡았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각시탈’과 영화 ‘리벤져’, ‘더 킬러: 죽어도 되는 아이’ 등에서 액션을 선보였다.
브루스 칸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액션신의 프리비주얼을 촬영했다. 배우들의 이동 경로뿐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까지 사전에 맞췄다. 김재현을 비롯해 ‘리벤져’부터 합을 맞춘 배우들과 액션 경험을 갖춘 이채영도 참여했다. 이전 작업에서 얻은 경험이 다음 제작으로 이동하는 장르영화의 연속성이 작동한 결과다.
대규모 액션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작품에는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 더 큰 폭발과 더 빠른 추격, 더 많은 디지털 효과를 좇으면 제작 규모의 차이가 먼저 드러난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몸이 견디는 무게를 강조했다.
브루스 칸은 “‘쇼적으로 멋 부리는 액션’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액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밝혔다. 상대를 제압하고 다음 순간까지 버티려는 움직임, 싸움이 이어질수록 무너지는 체력과 호흡, 타격 뒤에 남는 통증이 액션을 구성한다.
유성은 사면을 얻기 위해 맨몸으로 싸운다. 이채영이 맡은 ‘화선’은 가족을 잃은 뒤 복수를 위해 스스로 연옥에 들어가 칼을 비롯한 무기를 사용한다. 유성의 주먹과 화선의 칼은 동작의 외형만 다르지 않다. 자유를 얻으려는 사람과 잃어버린 가족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사람의 목적이 공격 거리와 속도를 나눈다.
법과 질서가 사라진 연옥에서 싸움은 기량을 과시하는 무대가 아니다. 식량과 자유, 복수를 둘러싼 생존 행위다. 동작은 싸움이 길어질수록 흐트러지고 승리한 몸에도 상처와 피로가 남는다. 대형 액션영화가 공간의 크기와 속도를 확장한다면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은 육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파고든다.
같은 장르 안에서도 폭력을 바라보는 거리는 달라질 수 있다. 공격의 화려함보다 맞고 일어서는 시간을 길게 담으면 승리의 쾌감보다 생존의 비용이 앞에 놓인다. 상대를 쓰러뜨린 사람도 온전하게 남지 않는 액션은 힘이 곧 법이 된 연옥의 질서와 맞닿는다.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 같은 작품이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제작 규모의 크고 작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영화가 흥행작이 될 수는 없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만 남은 산업에서는 다음 성공을 준비할 감독과 배우, 스턴트 인력과 제작 기술이 성장하기 어렵다.
장르영화의 제작이 이어지면 실패의 경험도 산업 안에 남는다. 제한된 공간을 어떻게 촬영해야 하는지, 배우의 몸과 카메라 사이의 거리를 어디까지 좁힐 수 있는지, 어떤 액션이 관객에게 설득력을 얻는지 다음 작품에서 다시 검토할 수 있다. 실패할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산업은 검증된 공식만 반복하게 되고 새로운 성공에 도달할 가능성도 함께 낮아진다.
다양성은 흥행 가능성이 낮은 영화를 무조건 보호하는 명분이 아니다. 몇 편의 대작에 투자와 인력, 관객이 집중되는 위험을 줄이고 서로 다른 규모의 작품이 산업 안에서 경험을 축적하도록 만드는 기반이다. 액션·공포·스릴러처럼 관객과 가까운 장르도 같은 생태계 안에서 새로운 감독과 배우를 길러낸다.
흥행작은 영화산업에 자본을 공급한다. 흥행 공식 밖에서 출발한 영화는 새로운 사람과 기술, 세계관과 장르 문법을 공급한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산업이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익숙한 성공을 반복하는 작품과 아직 관객을 확보하지 못한 신작이 함께 제작돼야 다음 선택지가 생긴다.
이현명·브루스 칸 감독이 공동 연출한 ‘연옥: 살인마들의 자치구역’은 9월 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작품이 확보할 상영 횟수와 시간대, 지역별 접근성은 한 편의 흥행 성적을 넘어 새로운 한국 액션영화가 극장 안에서 자리를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