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이 캐릭터로 만든 도깨비기와, 국가유산청이 산업으로 만들 K-헤리티지…김포 한옥마을에서 중장년은 '나만의 터주신'을 손으로 빚었다
[KtN 임우경기자] 도깨비가 IP가 된 해, 2025년 6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직후 플릭스패트롤 글로벌 1위를 장기간 지켰고, 석 달 만에 누적 3억 뷰에 근접하며 주제가 'Golden'을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렸다. 작품 속 악령은 괴수 얼굴을 입체적으로 새긴 도깨비기와와 전통 탈을 서양식 카툰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고,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는 민화 '까치호랑이'에서, 무대 배경은 '일월오봉도'에서 왔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한국적 도상의 세계화·상품화 가능성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였다고 평했다. 동시에 그 도상을 해외 제작사가 먼저 캐릭터화했다는 사실은 국내 콘텐츠 업계에 뼈아픈 질문을 남겼다.
정책은 이 흐름을 빠르게 따라갔다. 국가유산청은 2025년 12월 '쿠키런'과 협업한 특별전을 열었고, 2026년 업무계획에서 약 9조 원 규모의 국가유산 산업을 2030년까지 누적 105조 원으로 키우겠다며 '국가유산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예고했다. 문체부 2026년 관광 업무보고의 첫 문장도 "오직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K-컬처"였다. 유산은 이제 보존의 대상에서 지식재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도깨비는 어떤 IP인가. 김포아트빌리지 한옥마을 '우아한 한옥나들이' 후반부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도깨비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윤혜진 더문스페이스 대표의 첫 질문에 참가자들이 입을 모아 답한 이름은 배우 공유였다. 2016년 드라마 '도깨비'가 남긴 이미지다. 그러나 전래동화로 화제를 옮기자 기억은 더 오래된 곳으로 내려갔다. 밤새 씨름을 했더니 나뭇가지였더라는 도깨비 씨름, 개암 열매 깨무는 소리에 놀라 방망이를 두고 달아난 도깨비, 매일 찾아와 빚을 갚는 '멍청한 도깨비'까지. 김포에도 수수팥떡과 얽힌 도깨비 설화가 있다는 참가자의 말이 이어졌다.
생활 속 '도깨비터' 담론도 오갔다. "우리 집은 도깨비터라 자손이 도깨비만큼 기가 세야 버틴다"는 집안 이야기, "식당이나 술집처럼 사람이 우르르 몰려야 하는 장사는 도깨비터가 잘된다"는 속설. 한국 도깨비가 재앙이 아니라 풍요와 손님을 몰고 오는 '복의 존재'로 기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양이 없다는 것의 힘 — 한국 도깨비 vs 일본 오니
윤 대표는 과거 한옥마을에서 도깨비 축제를 기획하던 시절 가장 큰 논쟁이 "일본 오니와 어떻게 구분하느냐, 뿔은 한 개냐 두 개냐"였다고 회고했다. 그가 정리한 차이는 이렇다. 한국 도깨비는 오래된 물건과 자연의 기운, 민간신앙에서 나온다. 낡은 빗자루, 오래 쓴 방망이에도 신이 깃든다. 성격은 장난스럽고 익살맞고 조금 멍청하며 사람을 좋아한다. 돕기도 하고 나쁜 사람을 벌하기도 한다. 반면 일본 오니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적 귀신으로 공격적이고 무서우며 재앙을 가져오는 악귀다. 무엇보다 한국 도깨비는 정해진 모습이 없다. 믿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오니는 뿔과 송곳니, 호랑이 가죽 등 특징이 문헌으로 고정돼 있다.
IP 관점에서 '모양이 없다'는 특성은 양날이다. 캐릭터 상품화에는 불리하지만, 누구나 자기 도깨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참여형 콘텐츠의 최적 조건이다. 케데헌이 전자를 택했다면, 이날 워크숍은 후자였다.
"가족 말고, 오롯이 나만의 터주신"
워크숍의 조건은 하나였다. 가족의 평안도, 자식의 성공도 아닌 '나만의' 터주신을 만들 것. 윤 대표는 이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제발, 플리즈, 나만의 터주신." 평생 가족을 위해 빌어온 중장년에게 '나를 위한 신'을 빚으라는 요청은 그 자체로 인문적 처방이었다. 지난 회차에는 환갑 기념으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참가자가 '연주를 잘하게 해주는 도깨비'를 만들었다고 한다.
디자인 재료로는 전통 문양이 제시됐다. 구름은 자유와 평안, 모란은 풍성한 꽃잎 때문에 불(火), 박쥐는 한자 복(福)과 닮은 길상 문양이자 밤에도 깨어 지켜주는 존재, 거북과 연꽃, 당초와 태극, 옛 베개에 수놓던 복(福)·희(囍)·만(卍)자까지. 단청에 쓰는 오방색 물감과 한지, 조개껍데기, 솔방울 같은 자연물이 함께 놓였다.
홍지희 작가는 "자연물은 이미 완성돼 있으니 조합만 잘하면 완성도가 확 올라간다"고 조언했다.
바탕은 구례 전통 기와 공방에서 직접 가져온 실제 기와였다. 홍 작가는 "예전엔 암기와·숫기와라 불렀지만 요즘은 받침기와·덮개기와라 부른다"며 3.5kg의 무게를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A4 용지에 먼저 구상을 그렸다. 무엇이 나에게 부족한지, 어떤 액을 막아줬으면 하는지가 출발점이었다.
홍 작가의 예시작은 앞서 배운 한옥 지식이 그대로 조형이 된 것이었다. 자신을 지켜줄 지붕을 얹고,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아 자물쇠 문양으로 쓰이던 물고기의 눈을 붙이고, 얼굴을 밥그릇 삼아 쌀알을 담아 풍요를 빌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나자 서까래가 드러난 한옥 강의실 긴 탁자 위에 기와 일곱 장이 나란히 놓였다. 일곱 개의 도깨비는 정말로 하나도 닮지 않았다. 흰 조개껍데기를 격자로 붙이고 초록 한지로 지붕을 얹은 뒤 오방색 나무 고리 다섯 개를 줄지어 단 '바닷속 도깨비', 분홍 연꽃 위에 노란 나비 두 마리를 그리고 파란 물결과 조개 물고기를 붙인 '내 정원에 사는 도깨비'가 있었다.
파란 털실을 머리칼 삼고 솜을 구름처럼 얹어 색 고리로 웃는 얼굴을 만든 작품에는 "포근하고 행복한 시절을 기다리는 도깨비"라는 메모가 붙었다. 卍자와 구름, 연꽃, 조개로 만든 토끼를 한 장에 모은 참가자는 "꽃같이 구름같이 나답게 살아가라"고 적었다.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나뭇가지 두 개를 뿔로 세우고 초록 털실을 머리로 얹은 뒤 빨간 고리 안에 조개를 넣어 부릅뜬 눈을 만들고 마른 솔잎을 수염처럼 늘어뜨린 도깨비였다. 메모에는 "나를 지켜보는 수호신"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옆에서는 붓으로 노란 획 하나를 크게 긋고 솔방울 네 개만 모서리에 붙인, 거의 서예에 가까운 도깨비도 있었다.
무섭게 만든 사람도, 예쁘게 만든 사람도, 글자 하나로 끝낸 사람도 있었다. 정해진 모양이 없는 한국 도깨비의 특성이 그대로 결과물로 드러난 셈이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기와 앞에서 한참을 웃었다. 완성작은 한옥마을 창작동에 전시된 뒤 참가자에게 돌아간다.
소비하는 관객에서 만드는 시민으로
케데헌이 증명한 것은 한국 민속 도상의 상업적 잠재력이고, 국가유산청의 100조 원 목표는 그 잠재력을 산업으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IP 산업은 도상을 고정하고 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다. 한국 도깨비의 본질이 '정해진 모습이 없음'이라면, 산업화는 그 본질과 긴장 관계에 놓인다.
김포의 워크숍은 정반대 방향에서 출발한다. 도깨비를 소비하는 관객이 아니라 자기 도깨비를 빚는 창작자를 길러내는 것. 이날 모인 중장년이 만든 일곱 개의 서로 다른 터주신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민속'이며, 100조 시장이 잃기 쉬운 원형의 다양성을 지키는 가장 작은 단위의 실험이다.
후원=NH농협 302-1678-6497-21 위대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