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23년 저가 매입군 MOIC 3.4배, 고가 매입군 2.7배
상위 운용사는 5.5배 대 3.6배…진입가격에 따른 격차 더 확대
이재명 정부도 150조원 국민성장펀드 가동…자금 공급 이후 ‘가격 규율’ 중요성 부상
[KtN 최기형기자]사모펀드(PE) 바이아웃 시장에서 기업을 얼마에 샀는지가 다시 수익률을 크게 가르고 있다. 2018~2023년 빈티지 펀드를 인수가격에 따라 나눴을 때 가장 낮은 가격에 투자한 그룹의 투하자본배수(MOIC·Multiple on Invested Capital)는 3.4배,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한 그룹은 2.7배였다. 2010~2017년 빈티지에서 0.1배에 불과했던 두 그룹의 격차가 최근에는 0.7배로 벌어졌다.
맥킨지(McKinsey & Company)가 2026년 9월 내놓은 분석은 바이아웃 시장에서 오랫동안 통용돼 온 ‘수익은 팔 때보다 살 때 결정된다’는 원칙을 최근 성과로 짚었다. 저렴하게 사는 규율을 지킨 운용사와 높은 가격을 감수한 운용사의 성과 차이가 과거보다 뚜렷해졌다는 내용이다.
맥킨지는 기업 인수 당시 지급한 가격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매입가격배수(PPM·Purchase Price Multiple)로 나눠 네 개 구간을 비교했다. 4분위는 가장 낮은 배수에 기업을 산 그룹, 1분위는 가장 높은 배수를 지불한 그룹이다.
2010~2017년에는 가격 차이가 수익률에 크게 반영되지 않았다. 가장 낮은 가격에 투자한 4분위의 중위 MOIC는 2.8배, 가장 높은 가격을 지급한 1분위는 2.7배였다. 3분위와 2분위 역시 각각 2.8배와 2.6배를 기록했다. 싼 기업을 산 쪽과 비싸게 산 쪽 사이에 뚜렷한 성과 격차가 나타나지 않은 시기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금리와 거래배수 상승이 높은 인수가격의 부담을 상당 부분 흡수했다. 자금 조달 비용이 낮고 시장 전체의 기업가치가 올라가면서 비싼 가격을 지불한 운용사도 상승 흐름을 탈 수 있었다. 매입가격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강한 시장 상승세가 가격에 따른 수익률 차이를 가렸다.
2018~2023년 빈티지에서는 숫자가 달라졌다. 가장 낮은 가격에 산 4분위의 중위 MOIC는 3.4배였다. 3분위 3.2배, 2분위 2.8배를 거쳐 가장 높은 가격을 지급한 1분위는 2.7배로 내려갔다. 진입가격이 올라갈수록 성과가 낮아지는 분포가 나타났다.
보유기간 차이가 만든 착시도 아니었다. 낮은 가격과 높은 가격 그룹 모두 빠르게 투자금을 회수한 펀드와 장기간 보유한 펀드가 함께 포함됐다. 최근 빈티지에서 커진 0.7배의 격차를 조기 회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성과가 좋은 운용사만 놓으면 매입가격의 차이는 더 커졌다. 각 가격 구간의 상위 25% 운용사를 비교했을 때 2018~2023년 가장 싸게 산 그룹의 MOIC는 5.5배였다. 가장 비싸게 산 그룹의 상위 운용사는 3.6배에 머물렀다. 격차는 1.9배였다.
2010~2017년 같은 비교에서는 가장 낮은 가격 그룹이 4.2배, 가장 높은 가격 그룹이 3.8배로 차이가 0.4배였다. 맥킨지 자료 4쪽의 비교 그래프에서도 최근 빈티지로 갈수록 막대 사이의 간격이 크게 벌어진다. 운용 역량이 뛰어난 펀드라도 높은 진입가격을 모두 상쇄하지는 못한 흐름이다.
기업을 사는 가격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바이아웃 진입배수는 2023년 이후 상승해 2025년 평균 EBITDA의 11.8배로 사상 최고 수준에 올랐다. 5억달러를 넘는 대형 바이아웃에서는 18.1배까지 치솟았다.
운용사들이 높은 가격을 감수하는 배경에는 우량기업 확보 경쟁이 있다. 경기 변동을 견딜 수 있는 이른바 ‘A급 기업’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다. 투자하지 않고 쌓아둔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압박, 질 좋은 자산을 둘러싼 경쟁, AI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기대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거론됐다.
2025년에는 시장의 관심을 끈 우량기업 인수가 이어진 반면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일부 B급과 C급 기업은 시장에 등장하지 않거나 매각 절차에서 빠졌다. 선택 가능한 매물이 줄어든 상황에서 우량 자산에 자금이 집중되면 높은 가격을 받아들이는 거래도 늘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같은 시기 자금을 기업과 첨단산업으로 이동시키는 정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가계와 부동산에 집중됐던 금융의 흐름을 기업과 산업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5년간 150조원을 첨단산업 생태계에 공급하며 2026년 공급 계획만 30조원이다.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인프라 투융자, 초저리 대출을 함께 운용하고 기술기업의 인수·합병(M&A) 자금 지원도 범위에 포함돼 있다.
민간 금융권의 자금 이동도 이어졌다. 금융위원회가 2026년 5월 공개한 자료에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이 향후 5년간 약 1242조원의 생산적 금융 공급계획을 세웠고, 올해 3월 말까지 92조원이 공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5대 금융지주와 산업은행·기업은행의 기업대출 및 투자 잔액은 2025년 6월 말 1782조원에서 2026년 3월 말 1877조원으로 95조원 늘었다. 전체 대출·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7.8%에서 68.6%로 높아졌다.
정부가 성장산업으로 자금의 방향을 돌리는 정책과 PE 운용사가 기업을 인수하는 거래는 구조와 목적이 다르다. 국민성장펀드 역시 바이아웃 펀드만을 위한 자금이 아니다. 다만 투자재원이 커질수록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와 함께 ‘얼마에 투자할 것인가’가 별도의 판단 영역으로 남는다는 점에서는 최근 글로벌 PE 시장의 수치가 눈에 띈다.
성장성이 높은 산업이라고 해서 가격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I와 반도체처럼 장기 성장 기대가 큰 분야에서는 미래 실적을 기업가치에 먼저 반영하는 거래가 나올 수 있다. 높은 기대가 진입가격을 끌어올릴수록 투자 이후 기업이 달성해야 할 성장 폭도 커진다. 맥킨지가 글로벌 PE 시장에서 지목한 위험도 높은 가격 자체보다 높은 가격이 투자 판단의 오차를 받아들일 여지를 좁힌다는 데 있다.
국민성장펀드 역시 민간자금과 함께 움직인다. 전체 150조원은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민간·국민·금융권 자금 75조원으로 구성된다. 정부 재정은 후순위 참여 등을 통해 민간자금 유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2026년에는 직접투자 3조원, 간접투자 7조원, 인프라 투융자 10조원, 초저리 대출 10조원 등 총 30조원의 공급계획이 잡혀 있다.
자금 공급이 늘어나는 시기일수록 투자 대상의 선별과 가격 판단은 함께 움직인다. 글로벌 바이아웃 시장에서는 이미 평균 진입배수가 EBITDA의 11.8배까지 높아졌고 대형 거래에서는 18.1배에 이르렀다. 비싸게 산 기업의 실적이 예상보다 조금만 낮아지거나 향후 매각배수가 떨어져도 투자자가 흡수해야 할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2010~2017년에는 가장 싸게 산 그룹과 가장 비싸게 산 그룹의 중위 MOIC 차이가 0.1배였다. 2018~2023년에는 0.7배로 벌어졌고, 상위 성과 운용사끼리 비교하면 1.9배까지 확대됐다. 시장 상승만으로 높은 진입가격을 만회하기 어려워진 흐름이 숫자로 나타난 셈이다.
이재명 정부가 150조원 국민성장펀드를 앞세워 첨단산업으로 자금의 통로를 넓히는 동안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에서는 투자 이후의 수익률을 가르는 오래된 원칙이 다시 강해지고 있다. 성장할 산업을 찾는 것과 적정한 가격에 투자하는 것은 다른 판단이다. 자금의 목적지를 성장산업으로 바꾸는 흐름이 커질수록 기업의 미래가치뿐 아니라 처음 지불하는 가격까지 함께 따지는 투자 규율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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